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고 아쉬웠던, 너무나 허무했던 패배였습니다. 24개의 슈팅 중에 11개의 유효 슈팅을 기록했고 아랍에미리트 연합(이하 UAE)보다 더 많은 공격을 시도했지만 끝내 골망을 가르지 못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경기 종료 직전에 통한의 실점을 허용하여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왼쪽 수비가 뚫리지 않았다면 알 브리나를 협력 수비하여 결승골을 막을 수 있었지만 더 이상 결과를 되돌이킬 수 없습니다. 홍명보호의 금빛 도전은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홍명보 감독 그리고 여론에서 꼽는 한국 대표팀 패배 원인은 골키퍼 교체 입니다. 승부차기를 의식하여 연장 후반 종료 직전에 김승규를 빼고 이범영을 투입했죠. 하지만 한국은 UAE의 막판 반격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선수들이 이범영 투입으로 승부차기를 의식하면서 수비가 느슨해지는 상황으로 몰렸죠. 알 나브리에게 골을 내준 것도 문제였지만 더 아쉬운 것은 수비수들이 알 나브리의 볼 터치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UAE전 패배의 주된 원인은 수많은 골 기회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UAE전, 박주영-유병수 투톱을 가동했다면?
축구는 상대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어야 승리하는 스포츠 입니다. 아무리 점유율을 높이고 수많은 패스를 시도하더라도 상대 골망을 흔들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UAE전이 대표적 예 입니다. 상대팀보다 적극적인 공격을 펼치고, 더 많은 슈팅을 날리고, 무수한 돌파를 가하면서 점유율까지 높였지만 끝내 골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단기 토너먼트에서는 경기 내용보다는 골이 더 중요합니다. 한국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골을 넣는 방법이 틀렸다는 점입니다.
결과적으로, 한국 대표팀은 UAE 골키퍼 알리 카시프의 가치를 키우고 말았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면 '알리 카시프가 한국을 상대로 선방쇼를 펼쳤다'라고 단정지을 수 있습니다. 상대 골키퍼가 한국전을 포함해서 아시안게임 5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펼쳤음을 상기하면 그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문전에서 골을 노리는 상황에서 침착하지 못했고, 소위 '홈런볼'로 비유되는 힘이 너무 들어간 슈팅을 남발했고, 골 정확성이 떨어지는 위치에서 무리한 슈팅을 날리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특히 상대 골키퍼 정면에 날렸던 슈팅이 빈번했던 것은, 그 골키퍼가 잘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골 결정력 부족 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포메이션의 문제를 꼽을 수 있습니다. 홍명보호의 4-2-3-1은 밀집 수비에 취약한 단점이 있습니다. 3(2선 미드필더)-1(원톱)이 활발한 연계 플레이를 펼치지 못하면 서로가 따로 노는 공격을 펼치기 때문이죠. 그래서 3은 공격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잦은 패스 미스를 남발하거나 무리한 슈팅을 감행합니다. 1은 후방의 지원 사격을 받지 못하면서 최전방에 고립되죠. 4-2-3-1은 공격진이 1명에 불과한 단점이 있기 때문에 상대 수비에 협력 견제 당하기 쉽습니다. 원톱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면 4-2-3-1 공격은 결코 화룡정점을 찍을 수 없습니다. 홍명보호의 UAE전 패배 원인과 똑같은 현상 입니다.
홍명보 감독은 4-2-3-1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후반전에는 4-2-3-1 대신에 4-4-2로 전환하여 공격수를 1명 더 늘렸어야 했습니다. 박주영과 함께 골을 노릴 수 있는 공격수를 더 배치하고 좌우 풀백의 오버래핑을 강화하는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했어야 마땅했습니다. 한국의 4-2-3-1 공격이 UAE 수비에게 완전히 읽혔던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박주영이 8강 우즈베키스탄전까지 원톱으로서 두드러진 공격력을 과시했지만, 소속팀 AS 모나코에서는 최전방에서 스스로 공격을 해결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박주영이라도 매 경기마다 한국 공격의 해결사 노릇을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전후반만을 놓고 보면 박주영은 최전방에서 완전히 고립 됐습니다.
문제는 박주영과 함께 투톱을 맡을 적임자가 없었습니다. 지동원과 박희성의 부진이 결정타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지동원은 올 시즌 K리그의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서 두드러진 맹활약을 펼쳤지만 아시안게임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왼쪽 윙어로 선발 출전했으나 무기력한 움직임을 일관하며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박희성은 예선 3차전 팔레스타인전에서 골을 넣었지만 박주영과의 투톱 공존은 '홍명보 감독의 언급처럼' 실패작 이었습니다. 예선 1차전 북한전 부진에서 비롯된 것 처럼, 경기 운영 및 전술 이해도가 다른 선수들보다 떨어졌습니다.
물론 홍명보 감독 입장에서는 지동원-박희성을 믿고 싶을 것입니다. 두 선수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공격을 이끌어갈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현 대표팀이 런던 올림픽 세대이기 때문에 지동원-박희성에게 기회를 줄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지동원은 올 시즌 K리그 및 각급 대표팀 경기에 출전하고 소집하면서 '혹사'에 시달리고 말았으며 그 여파는 아시안게임 부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몸 상태를 생각했다면 아시안게임 차출은 무리였습니다. 박희성은 더 이상 대학 무대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본인이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K리그 진출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연마하며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K리그에서 뛰는 동료 공격 옵션들보다 경기를 읽는 능력부터 떨어지고 움직임이 수동적입니다.
한국에게 가장 필요했던 선수는 유병수 였습니다. 올 시즌 K리그 28경기에서 22골이라는 엄청난 스탯을 쌓으며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인천의 선수층이 약했고, 특급 도우미가 없음을 상기하면 유병수의 22골은 어떠한 극찬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파괴력을 놓고 보면 '사기유닛' 이천수에 버금가거나 동급이었을지 모릅니다. 다만, 성인 대표팀에서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여론에서 과소평가 됐습니다.(올 시즌 K리그 득점왕이 누군지 모르는 축구팬들이 일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유병수의 나이는 22세 입니다. 아시안게임에서 활약한 신광훈-김주영과 동갑입니다. 와일드카드가 아니기 때문에 홍명보호에 발탁되는데 아무런 지장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기량을 놓고 보면, 지동원-박희성 보다는 유병수가 더 좋습니다. K리그 득점왕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비록 무대는 다르지만, 골 감각을 놓고 보면 박주영보다 더 좋은선수입니다. 오랫동안 골 침묵에 시달리다가 아시안게임 직전에 골 감각을 되찾은 박주영보다는 올 시즌 K리그에서 몇 개월 동안 꾸준히 골을 넣었던 유병수의 손을 치켜 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런던 올림픽을 의식해서 유병수 대신에 지동원-박희성을 들어줬습니다. 유병수가 2012년이면 24세이기 때문에 와일드카드가 아닌 상태에서 대표팀에 발탁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동원-박희성은 아시안게임에서 제 몫을 다하지 못했고 박주영의 해결사적 기질은 UAE전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팅의 앞 내용에서는 한국 대표팀의 4-2-3-1 문제점을 지적하며 4-4-2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UAE의 끈끈한 밀집 수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립되기 쉬운' 원톱 보다는 투톱이 더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유병수가 UAE전에서 박주영과 함께 투톱으로 뛰었다면 경기 결과는 어찌되었을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UAE전에서 패했습니다. 그 패인은 유병수를 발탁하지 못한 것입니다. 축구가 골이 중요한 스포츠임을 떠올리면 유병수가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필요했던 선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