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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구자철, 볼턴 이적을 보고 싶은 이유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미들라이커'로 거듭난 구자철(22, 제주)이 유럽 클럽들의 영입 공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회 이전부터 영 보이스(스위스) 러브콜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레버쿠젠-볼프스부르크-슈투트가르트(이상 독일) 같은 분데스리가 클럽들의 영입 관심 대상이 됐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 현지에서 볼턴 이적설이 제기되면서 앞날의 거취가 기대됩니다. 볼턴은 이청용이 에이스로 활약중인 팀으로서, 만약 구자철 영입에 성공하면 '기차듀오(기성용-차두리, 셀틱)'에 이은 또 하나의 '코리안 듀오'가 탄생합니다.

잉글랜드 스포츠 전문채널 <스카이 스포츠>는 27일(이하 현지시간) "볼턴은 구자철을 노리는 여러 팀들 중에 하나다. 이미 이청용 영입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구자철에 관심을 보였다"며 구자철의 볼턴 이적설을 언급했습니다. 물론 볼턴은 막대한 재정 적자를 안고 있지만, 구자철의 바이아웃이 100만 달러(약 11억원)이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 영입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2009년 이청용 영입 당시 220만 파운드(약 39억원, 350만 달러)를 투자했음을 상기하면 구자철 영입에 재정적인 부담이 덜 합니다.

구자철, 이청용과 함께하면 EPL에서 성공할 수 있다

구자철은 지난해 1월 프리미어리그 블랙번의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았습니다. 2009년 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8강 진출을 이끈 저력에 힘입어 블랙번의 영입 관심 대상이 됐습니다. 하지만 유럽 진출 시기가 좋지 못했습니다. 1월은 프리미어리그 시즌 중이었기 때문에, 블랙번 같은 전력이 약한 팀 입장에서는 기존 선수들을 믿고 기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 블랙번은 골을 꾸준히 터뜨릴 수 있는 공격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과연 구자철을 팀 전력을 지탱할 선수로 생각하는지 의문 이었습니다. 또한 구자철에게 지난해 1월은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 포함에 도전했던 시기였죠. 블랙번의 벤치를 지키면 대표팀 경쟁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결국 포함되지 못했지만)

당시의 관점에서 놓고 보면, 구자철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은 빛보다는 그림자가 높았습니다. 당시 프리미어리그에서 실패했던 이동국-김두현-조원희의 포지션이 '중앙' 이었으며, 유럽 스몰리그를 거치지 않고 1월에 잉글랜드로 진출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 밖에 김남일-이호 같은 유럽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던 선수들의 포지션도 중앙이었죠.(여기서 말하는 김남일은 2003년 네덜란드 엑셀시오르 시절을 말함. 지난해 1월 러시아 톰 톰스크 진출) 박지성-이청용-이영표 같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한 선수들의 포지션은 '측면' 입니다. 그래서 구자철의 블랙번 입단테스트는 걱정이 컸습니다.

한국의 중앙 옵션들이 유럽에서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몸싸움 및 압박 때문입니다. 중앙은 측면보다 압박의 세기가 강하고 거친 몸싸움을 견뎌야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피지컬이 강하거나 출중한 수비 재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유리합니다. 스피드 넘치는 플레이에 익숙한 한국 선수들이 중앙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죠. 기성용이 한때 셀틱에서 벤치를 지켰던 것도 수비력 부족 때문 이었습니다. 결국에는 본인이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이고 터프한 면모를 기르면서 셀틱의 주전 선수로 안착할 수 있었죠. 또한 중앙에 있는 선수들은 기본적인 공격력이 강해야 합니다. 축구는 중앙에서 연계 플레이를 펼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공격력이 뒷받침되죠.

당시의 구자철은 수비력이 문제였습니다. 무리하게 공격 과정에 참여하면서 상대 중앙 미드필더에게 뒷 공간을 허용하는 경향이 잦았죠. 중앙 미드필더로서 넓은 범위의 수비력을 자랑하면서 적극적인 견제를 취하지만, 때에따라 공격에 무리하게 올라오는 바람에 커버링에 취약한 문제점을 남겼습니다. 대표적인 경기가 지난해 2월 10일 A매치 중국전(0-3 한국패) 이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탙락했던 것도 중국전이 결정타 였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려면 수비력이 여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구자철은 다릅니다. 중국전 부진이 커다란 자극제가 되면서 2010 K리그에서 도움왕(12개)에 오르며 제주의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제주 4-2-3-1의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공격과 수비에 걸쳐 흔들림 없는 활약을 펼쳤던 것이 자신의 공격력을 꿈틀거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기존에는 앞쪽으로 빠지는 움직임을 통해 공격 과정에 나오면서 상대에게 뒷 공간을 내줬다면, 2010시즌에는 중원에서 날카로운 킬러 패스를 통해 동료 선수들에게 골 기회를 밀어주는 스타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제주의 패스 게임을 주도하고, 너른 시야를 갖추면서, 볼 컨트롤까지 부드러워지는 장점을 얻게 됐습니다. 블랙번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던 시절보다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그리고 아시안컵은 구자철이 또 한 번 진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시안컵에서 4골을 터뜨리며 대회 득점왕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K리그에서 많은 골을 터뜨리는 선수가 아니었음을 상기하면 이번 대회를 통해 득점력 향상에 눈을 뜨게 됐죠. 미들라이커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넓은 활동 반경이 원동력이 됐습니다. 조광래호 제로톱의 일환에 따라 최전방 영역까지 커버하는 움직임을 취했고, 그 과정에서 안정된 퍼스트 터치로 후방에서 연결되는 볼을 터치하며 골을 엮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팀들의 영입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그 중에 한 팀이 볼턴 이었습니다.

물론 구자철의 유럽 진출은 1월이 아닌 여름이 더 좋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0 시즌을 소화한 상태에서 지난해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했고, 그 이후에는 부상을 안고 K리그 챔피언십에 출전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조광래호에 소집되어 아시안컵 체제에 돌입했죠. 휴식할 시간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에는 아시안컵 토너먼트에서 체력 저하에 시달리며 어렵게 경기를 풀고 말았죠. 최근에는 피로 누적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몸을 생각하면 무리한 유럽 진출은 반대입니다. 아시안컵이 끝나면 제주에서 회복하면서 몸을 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구자철이 만약 볼턴으로 이적하면 유럽 적응이 수월할 수 있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 클럽들의 영입 관심을 받고 있지만, 프리미어리그와 분데스리가는 서로 거친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이청용과 볼턴에서 같이 뛰는 이점이 구자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이청용이 2010/11시즌 종료 후 다른 팀으로 떠나도 볼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죠. 또한 이청용은 코일 감독의 신뢰를 듬뿍 얻었습니다. 코일 감독이 또 다른 한국인 선수를 선호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합니다. 몸 상태가 쌩쌩한 구자철이라면 프리미어리그에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볼턴은 이청용 효과로 패스 게임에 눈을 떴던 이점이 있습니다. 불과 두달 전까지 프리미어리그 4위에 진입하여(현재 11위)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짜릿한 경험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볼턴은 지금의 패스 게임에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쿼드의 양질을 강화하며 경기력 개선에 노력할 것이 틀림없죠. 재정 적자가 걸림돌이지만 구자철은 바이아웃이 적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볼턴의 중앙 미드필더를 맡는 홀든-무암바의 내공이 만만치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 축구팬들은 무암바가 기복이 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구자철이 무암바를 비집고 주전에 등극하면 이청용과의 시너지가 기대됩니다. 구자철의 볼턴 이적을 보고 싶은 이유이며, 이청용 공격력에도 도움이 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