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공격수 중에서 가장 많은 골을 터뜨린 선수는 디미타르 베르바토프(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 입니다. 맨유가 22경기를 끝낸 현재, 19경기에서 17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 1위에 올랐습니다. 카를로스 테베스(맨시티, 21경기 14골) 앤디 캐롤(뉴캐슬, 19경기 11골) 케빈 놀란(뉴캐슬, 19경기 10골)을 제치고 선두를 달리고 있죠. 지난해 11월 27일 블랙번전에서 5골을 작렬하며 단숨에 리그 득점 1위로 뛰어올랐던 베르바토프의 득점 질주가 지금도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베르바토프는 지난 23일 버밍엄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맨유의 5-0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전반 1분 존 오셰이의 헤딩 패스를 문전에서 꽂아 넣을 때 위치 선정이 절묘했으며, 전반 30분에는 상대 수비진 사이를 정면에서 뚫으며 골을 엮었습니다. 후반 8분에는 라이언 긱스가 왼쪽에서 찔러준 패스를 문전에서 밀어 넣었죠. 세 골 모두 필드골이며 기회를 포착하는 천부적인 골 결정력이 돋보였습니다. 공격수의 본분이 골 생산임을 상기하면 베르바토프의 해트트릭은 의미있는 활약상 입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베르바토프가 올 시즌 리그 득점왕에 등극 할 유력 주자라는 점입니다. 당분간 베르바토프의 17골을 제칠 수 있는 경쟁 주자가 마땅치 않죠. 일주일전까지는 테베스가 베르바토프와 공동 1위를 달렸지만 지금은 격차가 3골로 벌어졌습니다. 테베스는 '이적생' 에딘 제코와의 공존이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제코가 맨시티 전력에 가세한 이후 2경기 연속 윙어로 뛰었는데, 16일 울버햄턴전에서 2골을 기록했지만 23일 애스턴 빌라전에서는 골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측면에서 활용될지 알 수 없지만, 구조적인 관점에서는 미드필더가 공격수 보다 많은 골 기회를 얻는 것은 힘듭니다. 테베스가 애스턴 빌라전에서 골이 없던 사이에 베르바토프는 버밍엄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했죠.
3위와 4위를 기록중인 '뉴캐슬 듀오' 캐롤-놀란은 뉴캐슬 공격을 짊어지는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를 제치기에는 팀 클래스가 뒷받침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축구는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팀이 강해야 개인 스탯을 축적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죠. 또한 2008/09시즌, 2009/10시즌 득점왕에 올랐던 니콜라 아넬카(19경기 4골) 디디에 드록바(21경기 9골, 이상 첼시)의 골 생산이 올 시즌에 저조합니다. 물론 드록바는 리그 득점 공동 5위에 올랐지만 지난 시즌 32경기 29골과 비교하면 스탯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아넬카-드록바의 올 시즌 폼은 기대 이하로서 첼시 성적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베르바토프의 리그 득점왕 등극 여부를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단서는 스탯에 있습니다. 올 시즌 활약상의 호불호가 뚜렷하기 때문이죠. 베르바토프의 올 시즌 골 일지는 이렇습니다.
