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는 지난 여름에 스페인 발렌시아 소속 윙어였던 다비드 실바(24) 영입에 2500만 파운드(약 441억원)를 투자했습니다. 실바는 170cm 단신 및 왜소한 체격의 소유자로서 시즌 초반 프리미어리그 특유의 거친 몸싸움에 버거움을 느꼈습니다. 과연 잉글랜드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지 여부가 관심사였죠. 맨시티가 그동안 스쿼드 보강에 많은 돈을 쓰면서 몇몇 먹튀 선수들을 양산하는 문제점이 있었다는 점에서(그 범주에 아데바요르가 포함 될 수 있습니다.) 실바의 '잉글랜드 드림'을 낙관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실바는 맨시티 공격에 없어선 안 될 옵션입니다. 맨시티의 측면 공격을 주도하는데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맨시티가 수비 안정에 무게를 두거나 카를로스 테베스에게 골을 몰아주는 체제를 진행했기 때문에 실바의 공격력이 과소평가 될 여지가 작용합니다. 그렇지만 맨시티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2위로 도약했던 원동력 중에 하나는 실바의 영입이 성공적이었다는 점입니다. 다른 측면 옵션들 중에서 실바의 존재는 맨시티에 각별할 것입니다.
대표적인 경기가 29일 애스턴 빌라전 이었습니다. 맨시티는 마리오 발로텔리의 해트트릭(페널티킥 2골 포함), 줄리온 레스콧의 추가골에 힘입어 4-0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원동력은 실바에게 있었습니다. 실바는 전반 6분 아크 왼쪽에서 발로텔리와 두 번의 패스를 주고 받았는데, 특히 왼발로 내밀었던 두번째 패스는 상대 수비가 차단할 타이밍을 놓치는 킬패스가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로텔리가 페널티킥을 얻으면서 골을 넣었죠. 전반 26분에는 오른쪽 측면에서 야야 투레와 2대1 패스를 주고 받으며 문전쪽으로 쇄도하는 과정에서 슈팅을 날렸던 것이 상대 골키퍼 펀칭에 이은 발로텔리의 리바운드 골로 이어졌습니다.
골 장면에만 관여했던 것은 아닙니다. 맨시티가 전반전에 3골을 몰아붙인 것을 비롯, 경기 내내 애스턴 빌라의 수비 진영을 괴롭힐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실바가 있었습니다. 주 포지션이었던 왼쪽 뿐만 아니라 중앙 및 오른쪽에서도 볼을 터치하고 연계 플레이를 이어주면서 맨시티 공격의 활로를 개척했죠. 레오 코커-베넌-페트로프가 구축했던 애스턴 빌라 중원 뒷 공간을 마음껏 누비면서 상대 수비 밸런스를 흔들었습니다. 그 과정이 민첩했기 때문에 상대 수비가 막아내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맨시티 선수들이 실바의 움직임을 빠르게 읽으며 패스를 연결했죠. 실바는 스위칭 과정에서도 여러차례 간결한 스루 패스를 띄우며 맨시티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공격 패턴은 올 시즌 내내 꾸준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의 윙어이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 얽메이지 않고 성실히 프리롤 역할을 수행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상대 수비를 가볍게 제치는 기교와 부드러운 발재간, 경기 템포 조절 능력이 빛을 발하면서 맨시티 공격의 다채로움을 이끌었습니다. 시즌 초반에는 테베스의 골 기회를 의식하는 패스가 여럿 있었지만 최근에는 특정 선수를 보조하기 보다는 팀 공격의 전체를 짊어지는 패싱력으로 무장했습니다. 불과 한달 전까지 주춤했던 맨시티가 다시 2위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실바 효과'를 통한 공격의 다채로움이 빛을 발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바는 공격 센스가 탁월한 선수입니다. 드리블이 그 예 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볼을 지켜내면서 드리블을 시도하는 동작이 조급하거나 위축되지 않습니다. 상대 수비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공간을 파악하며 동선 방향을 바꾸고 드리블을 성공시킵니다. 거친 수비에 시달리거나 동료 선수와의 간격이 벌어졌을 때 버거웠던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상대 수비 뒷 공간을 노리는 본능 만큼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에 예측 불가능한 패스를 날리며 맨시티 공격의 색깔을 화려하게 덧칠했죠.
이러한 실바의 창의성은 기존 윙어들과의 차별화로 이어집니다. 2008/09시즌과 2009/10시즌에 각각 왼쪽 윙어를 맡았던 호비뉴(현 AC밀란) 크레이그 벨라미(현 카디프 시티 임대)는 돌파 위주의 공격을 선호합니다. 발재간 및 스피드가 뛰어난 파괴적인 윙어들이지만 때로는 상대 수비에 막히면 팀 공격이 매끄럽게 풀리지 않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12월 마크 휴즈 전 감독(현 풀럼) 시절까지는 공격 옵션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문제점에 직면하면서 두 선수의 돌파 성향 공격이 두드러졌습니다. 하지만 맨시티와 상대하는 팀들은 그 특징을 읽으면서 협력 수비로 이겨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호비뉴는 2009년 1월 부터 슬럼프에 빠지더니 부상까지 겹치면서 지난 1월 맨시티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맨시티 측면을 담당하는 아담 존슨, 제임스 밀너의 성향은 실바와 큰 틀에서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 다릅니다. 단점만을 언급하면, 존슨은 공격 패턴이 한쪽 방향으로 쏠리는 단조로움이 있습니다. 밀너는 가끔 볼 배급이 정확하지 못하거나 팀 공격 템포를 끊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존슨은 오른쪽, 밀너는 왼쪽 및 중앙 미드필더를 맡지만 실바처럼 2선 모든 지역에서 공격에 관여하는 윙어들은 아닙니다. 물론 존슨-밀너는 각자만의 특화된 장점이 있기 때문에 실바와 더불어 로테이션 형태로 좌우 윙어를 번갈아가고 있지만(발로텔리, 야야 투레까지 포함), 그만큼 실바의 존재감이 맨시티에 있어 특별합니다.
물론 실바는 맨시티에서 많은 골을 터뜨리지 않았습니다. 올 시즌 23경기에서 2골 5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시즌 발렌시아에서 36경기 10골 7도움을 올렸음을 감안하면 골 기록이 아쉬울 수 있습니다. 잉글랜드와 스페인 리그 스타일의 차이점 및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적응에 따른 문제가 제가 될 수 있지만,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맨시티의 팀 플레이에 익숙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실바가 존재해야 테베스-발로텔리 같은 공격수들이 골을 노리는데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자기 역할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지난 시즌에 투톱이나 스리톱을 쓰지않고 올 시즌 4-2-3-1의 원톱 체제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도 실바의 존재감과 밀접하죠.
그래서 맨시티의 다비드 실바 영입은 성공작입니다. 피지컬 문제를 안고 프리미어리그에서 두각을 떨친 것, 맨시티의 붙박이 주전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한 성과입니다. 세계 축구의 대세가 '기술 축구'라는 점에서 맨시티의 실바 영입은 탁월한 선택 이었습니다. 축구는 체격이 좋은 선수들에게 유리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최근에 깨지는 추세이고,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테크니션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가 즐비합니다. 특히 실바가 앞으로 두각을 떨치면서 프리미어리그 경기 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하면 맨시티 공격의 세기가 부쩍 높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