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의 대표적 약점 중에 하나는 엷은 스쿼드 입니다. 빠듯한 시즌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스쿼드 두께가 엷었기 때문에 주요 선수들의 부상이 잦을 수 밖에 없었죠. 대형 선수 영입에 소극적이었거나 유망주 육성이 주력했기 때문에 팀 전력에 꾸준한 맹활약을 펼칠 즉시 전력감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체력 문제까지 두드러지면서 시즌 후반부에 이르러 페이스가 떨어지는 한계에 직면했죠.
하지만 아스날의 현 스쿼드는 두껍습니다. 그동안 애지중지하게 키웠던 영건들이 즉시 전력감으로 무럭무럭 성장했고, 이적 시장을 통해 알짜배기들을 틈틈이 보강하면서 스쿼드의 내실을 키웠습니다. 백업 멤버들 중에서도 주전 선수 못지 않은 맹활약을 펼칠 선수들이 즐비해졌거나 실력차이를 줄였습니다. 특히 중앙 공격수로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합니다. 로빈 판 페르시, 마루앙 샤막, 니클라스 벤트너를 거론할 수 있습니다. 백업 멤버 벤트너의 무게감이 가볍다는 것을 상기하면 아스날 중앙 공격수 경쟁 구도는 '판 페르시vs샤막'으로 좁힐 수 있습니다. 아스날의 고민은 두 선수의 공존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 시점에서는 상극 관계 입니다.
판 페르시, 주전 확보 or 위기의 남자 갈림길에 서다
우선, 아스날의 샤막 영입은 성공작 입니다. 올 시즌 23경기에서 11골 3도움(프리미어리그 15경기 7골 2도움)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까지 팀 전력에서 약간 걷도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는 프리미어리그에 완전히 적응하여 골 생산 및 포스트 플레이에 강한 면모를 발휘했습니다. 또한 아스날의 샤막 영입이 '기가 막힌' 이유는 올해 여름 보르도에서 이적료 없이 영입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여름부터 샤막 영입에 매달리며 600만 파운드(약 107억원)의 이적료를 책정했으나 보르도가 이를 거절했고, 샤막이 올해 여름 보르도와 계약이 종료되면서 이적료 없이 영입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무비용 고효율'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아스날이 샤막 영입을 원했던 이유는 판 페르시-벤트너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였습니다. 판 페르시는 '유리몸'의 대표적인 케이스이며, 벤트너는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아스날 입장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세우는데 무리가 따랐습니다. 그런 두 선수는 지난 시즌 중반에 동반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샤막 영입 필요성이 부각 됐습니다. 하지만 아스날은 지난 1월 이적시장에서 보르도와 이적료에 대한 이해 관계가 맞지 못하면서 샤막 영입에 실패했습니다.(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되었던) 그래서 '윙 포워드' 아르샤빈을 중앙 공격수로 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르샤빈은 작은 체격(172cm/62kg)의 약점을 이겨내지 못하고 박스 안에서의 접근 및 포스트 플레이에 어려움을 겪으며 팀 공격의 완성도를 떨어 뜨렸습니다. 샤막 영입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죠.
물론 샤막의 개인기와 돌파력은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공격수들에 비하면 부족함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지 얼마되지 않아 아스날의 주전 공격수로서 꾸준히 스탯을 쌓았던 역량만큼은 앞으로 보여줄 능력이 출중함을 의미합니다. 특히 팀 플레이에 녹아들기 위해 박스쪽을 중심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공중볼까지 떨구는 플레이를 놓고 보면 이타적인 공격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시즌 초반보다 움직임이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후방이나 측면에서 공급되는 패스를 받기 위해 능동적으로 뛰면서 2차 연계 플레이를 시도하는 패턴이 점점 두드러지고 있죠. 그런 샤막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최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전진하면 아스날의 중앙 공격수로 롱런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샤막의 등장은 판 페르시에게 좋은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그동안 아스날의 주축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던 판 페르시의 팀 내 입지가 축소 될 조짐을 보이고 있죠. 물론 판 페르시는 올 시즌 초반 왼쪽 발목 부상으로 신음하며 70일 동안 전력에서 이탈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샤막이 꾸준한 선발 출전에 힘입어 아스날의 간판 공격수로 성장하면서 부상에서 돌아온 판 페르시가 '주전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런 판 페르시는 지난달 7일 뉴캐슬전에서 복귀하여 4경기를 치렀지만 그 중에 3경기는 조커로 모습을 내밀었고 아직까지 공격 포인트가 없습니다. 컨디션이 정상적으로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실전 감각 회복에 주력중이죠.
