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끄는 아스날이 '런던 라이벌' 첼시를 제치고 프리미어리그 2위로 뛰어 올랐습니다. 경기 내용에서도 일방적인 우세를 점하면서 첼시전 5연패를 앙갚음 했습니다. 반면, 첼시는 부진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리그 4위 이탈 가능성이 현실화 됐습니다.
아스날은 28일 오전 5시(이하 한국시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9라운드 첼시전에서 3-1로 승리했습니다. 전반 44분 알렉산드로 송 빌롱이 선제골을 넣었으며 후반 6분 세스크 파브레가스, 후반 8분 시오 월컷이 추가골을 터뜨리며 첼시를 격침했습니다. 후반 11분 브리니슬라프 이바노비치에게 만회골을 내줬지만 리드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전체 슈팅에서 10-12(개)로 밀렸으나 유효 슈팅에서 6-1(개)로 앞섰고, 점유율에서는 55-45(%)의 우세를 점했습니다.
이로써, 아스날은 리그 2위(11승2무5패, 승점 35)에 진입했으며 첼시는 4위(9승4무5패, 승점 31)를 지켰습니다. 특히 첼시는 최근 리그 8경기에서 1승3무4패에 그쳤고, 5위 토트넘(8승6무4패, 승점 30)과의 승점 차이가 불과 1점에 불과합니다. 만약 토트넘이 29일 뉴캐슬전에서 승리하면 첼시는 리그 5위로 추락합니다. 런던 팀들의 희비를 엇갈리게 했던 결정적 승부처 5가지를 정리했습니다.
1. 파브레가스 1골 2도움vs램퍼드 부진
아스날-첼시는 팀의 공격을 지휘하는 플레이메이커가 부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선발 출전'했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아스날은 파브레가스, 첼시는 램퍼드 였습니다. 두 명은 런던 라이벌 대결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았는데, 결과는 파브레가스의 승리였습니다. 파브레가스는 전반 44분 페레이라와의 경합끝에 근처에 있던 송 빌롱에게 패스를 밀어주면서 골을 도왔고, 후반 6분에는 역습 상황에서 체흐를 제친 월컷의 패스를 받아 오른발로 가볍게 골을 기록했습니다. 이어 2분 뒤에 또 역습 기회를 맞이하여 월컷과의 2대1 패스 과정에서 도움을 올렸습니다. 첼시전 3골에 모두 관여하는(1골 2도움) 맹활약을 펼쳤죠.
파브레가스의 존재감이 아스날에게 천군만마 같았던 이유는 첼시와의 중원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입니다. 아스날이 그동안 첼시에게 취약했던 원인 중에 하나는 첼시 미드필더들의 터프한 수비력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파브레가스는 전반 중반부터 집중력이 떨어졌던 상대 허리 뒷 공간을 비집고 파고들며 판 페르시와 함께 연계 플레이를 엮으며 아스날의 공격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반면 램퍼드는 아스날전에서 이렇다할 활약이 없었습니다. 전반 초반에 전방쪽으로 날카로운 패스를 연결했던 것을 제외하면 어떠한 임펙트도 없었죠. 송 빌롱의 강한 견제를 받으면서 공격력이 주춤했고, 그 결과는 말루다-드록바-칼루로 짜인 스리톱이 동시에 고립되는 패인으로 직결됐습니다.
2. 아르샤빈vs아넬카 결장, 아스날에게 호재가 됐다
아스날은 첼시전에서 아르샤빈을 출전시키지 않았습니다. 최근 부진했기 때문이죠. 나스리-월컷 같은 빠른 주력의 소유자들이 4-3-3 좌우 윙 포워드를 맡아 첼시 수비진을 거침없이 몰아붙인 끝에 전반 막판 송 빌롱이 선제골을 터뜨리는 흐름으로 연결됐습니다. 두 명의 윙 포워드는 첼시 수비진 사이에서 여러차례 쇄도하는 움직임을 취하며 상대 수비의 집중력을 잃게 했고, 이에 애슐리 콜은 전반 30분 월컷에게 거친 파울을 범하여 경고를 받았고 페레이라는 나스리에게 뒷 공간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스날이 첼시 수비진을 맹렬히 몰아 붙였고 전반 막판과 후반 초반에 3골을 넣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아르샤빈 결장이 첼시전 승리의 호재가 됐습니다.
첼시 입장에서는 아넬카의 무릎 부상 공백이 아쉬웠습니다. 아넬카가 최근 체력 저하로 폼이 떨어졌던 문제점이 있었지만, 팀 공격을 위한 이타적 활약에서는 칼루보다 더 믿음직 합니다. 더욱이 첼시는 램퍼드가 부진에 빠졌고 허리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에 아넬카처럼 2선에 적극 가담하면서 패스 플레이를 되살릴 공격 옵션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칼루는 이러한 패턴에 어울리는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90분 동안 공격의 실마리를 못풀면서 클리시에게 발이 묶였죠. 자기 플레이와 팀 플레이 사이를 놓고 이렇다할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아넬카가 있었으면 첼시가 이겼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약점을 커버할 힘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넬카는 부상으로 18인 엔트리에서 제외됐습니다.
