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빅4 재진입을 꿈꾸는 리버풀의 행보는 마치 '롤러 코스터'를 보는 듯 합니다. 시즌 초반 18~19위를 오가면서 강등권에 추락했지만 최근 리그 4경기 3승1무의 성적으로 9위(4승4무4패, 승점 16)에 올라섰습니다. 특히 8일 리그 선두 첼시와의 홈 경기에서는 페르난도 토레스의 2골로 2-0 완승을 거두면서 부활 성공 가능성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지난 11일 리그 18위 위건 원정에서 1-1로 비기면서 3연승 행진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지금의 행보를 놓고 보면, 리버풀은 리그 4위 안에 진입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습니다. 4위 맨체스터 시티(6승3무3패, 승점 21)와의 승점 차이가 5점이며, 앞으로의 4경기 상대가 스토크 시티-웨스트햄-토트넘-애스턴 빌라 같은 약팀 또는 올 시즌 성적이 주춤한 팀들입니다. 본래의 위치를 되찾으려면 4팀을 모두 이기면서 승점 관리에 탄력을 얻어야 하지만 위건 원정에서 비겼듯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리버풀의 올 시즌 성적을 좌우하는 서로 대조적인 키워드가 눈에 띕니다. '토레스'와 '호지슨'이 바로 그것입니다.
리버풀, 토레스 부활에 '웃었지만' 호지슨 전술에 '절망하다'
리버풀이 최근 오름세를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은 토레스 부활에 있었습니다. 토레스는 지난달 17일 라이벌 에버턴전까지 리그 8경기 1골에 그친것을 비롯 5경기 연속 무득점(유로파리그 포함 6경기 연속)에 시달리며 팀의 강등권 추락을 부추겼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블랙번전을 시작으로 리그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4골 1도움)를 기록했고 어느새 시즌 5골을 기록하며 평소의 폼을 되찾았습니다. 특히 첼시전 2골은 천부적인 골 결정력이 빚어진 멋진 작품 이었습니다.
토레스는 잦은 사타구니 부상 및 남아공 월드컵 부진 여파로 위태로웠던 시즌 초반을 보냈습니다. 리버풀이 강등권으로 추락한 원인 중에 하나가 자신의 부진이었기 때문에 팀의 주축 선수로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웠죠. 오히려 그것은 토레스에게 '각성의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리버풀의 부활을 이끌어야 자신의 가치와 명성을 드높이고 남아공 월드컵 부진을 이겨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매 순간마다 분발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래서 골을 넣기 위해 상대 수비를 파고들어 결정적인 골 기회를 마련했으며, 동료 선수들의 날카로운 볼 배급이 더해지면서 그림같은 골 장면들을 연출했습니다.
지금의 리버풀이 무서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토레스가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토레스는 최근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리버풀의 오름세를 주도했습니다. 지난달 24일 블랙번전 1골로 2-1 승리, 지난달 31일 볼턴전 도움 1개로 1-0 승리, 지난 8일 첼시전 2골로 2-0 승리, 11일 블랙번전 1골로 1-1 무승부를 견인했습니다. 리버풀의 성적 향상이 토레스의 거침없는 공격 포인트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토레스가 앞으로 사타구니 부상에 시달리지 않고 꾸준히 많은 골을 넣으면 리버풀의 빅4 재진입은 시간문제가 될 것 같은 기세입니다.
토레스 부활에 탄력을 얻는 또 하나의 요인은 리버풀의 내년 1월 공격수 영입 여부 입니다. 리버풀은 존 헨리 구단주가 팀을 인수하면서 어려웠던 재정을 회복했고,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 새로운 공격수를 영입할 계획입니다. 디에고 포를란(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페르난도 요렌테(빌바오) 슈테판 키슬링(레버쿠젠) 파벨 포그레브냑(슈투트가르트) 같은 공격수들이 물망에 올랐으며 혼다 케이스케(CSKA 모스크바)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토레스의 경쟁자를 영입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토레스의 체력을 안배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동안 무리한 출전으로 사타구니 부상이 잦을 수 밖에 없었던 토레스 입장에서는 공격수 영입을 반길만 합니다.
