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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김학범 감독, K리그에서 다시 보고 싶다

 

최근 황선홍 부산 감독에 대한 거취가 K리그에서 화두입니다. 황선홍 감독은 스타 사령탑으로서 많은 축구팬들의 주목을 끌었지만 계약 기간 3년 동안 성적 부진에 시달린 끝에 부산과의 재계약 불발이 유력해졌습니다. 열악한 스쿼드와 어려운 구단 환경 속에서도 지난해 피스컵 준우승, 올해 FA컵 준우승을 일구었지만 부산 축구의 부활을 이끌기에는 K리그 성적이 아쉬웠습니다. 최근에는 부산과의 결별 여부와 더불어 친정팀 포항의 새로운 사령탑 유력 후보로 거론되면서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분명한 것은, 올 시즌을 끝으로 K리그 사령탑에서 물러나는 지도자들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감독이라는 직업은 성적에 일희일비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그래서 시즌이 종료되면 성적 부진한 팀들 쪽에서 감독 교체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에는 레모스 전 포항 감독이 9경기 연속 무승(3무6패)이 빌미가 되어 감독 부임 후 5개월만에 경질되었고, 같은 시기에 차범근 전 감독은 수원의 K리그 꼴찌 추락을 책임지고 스스로 사퇴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감독이 팀의 성적 향상을 위해 선수들과 힘을 합치게 됩니다. 이러한 축구의 연속성은 유기적인 동맥경화 차원에서 '당연한 현상' 입니다.

K리그에서 가장 보고 싶은 지도자가 있다면, 2년 전까지 성남 사령탑을 맡았던 김학범 감독이 떠오릅니다. 탁월한 전술 능력과 선수들의 단합된 조직력을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김학범 감독은 K리그의 대표적인 '지장'으로 손꼽혔습니다. 90년대 후반 성남 코치 시절부터 유럽, 남미, 일본을 오가며 여러차례 해외 지도자 연수를 받았고, 어느 모 대학원에서 <‘델파이’ 방법을 활용한 축구 훈련방법에 관한 ‘내용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연구하는 지도자'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김학범 감독의 별명은 '학범슨' 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4년 동안 장기집권하며 세계적인 팀으로 키웠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빗댄 별명이죠. 김학범 감독은 성남 수석코치 시절 차경복(2006년 작고) 감독과 힘을 합쳐 2001~2003년 K리그 3연패를 이끌었습니다. 차경복 감독이 선수들의 인화에 전념했다면 김학범은 전술에 집중하며 스쿼드 운영의 철저한 분업화를 나타냈습니다. 1996년 아시안 클럽 선수권(현 AFC 챔피언스리그) 이후 침체기에 빠졌던 성남은 두 지도자의 불철주야 노력에 힘입어 K리그를 3년 연속 제패했습니다. 특히 김학범 감독은 당시 K리그에서 활성화되지 않았던 4백을 구사하며 균형과 조직력을 강화하는 축구로 짭짤한 재미를 봤습니다.

그런 김학범 감독은 2005년 성남 사령탑을 맡아 K리그의 전략가로서 성공적인 행보를 거두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수석 코치 시절에 즐겨 구사했던 카운트 어택을 비롯,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패스 위주의 경기를 풀어가는 아기자기한 공격 축구를 펼쳤습니다. 여기에 선수들의 짜임새 넘치는 조직력과 개개인의 기술력까지 팀 전술에 접목시키면서 엄청난 파괴력을 내뿜을 수 있는 팀으로 조련했습니다. 3백-압박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실리축구가 만연했던 당시 K리그의 분위기 속에서 성남의 기술 축구는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학범 감독은 2005년 후기리그 우승, 2006년 전기리그 및 K리그 우승, 2007년 페넌트레이스 1위(K리그 준우승)를 통해 본격적인 명장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김학범 감독은 2008시즌을 끝으로 성남 사령탑에서 물러났습니다. 페넌트레이스 3위 및 6강 플레이오프 탈락에 따른 성적 부진이 원인 이었죠. 고정적인 베스트 일레븐 기용에 따른 스쿼드의 체력 저하, 김두현 이적-최성국 벤치 추락에 따른 공격 파괴력 감소, 시즌 중반 이동국 영입에 따른 공격수 과포화 현상, 이동국 부진, 상대팀에게 공격 패턴이 완전히 읽힌 것까지 맞물리면서 어려운 시즌을 보냈습니다. 특히 시즌 후반부터 맥빠진 경기력을 일관하며 성남 특유의 아름다운 공격 축구가 빛을 잃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김학범 감독 전술의 대표적인 장점이 상대팀의 집요한 견제에 의해 무너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김학범 감독의 성남 사령탑 말년이 좋지 못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K리그에서 김학범 감독의 역량이 얼마만큼 강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전반적인 경기력이 좋지 못했던 상황에서 페넌트레이스를 3위로 마쳤던 것은(1위 수원과의 승점이 단 3점차) 총체적인 위기를 막았다는 뜻입니다. 수원이 2008년 K리그 우승을 이룬지 1년 만에 10위로 추락한 것을 놓고 보면, 김학범 감독은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이 나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짜임새 넘치는 조직력만큼은 여전히 살아있었기 때문에 상대에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격 라인이 상대의 집중 견제를 피하기 어려웠다는 것은, 그만큼 성남의 전력이 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학범 감독의 지도력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 김학범 감독의 K리그 공백 기간이 이제 2년이 됐습니다. 지난 8월 중국 슈퍼리그 허난 사령탑을 맡을 것이라는 언론들의 보도가 있었으나 그 이후 뚜렷한 진전이 없었습니다. A매치 경기 때 한국 대표팀에 대한 칼럼을 언론에 전하는 것 이외에는 공식적인 활동이 없었죠. 남아공 월드컵 이후 여론에서 한국 대표팀 감독 후보 중에 한 명으로 거론되었으나 결국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기지 못했습니다. 인맥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소위 기득권과 거리감이 없지 않았지만,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놓고 보면 결코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K리그의 경기력 퀄리티가 지금보다 업그레이드 되려면 김학범 감독의 컴백이 기대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김학범 감독이 스쿼드-재정이 어려운 도시민구단, 그와 비슷하게 형편이 어려운 기업 구단의 사령탑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고 봅니다. 친정팀 성남은 당시 K리그에서 공격적인 선수 영입을 펼치며 가장 많은 돈을 투자했던 '한국판 레알 마드리드'로 손꼽혔습니다. 최고의 선수들을 최고의 팀으로 조련한 김학범 감독의 능력은 이미 K리그에서 검증됐습니다. 그래고 이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마음으로 K리그에 신선함을 불어넣었으면 합니다. 성남 감독 시절 선수의 개인 역량에 의존했던 지도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무명 선수들을 발굴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남에서는 스쿼드가 쟁쟁하다보니 그런 부분이 가려질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다른 모습을 과시하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K리그 입장에서도 김학범 감독을 볼 수 없는 현실은 퀄리티적인 측면에서 손해입니다. 김학범 감독의 지도력은 한때 K리그 최고였을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지략가로 통했습니다. 그리고 감독으로서 오랫동안 공백기를 가지면 현장 감각 저하로 지도력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그라운드에서 지휘하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그 무대는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K리그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