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팬들이 원했던 '달글리시 마법'은 없었습니다. 디르크 카위트가 후반 중반에 페널티킥 동점골을 기록하면서 재역전이 기대되었지만 오히려 페이스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리버풀의 위기 극복 과정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웠던 경기였습니다.
케니 달글리시 감독 대행이 이끄는 리버풀이 지역 라이벌 에버턴과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비겼습니다. 16일 저녁 11시 5분(이하 한국시간) 안필드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3라운드 에버턴전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전반 29분 하울 메이렐레스가 선제골을 터뜨렸지만 후반 1분 실뱅 디스탱, 후반 7분 저메인 벡포드에게 실점을 허용했습니다. 후반 23분 카위트가 페널티킥 골을 넣었지만 그 이후의 골은 없었습니다. 리버풀과 에버턴은 각각 13위, 12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리버풀, '오버 페이스'에 발목 잡혔던 에버턴전
리버풀의 에버턴전 포메이션은 4-3-3 이었습니다. 레이나가 골키퍼, 존슨-아게르-스크르텔-켈리가 수비수, 메이렐레스-스피어링-루카스가 미드필더, 막시-토레스-카위트가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몇몇 상황에서는 토레스가 막시-카위트 보다 윗쪽으로 올라가면서 4-3-2-1로 변형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라드의 징계 결장 대안은 스피어링 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버턴은 4-4-2를 활용했습니다. 하워드가 골키퍼, 베인스-디스탱-헤이팅아-네빌이 수비수, 오스만-아르데타-펠리아니-콜맨이 미드필더, 아니체브-벡포드가 공격수로 나섰죠. 피에나르는 이적 준비를 위해 리버풀전에서 결장했습니다.
특히 리버풀이 2경기 연속 4-3-3을 활용한 것은 달글리시 감독 대행의 의중으로 파악됩니다. 호지슨 체제에서 4-4-2가 어려움을 겪었고, 베니테즈 체제에서 즐겨 구사했던 4-2-3-1로 회귀하기에는 토레스가 최전방에서 고립당할 가능성이 다분했습니다. 그래서 막시-카위트를 윙 포워드에 배치하여 토레스의 공격 부담을 줄이기로 했죠. 달글리시 감독 대행은 지난 13일 블랙풀전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토레스의 폼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 과정에서 토레스는 상대 수비 뒷 공간을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노리면서 자신의 본래 공격 패턴을 되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4-3-3의 단점은 선수들의 엄청난 체력 및 기동력이 요구됩니다. 커버해야 할 공간이 많아지면서 더욱 부지런히 뛰어야 합니다. 가깝게는 첼시의 4-3-3이 최근 어려움에 빠진 것이 예가 될 수 있습니다. 호지슨 체제에서 롱볼 축구에 의해 경직된 모습을 보였던 선수들이 경기 내내 활발히 움직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럼에도 달글리시 감독 대행이 4-3-3을 꺼내든 이유는 리버풀에게 활력이 필요하다는 의도였습니다. 토레스가 번뜩이는 공격력을 되찾도록 배려하는 전술적 원인도 있지만, 리버풀은 패배주의 악령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더욱 분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호지슨 전 감독처럼 4-4-2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죠.
리버풀은 전반전에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습니다. 메이렐레스 골에 힘입어 1-0으로 앞섰던 것을 비롯, 무수하게 공격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좌우 풀백을 맡은 존슨-켈리가 적절히 오버래핑을 펼치면서 미드필더들이 근처 공간을 장악하고 패스 줄기를 뻗어가는 밸런스가 제법 단단했습니다. 메이렐레스-루카스의 보이지 않는 커버 플레이가 있었음에 리버풀 공격이 활력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제라드 공백을 측면 공격으로 만회하면서 중앙의 비중을 줄였습니다. 스피어링 부진의 타격이 크지 않았던 것도 측면 옵션 및 인사이드 미드필더들의 기동력이 커버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주로 역습 형태의 공격을 취하면서 측면에서의 볼 점유가 많았고 토레스쪽으로 향하는 패스가 부드러웠습니다.