문제는 리버풀의 빅4 재진입이 토레스의 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위건 원정이 그랬습니다. 토레스가 전반 7분 선제골을 넣으며 기분 좋게 앞서갔으나 후반 7분 우고 로다예가에게 동점골을 내주고 1-1로 비겼습니다. 리버풀의 무승부 원인은 호지슨 감독의 전술에 있었습니다. 1-0 이후 추가골을 노리기 보다는 수비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호지슨 감독 입장에서는 나머지 83분 동안 1-0 리드를 지키고 경기를 마무리짓거나 상대 공격을 커팅하여 역습을 노리겠다는 의지였습니다. 하지만 전반 초반이라는 이른 시간 부터 수비 축구를 펼쳤다는 점은 팀 전력에 마이너스가 되었고 결국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호지슨 감독의 수비 위주 전술은 위건전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첼시전에서는 토레스가 전반 11분, 44분에 골을 넣으며 2-0으로 앞섰지만 후반 시작과 함께 잠그기를 펼쳤습니다. 그래서 후반전은 첼시가 일방적으로 경기를 주도하는 형태였으며 점유율에서 무려 35-65(%)로 밀렸습니다. 리버풀이 홈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경기 내용이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공격을 주도하는 분위기를 경기 내내 이어가지 못했던 패턴이 올 시즌에 여러차례 되풀이 됐습니다. 블랙번전을 제외하면 '완벽한 승리'라고 찬사를 보낼만한 경기가 없습니다.
물론 호지슨 감독 입장에서는 경기 내용 보다는 승리를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건전에서 수비에 안주하는 전술을 놓고보면 그 전술에 문제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호지슨 감독의 축구 스타일이 리버풀에 맞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리버풀은 상위권에 있어야 할 클래스이며, 빅4 재진입은 물론 우승까지 노려야 할 팀입니다. 그래서 골 생산에 항상 배고픔을 느껴야하며 공격적인 마인드를 길러야 합니다. 호지슨 감독이 추구하는 수비 축구는 지난 시즌까지 지휘했던 풀럼에게 맞는 전술입니다. 중위권이나 하위권 팀들이 상위권 팀들에 비해 수비에 비중을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호지슨 감독은 리버풀에서 풀럼 축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리버풀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변화와 혁신' 입니다. 잉글랜드 전통의 명문으로 불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92년 프리미어리그 창설 이후 단 한 번도 리그 우승을 이루지 못했고, 지난 시즌에는 리그 7위의 총체적 부진에 빠졌습니다. 전임 감독인 베니테즈 시절보다 다채로워진 공격력을 자랑하며 상대를 압도하는 아우라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호지슨 감독은 리버풀이 원하는 컨셉에 부합하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또한 호지슨 감독은 아기자기한 패스 축구에 익숙했던 리버풀의 전술을 롱볼 축구로 회귀하며 전술적인 퇴보를 부추겼습니다. 카위트와 메이렐레스를 각각 공격수와 오른쪽 윙어로 전환시켜 해당 선수의 특성에 맞지 않는 무리한 포지션 전환을 했던 것도 매끄럽지 못합니다.
그런 호지슨 감독은 최근 리버풀의 성적 향상을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경질 유력 인물로 꼽히고 있습니다. 팀이 강등권에 추락했을 때부터 경질설이 시작되었지만 아직까지 그 이야기를 잠재우지 못한 것은 호지슨 감독의 전술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호지슨 감독이 전술을 자주 바꾸는 유형의 지도자는 아닙니다. 호지슨 감독은 수비 축구를 선호하며 고집스러운 성격의 소유자로 유명합니다. 누군가는 "호지슨 감독이 리버풀의 강등권 탈출을 이끌었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성적 추락의 원인은 호지슨 감독이었으며 팀을 구한것은 토레스 였습니다. 토레스와 호지슨 감독의 상반된 색깔이 리버풀에게 결코 유쾌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