3. 4-3-3으로 복귀한 아스날vs4-3-3을 고집한 첼시
아스날은 첼시전 이전까지 4-4-2를 활용했지만 샤막-판 페르시 투톱의 공존이 실패했고 아르샤빈이 왼쪽 윙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첼시전에서는 폼이 떨어진 아르샤빈에게 휴식을 부여했고 4-3-3으로 복귀했죠. 샤막을 빼는 결단을 내렸지만, 파브레가스를 첼시 격파의 키 플레이어로 설정했기 때문에 그와 함께 호흡이 잘맞는 판 페르시를 선발로 내세웠습니다. 벵거 감독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팀의 불안 요소(4-4-2, 아르샤빈)를 줄이고 그동안 조용했던 강점 요소(파브레가스-판 페르시 맹활약)을 키웠고, 중앙 미드필더 두 명에서 파브레가스까지 가세하면서 윌셔-송 빌롱의 공격 전개가 힘을 얻었습니다. 벵거 감독의 4-3-3 선택이 적중했습니다.
첼시는 4-3-3 활용이 패인 이었습니다. 그동안 4-3-3을 즐겨 구사했지만, 체력 저하에 시달리는 현 스쿼드에서는 4-3-3이 진리가 아닙니다. 4-3-3은 커버해야 할 공간이 많기 때문에 선수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첼시 선수들은 스위칭을 포기하면서 아스날 선수들을 힘으로 몰아 붙였지만 상대의 빠른 템포 공격 앞에서 점점 에너지가 바닥났습니다. 그런 첼시의 4-3-3은 지난 13일 토트넘전에서 한계를 인지했습니다. 전반전에 4-3-3을 구사했으나 무기력한 공격 끝에 0-1로 밀렸고, 후반전에 4-2-3-1로 전환하면서 비로소 공격 분위기를 회복한 끝에 동점에 성공했습니다. 토트넘전 사례를 보더라도 4-3-3을 포기할 수 있었지만, 안첼로티 감독은 그 포메이션을 고집하고 말았습니다.
4. 교체 작전, 안첼로티의 악수-벵거의 여유
안첼로티 감독의 문제점은 교체 작전에서도 비롯됐습니다. 후반 시작과 함께 미켈을 빼고 하미레스를 투입했지만 오히려 첼시 공격이 저하되는 역효과로 이어졌습니다. 미켈이 전반전에 부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차례 정확한 패스를 연결하며 첼시의 공격 분위기를 회복하는데 집중했죠. 안첼로티 감독 입장에서는 첼시가 허리 싸움에서 밀렸고, 미켈을 인사이드 미드필더로 기용할 수 없기 때문에(예를 들면 토트넘전 부진), 결국 미켈을 전술적 차원에서 벤치로 내렸습니다. 하지만 하미레스는 조급하게 공격을 풀어가거나 볼을 끄는 불안한 플레이로 첼시의 추격 분위기를 저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패스 미스도 있었죠. 안첼로티 감독이 악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첼시와 아스날의 교체 시기 입니다. 첼시는 후반 0분-10분-15분, 아스날은 후반 27분-30분-41분에 선수 교체를 단행했습니다. 스코어가 3-1이 된 시간은 후반 11분 이었습니다. 첼시의 교체 카드 석 장은 침체된 경기 분위기를 만회하기 위한 승부수였으며 아스날은 선수 체력을 안배하는 목적 이었습니다. 문제는 첼시의 조커 자원이었던 하미레스-카쿠타-보싱와가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하미레스-카쿠타는 첼시 공격에서 이렇다할 실마리를 풀지 못했고, 보싱와는 첼시 수비진이 불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펼칠 여유가 없었습니다. 첼시의 선수층이 예전보다 열악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안첼로티 감독의 문제점도 있었지만, 그동안 내실있는 전력 보강을 이루지 못했던 보드진도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5. 드록바의 루니 모드, '아스날 킬러' 답지 못했다
최근 드록바 행보를 보면 마치 맨유의 루니를 보는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 리그 득점왕을 놓고 뜨거운 각축전을 벌였던 두 선수가 올 시즌에는 서로 약속한 듯 동반 부진에 빠졌기 때문이죠. 그나마 드록바는 리그에서 7골(루니는 2골)이라도 넣었기 때문에 위안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첼시의 침체가 드록바 골 부진과 밀접합니다. UEFA 챔피언스리그까지 포함하면, 최근 10경기 2골에 그쳤고 그 중에 1골은 페널티킥(지난 4일 에버턴전) 이었습니다. 에버턴전 이전까지는 6경기 연속 무득점에 빠졌죠. 말라리아 감염 이후 한 순간에 킬러 능력을 잃으면서 좀처럼 골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발목 부상 이후 9개월째 필드 골이 없는 루니와 오버랩됩니다.
이러한 드록바의 '루니 모드'는 아스날전에서 그대로 재현됐습니다. 주루를 비롯한 아스날 수비수들에게 꽁꽁 묶이면서 무기력한 공격을 일관했습니다. 특히 전반 8분 아크 오른쪽에서 중거리슛을 시도한 것이 골문 바깥을 스쳤던 장면이 아쉬웠습니다. 그 장면이 골로 이어졌다면 드록바는 토트넘전에 이어 2경기 연속골에 힘입어 자신감을 되찾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페이스가 꺾이면서 결국 아스날 골문을 두드리지 못했죠. 이번 경기 이전까지 아스날전 통산 13경기 14골, 최근 아스날전 3경기 5골을 기록했던 '아스날 킬러' 드록바의 존재감이 빛 바랜 순간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