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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호지슨 경질, FA컵 맨유 원정에 달렸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박싱데이가 끝나면서 몇몇 감독들의 입지가 단단히 좁아졌습니다. 카를로 안첼로티 첼시 감독, 제라르 울리에 애스턴 빌라 감독, 아브람 그랜트 웨스트햄 감독, 그리고 로이 호지슨 리버풀 감독입니다. 4명의 지도자는 박싱데이 마지막 경기(22라운드)에서 패했던 공통점을 안고 있으며 최근 성적 부진으로 경질 위기에 몰렸습니다. 크리스 휴튼 전 뉴캐슬 감독, 샘 앨러다이스 전 블랙번 감독에 이어 올 시즌 세번째 또는 그 이상의 감독 경질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호지슨 감독입니다. 시즌 초반부터 지금까지 경질 여부로 주목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올 시즌 2라운드였던 지난해 8월 24일 맨체스터 시티전 0-3 완패 및 무기력한 경기 내용이 빌미가 되어 리버풀 팬들에게 안좋은 이미지를 심어줬고, 지난 10월 4일 블랙풀전 1-2 패배 및 18위(강등권) 추락이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급기야 10월 17일 에버턴전에서는 0-2로 패하면서 19위까지 떨어졌습니다. 에버턴은 지역 라이벌 관계입니다. 그 이후 강등권 탈출에 성공했지만 리그 7위권 진입에 번번이 실패한 끝에, 지난 6일 블랙번에게 1-3으로 패하면서 12위(7승4무9패, 승점 25)를 기록하게 됐습니다.

현실적으로 리버풀의 빅4 재진입 가능성은 적습니다. 리그 4위 토트넘(10승6무5패, 승점 36)과의 승점 차이가 11점이기 때문입니다. 토트넘을 따라잡으려면 4경기를 뒤집어야 합니다. 하지만 토트넘은 5위 첼시와 빅4 싸움을 펼치는 중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경기를 이기기 위해 노력할 것이 분명합니다. 자존심 회복을 노리는 첼시, 중상위권을 기록중인 선덜랜드-볼턴 또한 같은 마음입니다.(칼링컵과 FA컵 우승팀이 리그 4위 이내 팀이라면 중상위권팀이 유로파리그 진출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리버풀의 4위권 진입을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리버풀은 성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돌파구가 마땅치 않은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당초에는 1월 이적시장이 리버풀에게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호지슨 감독이 선호하는 성향의 선수들을 영입하여 전력 보강을 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호지슨 감독은 기존 선수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페르난도 토레스를 최전방에 고정시켜 롱볼 따내기 및 포스트 플레이를 주문하거나 하울 메이렐레스를 오른쪽 윙어로 전환하도록 주문했습니다. 몇몇 경기에서 토레스의 빠른 움직임을 유도하거나 메이렐레스를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했던 사례도 있었지만 만족할 성과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특히 토레스는 호지슨 감독을 만난 이후부터 기복이 심해졌으며 부상 이전의 폼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리버풀의 1월 이적시장 최상의 시나리오는 새로운 감독이 원하는 선수들을 영입하여 스쿼드의 내실을 키우는 것입니다. 더 이상 감독 교체가 늦어지면 1월 이적시장이 종료되거나 마감 날짜가 촉박해지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호지슨 감독 경질에 대한 결단이 빨라야 합니다. 첼시가 2009년 2월에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전 감독을 경질하고 거스 히딩크 현 터키 대표팀 감독을 임시직으로 영입하여 성적 부진을 막았던 사례가 있었지만, 감독 교체 시기가 늦었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원하는 선수를 1월 이적시장에서 데려오지 못했죠. 그런 리버풀이 호지슨 감독과 작별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물론 호지슨 감독을 경질할 타이밍은 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뉴캐슬-블랙번이 지난해 12월 초순 및 중순에 감독 교체를 단행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리버풀 같은 경우에는 12월 30일 '꼴찌였던' 울버햄턴전 0-1 패배, 지난 6일 블랙번전 1-3 패배 이후에 호지슨 감독을 경질할 수 있는 명분이 실렸습니다. 그럼에도 리버풀은 지금까지 호지슨 감독을 계속 안고 갔습니다. 박싱데이가 10~11일에 4경기씩 치르는 빠듯한 일정이었기 때문에 감독 교체의 위험성이 컸죠. 12월 27일 블랙풀전이 폭설로 취소되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나머지 일정이 벅찼습니다. 기간 도중에 감독을 경질하면 팀을 수습할 여유가 없는 단점을 안게 되죠.