1. 2010년 8/16 뉴캐슬전 1골(상대팀 순위 : 8위, 맨유 3-0 승리, 홈)
2. 8/28 웨스트햄전 1골(상대팀 순위 : 20위, 맨유 3-0 승리, 홈)
3. 9/11 에버턴전 1골(상대팀 순위 : 13위, 맨유 3-3 무승부, 원정)
4. 9/19 리버풀전 3골(상대팀 순위 : 11위, 맨유 3-2 승리, 홈)
5. 11/27 블랙번전 5골(상대팀 순위 : 7위, 맨유 7-1 승리, 홈)
6. 12/26 선덜랜드전 2골(상대팀 순위 : 6위, 맨유 2-0 승리, 홈)
7. 12/28 버밍엄전 1골(상대팀 순위 : 17위, 맨유 1-1 무승부, 원정)
8. 2011년 1/22 버밍엄전 3골(상대팀 순위 : 17위, 맨유 5-0 승리, 홈)
베르바토프는 올 시즌 8경기에서 17골을 터뜨렸습니다. 그 중에 3경기는 3골 이상을 기록했으며 공교롭게도 모두 홈 경기였습니다. 버밍엄과의 2경기에서는 4골을 넣었죠. 그리고 약팀 경기에 유난히 많은 골을 기록했죠. 선덜랜드-블랙번이 리그 중상위권에 있지만 철저한 중위권 팀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맨유 입장에서' 약팀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리버풀전에서 3골을 넣었지만, 올 시즌 리버풀 성적이 매우 저조하기 때문에 강팀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강팀에 약하고, 약팀에 강하다'는 베르바토프의 활약 공식이 스탯에서 입증됐습니다.
그런 베르바토프는 올 시즌 리그 5위 안에 포함된 팀들과의 4경기에서 골이 없었습니다. 지난해 12월 13일 아스날전에서는 전술적인 이유로 결장했고(최근 아스날전 6경기 연속 선발 제외), 지난해 11월 10일 맨시티전에서는 상대 수비진에게 봉쇄 당하면서 후반 32분에 교체 됐습니다. 토트넘과의 2경기에서도 이렇다할 활약없이 후반전 도중에 벤치로 들어왔죠. 맨유 이적 이후 강팀과의 경기에서 부진했던 행보는 올 시즌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상대의 강력한 압박을 받으면 여지없이 무너지는 단점을 극복하지 못했죠. 리그 득점 1위 공격수의 '빛과 그림자' 입니다.
그럼에도 맨유는 베르바토프의 17골이 반갑게 느껴질 것입니다. 베르바토프가 골을 터뜨렸던 8경기에서 맨유가 6승2무를 기록했기 때문이죠. 올 시즌 13승9무를 올렸던 맨유의 성적을 떠올리면, 베르바토프가 맨유의 승점 관리에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리그 1위를 기록중임에도 무승부가 많은 맨유 입장에서는 베르바토프의 존재감을 반갑게 여길 수 있죠. 맨유가 리그에서 우승하려면 베르바토프의 많은 골이 필요합니다. 또한 베르바토프가 골을 기록한 8경기 중에 6경기가 홈에서 펼쳐졌습니다. 앞으로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와 상대하는 팀들은 베르바토프를 경계해야 합니다.
베르바토프의 강력한 무기는 '몰아치기' 입니다. 2008년 여름 맨유 이적 이후 3골 이상 넣었던 경기가 모두 올 시즌(3경기)이었죠. 기복이 심한 단점이 있지만 적어도 올 시즌에는 많은 골을 터뜨렸으며, 한 경기에서 다득점을 노릴 수 있는 힘을 키웠습니다. 테베스-캐롤-놀란 같은 후미 주자들이 따라와도 한 번에 몰아치기를 펼치면 리그 득점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는 명분을 얻게 되죠. 경기력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만큼 골을 넣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몰아치기는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베르바토프의 득점왕 행보에 탄력을 붙일 선수가 바로 루니입니다. 두 선수의 위치가 올 시즌에 뒤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에 베르바토프가 루니의 밑선에서 공격을 조율했다면 올 시즌에는 루니가 쉐도우로 전환하여 베르바토프 득점력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루니가 특유의 이타적인 역량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흔들었다면 베르바토프는 골 생산에 집중하는 패턴이죠. 공교롭게도 루니가 부상 및 이적 파동으로 흔들렸던 지난해 가을에는 베르바토프가 무득점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루니의 폼이 살아나는 현 시점에서는 베르바토프의 골이 계속 될 수 있죠. 아직 시즌이 더 남았지만, 베르바토프의 리그 득점왕 등극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