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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매끄럽지 못했던 리버풀전 승리

 

경기는 이겼지만 내용이 좋지 않았습니다. 페널티킥으로 승리했지만 90분 동안 상대 압박을 이겨내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상대 선수 1명이 퇴장 당한 이후에는 수적 우세에 힘입어 추가 골을 넣을 것으로 보였지만 끝내 골망을 터뜨리지 못했습니다. 라이벌전 승리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숙적 리버풀을 제압하고 FA컵 4라운드(32강)에 진출했습니다. 9일 저녁 10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FA컵 3라운드(64강)에서 리버풀을 1-0으로 물리쳤습니다. 전반 2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다니엘 아게르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얻었고, 라이언 긱스가 왼발로 리버풀 오른쪽 골망을 흔들며 맨유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한편, 리버풀 주장 스티븐 제라드는 전반 31분 양발 태클로 퇴장을 당하며 팀의 추격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최근 리버풀전 3연승을 달성했으며 오는 30일 또는 31일에 사우스햄턴(3부리그 소속)과 4라운드를 치릅니다. 그리고 1991년 이후 20년 만에 리버풀 지휘봉을 잡은 케니 달글리시 감독 대행은 복귀전에서 패했습니다.

리버풀과 상대한 맨유, 루니 공백 실감했다

맨유와 리버풀은 '가용할 수 있는' 최정예 멤버를 구성하여 4-4-2로 맞섰습니다. 박싱데이 기간 이후에 FA컵 3라운드를 맞이했기 때문에 로테이션 시스템을 쓸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라이벌에게 질 수 없다'는 의식이 스쿼드에 반영됐습니다. 맨유는 쿠쉬착을 골키퍼, 에브라-에반스-퍼디난드-하파엘을 수비수, 긱스-캐릭-플래쳐-나니를 미드필더, 베르바토프-에르난데스를 공격수에 배치했습니다. 이에 리버풀은 레이나를 골키퍼, 아우렐리우-스크르텔-아게르-캘리를 수비수, 막시-제라드-루카스-메이렐레스를 미드필더, 카위트-토레스를 공격수로 활용했습니다.

라이벌전의 희비는 경기 초반에 결정됐습니다. 아게르가 전반 1분 베르바토프를 방어하는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허용했고 긱스가 골을 터뜨렸습니다. 그 이후 두 팀 모두 골을 넣지 못하면서 맨유가 1-0으로 승리했죠. 하지만 아게르 반칙은 주심을 맡은 하워드 웹의 오심으로 판단하기 쉽습니다. 베르바토프 움직임이 헐리우드 액션의 여지가 충분하죠. 그럼에도 '완벽한 오심'이 아닌 이유는 아게르가 왼발로 베르바토프의 하체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베르바토프가 넘어지는 몸 동작이 컸기 때문에 헐리우드 액션으로 볼 수 있었지만(정확히는 발의 스텝이 꼬였던) 신체 접촉은 분명히 있었습니다.주심의 재량에 의해 결정될 수 밖에 없었죠.

전반 31분 제라드 퇴장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당한 판정 입니다. 하프라인 부근에서 캐릭에게 양발로 태클을 걸었기 때문이죠. 양발 태클은 볼을 소유한 선수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는 비신사적인 행위로서, 시도하는 것 자체가 퇴장입니다. 잠재적으로 선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죠. 제라드의 양발 태클은 캐릭의 발목 혹은 정강이쪽을 향했기 때문에 퇴장이 맞습니다. 특리 리버풀에게 제라드 퇴장이 아쉬운 이유는 맨유를 상대로 역전할 수 있는 발판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까지의 경기 내용에서 맨유를 앞섰기 때문이죠. 0-1 만회를 위해 전방 압박을 강화하며 맨유 진영을 공략했습니다. 제라드 퇴장이 없었다면 경기가 어떻게 끝났을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리버풀에게 아쉬운 또 한 가지는 0-1 이후의 공격 대응 이었습니다. 맨유의 볼을 커팅하여 공격 기회를 잡으면 빠른 타이밍의 종패스로 역습 기회를 노리기보다는 철저히 지공에 의존했습니다. 특히 루카스는 백패스, 횡패스 위주의 공격 전개를 펼치면서 맨유 수비진의 압박 타이밍을 벌어주는 불안함을 연출했습니다. 제라드가 측면쪽을 넓게 벌리면서 침투 패스를 연결했던 것과 대조적이죠. 그래서 토레스가 2선으로 내려오면서 연계 플레이에 관여했지만 맨유 진영을 뚫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카위트가 퍼디난드에게 봉쇄당했던 것은 리버풀 공격이 어려워지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라드 퇴장은 맨유 경기력의 플러스로 작용했습니다. 전반전 슈팅 숫자에서 2-7(유효 슈팅 1-2, 개)로 밀렸으나 경기 종료 후에는 17-12(유효 슈팅 9-4, 개)로 역전됩니다. 후반전에 15개의 슈팅을 퍼부었던 셈이죠. 제라드 퇴장 이전까지는 리버풀 진영으로 접근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패스 미스가 잦았거나 5번의 롱볼을 띄우는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힘겨웠던 기세가 전반 37분 나니와 하파엘이 박스 안에서 2대1 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전방 돌파가 살아나는 이득을 얻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부진했던 긱스의 '마법같은' 드리블도 그때부터 볼 수 있었습니다. 리버풀이 수적 열세에 시달렸던 흐름을 제대로 노렸죠.