하지만 리버풀의 전반전은 메이렐레스의 골만으로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슈팅 14-5(유효 슈팅 10-2, 개)로 앞섰지만, 수치를 놓고 보면 1~2골을 더 추가할 수 있었습니다. 골 결정력 부족이 문제였죠. 전반 11분 토레스의 왼발 발리슛이 너무 높게 뜬 것, 전반 17분 토레스가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왼발 아웃사이드 킥을 날렸던 것이 크로스바를 강타했고 카위트의 세컨 슈팅까지 높게 떴습니다. 전반 30분 막시가 골문 왼쪽 부근에서 날렸던 슈팅까지 높았죠. 에버턴 골키퍼 하워드의 슈퍼 세이브 3개에 의해 골 기회를 놓쳤던 원인도 없지 않았지만 추가골 기회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특히 토레스는 골 결정력이 주무기였던 공격수라는 점에서 전반 11-17분 상황이 아쉬웠습니다.
문제는 리버풀의 후반 초반 입니다. 디스탱-백포드에게 골을 헌납했기 때문이죠. 리버풀 오름세에 찬물을 끼얹은 장본인은 스크르텔 이었습니다. 후반 1분 에버턴의 왼쪽 코너킥 상황에서 디스탱과의 대인마크에서 밀려 실점을 허용했습니다. 무게 중심을 낮게 잡은 바람에 '점프하여 헤딩 슈팅을 노리는' 디스탱 파워에 밀려 공중볼 다툼을 펼칠 타이밍까지 놓치고 말았죠. 후반 7분 백포드 역전골 허용 과정에서는 볼을 잘못 걷어낸 것이 실점의 화근으로 이어졌습니다. 에버턴의 공중볼을 커팅했으나 몸이 비틀거리면서 오른발로 볼을 걷었던 것이 오스만에게 걸리고 말았죠. 볼은 벡포드에게 지체없이 향하면서 경기는 순식간에 1-2가 됐습니다.
스크르텔은 호지슨 체제에서도 불안한 수비력을 일관하며 팀에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지난 시즌에도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로 결정적인 실점을 헌납하거나 위기를 초래했던 장면이 종종 있었습니다. 상대 선수의 움직임 동선을 파악하는 속도가 늦으며 위기 대처가 미흡합니다. 에버턴전에서 그랬던 것 처럼, 상대팀이 공세를 펼칠 때는 허둥지둥대는 수비력을 일관합니다. 센터백으로서 침착하게 수비 대응을 펼치면서 때로는 강력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 조절이 잘 안됩니다. 캐러거 같은 대형 센터백으로 성장하려면 실수를 줄여야 합니다. 그것이 리버풀의 오름세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 이후 리버풀은 후반 23분 카위트의 페널티킥 골에 의해 스코어를 2-2로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후반 중반부터 기동력이 저하되는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선수들이 전반전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오버 페이스를 했던 것이 후반전 경기력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죠. 그래서 공격 작업이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조 콜-바벌-쉘비 같은 공격 성향의 선수들을 후반 중반에 조커로 투입하지 않았던 달글리시 감독 대행의 교체 타이밍이 늦었던 것이 리버풀에게 아쉬웠습니다. 후반 시작과 함께 아게를 빼고 키르기아코스, 후반 36분 메이렐레스를 빼고 쉘비를 투입한 것이 전부였죠. 기동력이라면 바벌의 역량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 내내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펼쳤던 카위트의 페이스는 눈에 띄게 떨어졌지만 끝내 교체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스피어링의 부진도 아쉬웠습니다. 90분 풀타임 출전했지만 경기 내내 이렇다할 영향력이 없었죠. '제2의 제라드'로 꼽히는 23세 만년 유망주의 꼬리표를 떼지 못했습니다. 홀딩맨인지, 앵커맨인지, 아니면 박스 투 박스 성향의 선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한 존재감을 과시하지 못했습니다. 팀의 연계 플레이에 적극 참여하는 의지까지 떨어졌죠. 그래서 메이렐레스-루카스 같은 인사이드 미드필더들의 활동 부담이 많아졌고 리버풀 오버 페이스의 또 다른 원인이 됐습니다. 오는 22일 울버햄턴전(제라드의 출전 정지 마지막 경기)을 앞둔 리버풀로서는 제라드 공백을 메울 적임자로 누구를 내세워야 할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안풀리면 달글리시 감독 대행의 첫 승이 연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