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은 호주전에서 1-1로 비겼지만 아시안컵 우승 도전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남은 본선에서 인도전이 남아있고, 인도가 이번 대회 최약체임을 감안하면 조광래호의 8강 진출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분명합니다. 호주전은 비록 승리하지 못했지만 아시아 제패를 위한 소중한 배움을 얻는 경기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 약이 쓴 맛 이었지만요.
호주전에서는 '슈퍼 서브(Super sub)' 효과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교체 이전보다 경기력이 떨어졌다는 평가입니다. 조광래 감독은 1-1 상황이었던 후반 21분 구자철-지동원을 빼고 염기훈-유병수를 투입하여 결승골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동반 부진에 빠졌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전술이 제로톱과 4-2-3-1 사이에서 혼란에 빠지면서 호주의 반격에 의해 밸런스가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조광래 감독은 후반 44분 유병수를 벤치로 내리고 윤빛가람을 투입하는 마지막 교체 카드를 썼지만 결승골을 노리기에는 기회 및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유병수 교체가 의미하는 슈퍼 서브의 중요성
슈퍼 서브는 경기 도중에 투입되어 자신이 소속된 팀의 유리한 흐름을 주도하는 능력을 지닌 선수를 말합니다. 짧은 출전 시간 동안에 공격 다방면에서 적극적인 공헌을 펼치며 팀을 이끌죠. 국내에서는 안정환-이원식, 해외에서는 솔샤르 등이 슈퍼 서브로 각광을 받았던 대표적 선수들입니다. 다른 누구보다 열심히 뛰면서, 상대 수비의 떨어진 집중력 및 체력을 공략할 수 있는 '치명적 무기' 입니다. 감독 입장에서는 벤치 자원의 활용이 선발 스쿼드 운용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또한 슈퍼 서브는 풀타임을 뛸 수 있는 체력이 부족하거나 경험이 떨어지는 선수가 도맡기 쉽습니다. 수원의 이현진이 전자라면 맨유의 에르난데스는 후자에 속합니다. 이현진은 지난해 슈퍼 서브로서 맹활약을 펼쳐 만년 유망주의 꼬리표를 떨치고 '수원의 앙리'로 떠올랐습니다. 에르난데스는 넉넉하지 않은 출전 시간 속에서 절정의 골 결정력을 과시하며 '솔샤르의 재림'으로 거듭났습니다. 수원은 이현진 효과에 힘입어 꼴찌 수렁에서 벗어나 중위권으로 도약했고, 맨유는 에르난데스가 있음에 이길 수 있는 경기가 많아졌습니다.
슈퍼 서브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유병수가 과연 조광래호에 어울리는 슈퍼 서브였는지 말입니다. 박주영의 아시안컵 불참으로 공격진이 허약해진 현 시점에서는 유병수의 호주전 부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유병수와 함께 투입된 염기훈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자기 포지션은 아닙니다. 왼쪽 윙어 및 투톱 공격수로 출전하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좁은 공간에서 패스를 풀어가는 능력이 특출나지 않기 때문에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타입은 아닙니다. 호주전에서 슈퍼 서브로서 두각을 떨치기에는 제약적인 측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호주전만을 놓고 보면, 유병수는 조광래호의 슈퍼 서브로서 제 몫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유병수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 조광래 감독의 제로톱 전술에 어울리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몇달 전 허정무 인천 감독의 트위터에서 움직임이 좋아졌다는 칭찬을 받았지만 호주전에서는 그것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슈퍼 서브로서 깔끔히 임무 수행을 하려면 더 많이 움직이면서 호주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들거나 아니면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를 파고들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호주전에서의 몸놀림은 선발 출전하는 선수를 보는 듯 했습니다. 인천에서 선발 출전에 익숙했기 때문에 대표팀에서의 조커가 아직 낯설었죠.
그렇다고 유병수의 능력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유병수는 지난해 K리그 득점왕(28경기 22골)입니다. 조광래호 공격 옵션 중에서 골 생산 리듬이 가장 좋으며 몰아치기까지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유병수가 지동원에게 주전에서 밀렸던 것은 조광래 감독의 전술적 판단에 의해서 였습니다. 조광래 감독은 박주영 공백을 제로톱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이타적인 역량이 강한' 지동원을 최전방에서 왼쪽으로 내리는 패턴을 주문했습니다. 그 작전은 바레인전, 호주와의 후반 중반까지 성공적이었죠. 유병수 대신에 지동원을 주전으로 기용했던 조광래 감독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후반 중반 1-1 상황에서 골을 터뜨리는 결정타를 노리기 위해서는 특급 골잡이의 존재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조광래 감독은 유병수를 떠올렸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작전은 예상외로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유병수가 제로톱에서의 움직임이 매끄럽지 못하면서 후반 44분에 윤빛가람과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조광래 감독의 교체가 차가웠던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선수 본인의 부진도 생각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병수가 슈퍼 서브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이 호주전에서 드러나고 말았죠. 골을 터뜨리는 임펙트를 제외하면 슈퍼 서브로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에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결국, 유병수는 대표팀 선발에 어울렸던 선수였죠. 하지만 지동원이 이미 입지를 다졌습니다.
슈퍼 서브로서의 역량을 놓고 보면, 유병수보다는 손흥민이 제격 이었습니다. 골 결정력을 비롯 순발력, 패싱력, 드리블, 개인기 등 공격수로서 다양한 장점을 지녔습니다. 시리아-바레인전에서 슈퍼 조커로 출전하여 최상의 몸놀림을 과시했던 경험 또한 플러스로 작용합니다. 바레인전에서는 곽태휘 퇴장 여파로 어쩔 수 없이 교체 되었지만 짧은 시간 속에서 연계 플레이를 풀어가는 감각이 부드러웠습니다. 또한 좌우 윙어-공격형 미드필더-공격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전술적 활용 가치가 컸죠. 공격 과정에서의 세밀한 플레이가 약점으로 꼽히지만 조커로서 왕성한 에너지로 커버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한국은 호주전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유병수 대신에 손흥민을 투입했다면 반드시 이겼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염기훈-유병수 투입 이전까지 한국이 경기 흐름에서 우세를 점했기 때문이죠. 박지성-이청용이 저돌적인 쇄도로 호주 수비수들의 고질적인 순발력 부족을 간파하면서 호주 센터백 사샤의 거친 플레이를 유도했습니다. 전반전에는 경고까지 엮어냈죠. 만약 손흥민이 원톱 자리에 들어갔다면 사샤와 경합하면서 골 기회를 마련할 수 있는 명분이 있었습니다.(바레인전에서 원톱으로 출전) 긍정적 결과론을 기대했던 관점에서 말입니다.
그럼에도 손흥민에 미련이 남는 이유는 호주전 무승부가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축구가 매 경기를 이길 수 있는 스포츠 종목은 아니지만, 51년 동안 아시안컵 제패에 실패했던 한국 입장에서는 승리 만큼 절실한 것이 없습니다. 이미 바레인을 제압했고, 호주전이 본선 2차전이었기 때문에 이번 경기에서 슈퍼 서브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조광래호의 소득임에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유병수 활용은 조광래호의 새로운 고민으로 등장했습니다. 오는 18일 인도전에서 그 해답을 찾을 것으로 보이지만, 유병수가 팀 전술에 맞춰가는 노력을 보여줘야 대표팀에서의 입지를 키울 수 있습니다. 한국 축구가 킬러 부족에 시달렸음을 상기하면 유병수의 분발이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