하지만 오는 9일 저녁 10시30분(이하 한국시간) FA컵 3라운드(64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전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리버풀에게 있어 맨유는 철천지 원수 같은 존재의 라이벌이기 때문입니다. 지역 감정까지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맨유전 패배를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이죠. 더욱이 맨유전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진행됩니다. 리버풀은 2009년 3월 14일 맨유 원정에서 4-1 대승을 거뒀지만 그 이후 올드 트래포드에서 2연패를 당했습니다. 또한 리버풀의 올 시즌 리그 원정 성적은 1승2무7패입니다. 홈 경기에서 6승2무2패를 거둔것과 대조적입니다. 객관적으로 리버풀이 맨유에게 밀립니다.

물론 맨유는 리버풀 전에서 최정예 멤버를 가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싱데이가 끝난 뒤에 펼쳐지는 경기이기 때문에 주축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목적 삼으며 백업 멤버들을 기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맨유는 지난 시즌 FA컵 3라운드에서 리즈 유나이티드에게 0-1로 패했습니다. 당시 홈 경기였고, 리즈가 라이벌이자 당시 3부리그(현 2부리그)에 속했던 약팀이었고, 루니-베르바토프 투톱을 가동했기 때문에 패배의 충격이 컸습니다. 올 시즌 FA컵 3라운드에서는 두 번 연속 라이벌 팀에게 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맨유는 리버풀전에서 방심하지 않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문제는 리버풀도 맨유전에서 최정예 멤버를 구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축 선수들이 박싱데이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기 때문입니다. 체력적으로는 맨유보다 더 불리합니다. 맨유가 5일 스토크 시티전을 치렀다면 그 다음날에는 리버풀이 블랙번전을 소화했습니다. 또한 맨유는 선수층이 두껍기 때문에 많은 선수들을 가동할 수 있는 여유가 있죠. 리버풀이 '절대 질 수 없다'는 응집력으로 무장하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지만, 현재의 리버풀은 호지슨 감독의 전술적인 패착(롱볼 축구) 및 제이미 캐러거 부상 이탈에 따른 수비 불안까지 겹치면서 경기력이 어지러진 상황입니다. 만약 리버풀이 맨유 원정에서 승리하려면 부단한 각오를 갖고 올드 트래포드에 나서야 합니다.

그런 리버풀은 맨유전이 끝나면 그 다음은 16일 에버턴과의 머지사이드 더비 입니다. 홈 경기라는 특수성까지 안고 있죠. 하지만 리버풀이 맨유전에서 패하면 머지사이드 더비까지 호지슨 감독을 안고 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 시나리오는 호지슨 감독에게 믿음을 주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호지슨 감독은 지난 시즌 7위에 그친 리버풀의 부활이 아닌 퇴보의 아이콘입니다. 물론 그에게 머지사이드 더비 또는 그 이후까지 팀을 맡길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맨유-에버턴전은 리버풀에게 매우 중요한 경기입니다. 결단하지 않으면 팀은 더욱 힘들 수 있습니다.

결국, 호지슨 감독의 경질은 맨유 원정에 달렸습니다. 라이벌전 승리는 '생명 연장'의 기회가 되어 에버턴전을 맞이할 수 있지만, 만약 실패하면 경질 가능성이 더욱 힘을 얻게 됩니다. 맨유 원정 승리 이후 경질하는 수순은 결코 깨끗하지 못하죠. 또는 맨유 원정 이전에 호지슨 감독을 떠나 보낼 수 있습니다. 맨유전 전망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호지슨 감독을 경기 하루전에 해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리버풀은 팀의 개선과 혁신을 위한 중요한 시기를 맞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