그럼에도 맨유는 추가골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베르바토프-에르난데스 투톱이 리버풀 수비에 꽁꽁 묶였기 때문입니다. 리버풀 수비진이 두 공격수가 후방에서 패스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사전에 봉쇄하고 타이밍까지 끊으면서 맨유의 공격이 원활하지 못했죠. 그래서 맨유 미드필더진과 공격수 사이의 간격이 계속 벌어졌습니다. 제라드 퇴장 이전과 이후에 항상 변함 없었던 모습이었죠. 베르바토프는 좁은 공간에서 볼을 터치하느라 골문쪽으로 파고들 수 있는 힘을 잃었고 그 과정에서 순발력 저하를 노출합니다. 에르난데스도 연계 플레이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못하면서 팀 공격에 이렇다할 도움을 주지 못했죠. 둘 다 타겟맨 역할에 익숙했으니 마땅한 쉐도우가 없었습니다.

맨유의 루니 부상 공백이 아쉬운 이유는 베르바토프-에르난데스의 약점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니가 쉐도우로서 2선과 최전방을 활발히 오가며 리버풀 수비진영을 휘저었다면 맨유 공격이 수월하게 풀렸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 이유는 루니의 올 시즌 패턴이 베르바토프 또는 에르난데스의 골 생산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에르난데스는 루니와 공존하지 못하면서 활동량이 늘어나는 부담을 안았고, 후방에서 볼을 받는 것을 의식했고(리버풀 수비진이 그 흐름을 읽으며 압박했던), 더 많이 뛰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 부분을 루니가 해소할 수 있었고 시야를 더 넓히면 박지성도 거론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에르난데스는 성장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맨유의 슈퍼조커로서 두각을 떨쳤던 것은 사실이지만 문전에서의 본능적인 골 감각 빼고는 특출난 장점이 없었습니다. 스피드가 빠르지 않고, 팀의 연계 플레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며(루니-베르바토프에 비해), 활동량이 많은 선수가 아닙니다. 그래서 맨유의 타겟맨으로 뛰면서 베르바토프와 역할이 겹쳤던 것이죠. 23세의 어린 선수이기 때문에 부족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적인 공격수로 발돋움하려면 더 노력해야 합니다. 새로운 장점을 통해 스스로의 파괴력을 길러야죠. 베르바토프는 항상 상대의 강력한 수비에 약했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리버풀전에서는 에르난데스가 분발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루니 공백이 컸던 맨유의 리버풀전 승리가 결코 매끄럽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면, 리버풀의 달글리시 감독 대행 입니다. 비록 리버풀이 맨유에게 패했지만 수비력에서는 달글리시 감독 대행의 의중을 파악 할 수 있었습니다. 호지슨 전 감독 시절에는 수비 조직력 불안에 허덕였지만 맨유전에서는 상대 공격수들이 전진하거나 패스를 날리는 길목을 사전에 차단하고 공간을 좁히는데 성공했습니다. 균형 잡힌 라인 컨트롤-커버 플레이 속에서 캐러거 부상 공백을 메웠죠. 비록 맨유에게 0-1로 패했지만 필드골을 허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제라드 퇴장 이후에도 실점하지 않았습니다. 달글리시 감독 대행이 리버풀 성적 부진 탈출을 위해 수비진에 신경썼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직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리버풀의 앞날 행보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예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