문제는 판 페르시가 또 다시 부상 악령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항상 부상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에는 부상 때문에 원래의 폼을 잃은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11월 14일 A매치 이탈리아전에서 오른쪽 발목 부상으로 5개월 동안 전력에서 이탈했고, 그 이후 2009/10시즌 잔여시즌 경기를 치렀으나 부상 이전보다 폼이 떨어진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서 7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1골에 그쳤습니다. 연계 플레이 시도는 좋았지만 박스 안에서 골을 해결짓는데 버거움을 느끼면서 네덜란드 공격의 화룡정점을 찍지 못했죠. 그리고 올 시즌에는 왼쪽 발목을 다쳐 6경기 출전에 그쳤고 아직 골이 없습니다.
냉정히 말해, 판 페르시는 부상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복귀전을 치른지 약 25일 정도 지났지만 아직까지는 폼을 되찾는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부상이 끊이지 않았고 샤막이 아스날 공격에서 잘 버티고 있기 때문에 굳이 무리하게 출전할 필요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샤막이 아스날 부동의 공격수로 자리잡는 행보는 판 페르시에게 마냥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본래 자리를 차지한 선수가 샤막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주전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뛰어다니면 부상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에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비할 수는 없는 노릇 입니다.
만약 판 페르시가 원래의 폼을 되찾는데 성공하면 아스날이 또 하나의 문제점에 직면합니다. 판 페르시와 샤막의 포지션이 겹치기 때문입니다. 둘 다 4-3-3에서 중앙 공격수로 뛰기 때문에 한 선수는 벤치에 앉아야 합니다. 아스날은 아르샤빈-나스리-월컷-로시츠키(벤트너, 에부에도 윙 포워드 전환 가능) 같은 윙 포워드 자원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판 페르시-샤막의 공존이 쉽지 않습니다. 물론 판 페르시는 윙 포워드로 뛸 수 있는 역량이 있지만 선수 본인이 측면에서 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2004년 전 소속팀 페예노르트에서 윙 포워드 전환 때문에 코칭스태프와 대립각을 세웠을 정도로(아스날 이적의 발단) 중앙에서 뛰는 것을 선호합니다. 판 페르시-샤막 투톱을 활용하기에는 미드필더를 1명 빼야 하기 때문에 4-3-3 형태가 유지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판 페르시는 '주전 확보', '위기의 남자'의 갈림길에 놓인 상황입니다. 주전 확보를 위해서는 샤막을 실력으로 제압해야 하지만, 만약 샤막과의 주전 경쟁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벤치 멤버로 굳어지는 위기에 놓입니다. 판 페르시가 그동안 아스날 공격의 책임졌던 부동의 공격수였음을 상기하면 지금의 행보가 길어질 경우 '위기'라는 키워드가 결코 어색하지 않습니다. 판 페르시와 샤막의 관계를 상극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 아스날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화려한 네임벨류를 자랑하는 두 명의 중앙 공격수를 보유했기 때문에 선수 누수를 걱정하지 않는 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판 페르시와 샤막의 공존이 힘들면 아스날의 화력이 더욱 강해지지 못하는 문제점으로 작용합니다. 5시즌 연속 무관인 아스날이 떠안게 된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