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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영웅이 된 에르난데스, 루니에게 위기

 

"너무 빨리 영웅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에르난데스는 지금 모든 칭찬을 들어 마땅하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감독은 지난 27일 울버햄턴과의 칼링컵 4라운드(16강)가 끝난 뒤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결승골의 주인공' 하비에르 에르난데스(22)를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너무 빨리 영웅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없지 않다"고 발언했지만, 속뜻을 되짚어보면 '입단한지 얼마 되지않은' 에르난데스가 맨유의 영웅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죠. 그리고 "에르난데스는 지금 모든 칭찬을 들어 마땅하다"고 말했던 것은 에르난데스의 위상이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에르난데스는 울버햄턴전에서 후반 36분 교체 투입했습니다. 맨유가 2-2로 비기고 있는 상황이었고 연장전 혹은 탈락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할 타이밍이었기 때문에 해결사의 임무를 받으며 그라운드에 나섰습니다. 그는 9분 만에 대런 깁슨의 스루패스를 받아 문전으로 쇄도한 끝에 결승골을 넣으며 맨유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에르난데스의 해결사 본능은 울버햄턴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맨유 소속으로서 골을 넣었던 5경기 중에 3경기에서 조커로 출전하여 상대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지난 8월 8일 첼시와의 커뮤니티실드에서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투입하여 일명 '발헤슛'으로 골을 터뜨렸고, 지난달 29일 발렌시아전에서는 후반 32분에 교체 투입했는데 8분 만에 결승골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울버햄턴전에서도 조커로 출전하여 골을 기록하면서,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한 방을 터뜨릴 수 있는 기질이 넘쳐흐른다는 것을 실력으로 입증했습니다. 공교롭게도 3경기 모두 맨유가 승리한데다 에르난데스가 결승골을 성공시킨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에르난데스를 '맨유 레전드' 올레 군나르 솔샤르 리저브 감독 같은 철저한 슈퍼 조커로 바라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지난 16일 웨스트 브로미치전 1골, 24일 스토크 시티전에서 2골을 터뜨렸는데 웨인 루니를 대신해서 풀타임 출전했습니다. 선발과 조커의 자리를 가리지 않고 골을 넣었으며, 최근 6경기에서 5골을 터뜨리는 공격력을 앞세워 맨유에서의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지난 울버햄턴전 종료 후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에르난데스의 골은 많은 신뢰와 칭찬을 받아야 한다. 그가 경기에 출전하면 반드시 골 기회를 살리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사실, 에르난데스는 맨유팬들이 원했던 빅 샤이닝 영입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4월 600만 파운드(약 106억원)의 이적료로 맨유에 입성했지만, 멕시코에서 잉글랜드 무대로 넘어온 상황인데다 두 리그의 레벨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맨유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맨유가 최근에 영입을 시도했던 다비드 비야(FC 바르셀로나) 카림 벤제마(레알 마드리드) 에딘 제코(볼프스부르크) 같은 대형 공격수와 달리 유럽에서의 인지도가 낮았습니다. 맨유 입단 당시 멕시코 대표팀에 갓 발탁된 영건이었기 때문에 유럽 빅 클럽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이 에르난데스를 영입한 것은 '최고의 선택' 이었습니다. 재정난을 안고 있는 맨유는 대형 선수 영입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영건 육성에 주력해야하며, 최근에 에르난데스가 거침없이 골을 작렬하며 맨유의 희망으로 거듭났습니다. 게리 네빌이 지난 26일 잉글랜드 대중지 <더 선>을 통해 "에르난데스는 맨유의 레전드가 될 잠재력이 있다. 맨유에서 많은 골을 터뜨릴 공격수로 거듭날 것이다"고 밝힐 정도로, 에르난데스는 영웅으로 거듭났습니다. 또한 '에르난데스 시대'의 개봉박두는 시간 문제로 보이죠. 물론 그 과정에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불가피합니다.

바로 루니입니다. 루니는 올 시즌 7경기에서 1골에 그쳤으며, 그 1골도 지난 8월 28일 웨스트햄전 페널티킥 이었습니다. 그 이후 5경기에서는 무득점 부진에 시달렸으며 최근 발목 부상으로 3주 휴식을 부여받으며 중동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올 시즌 루니의 행보는 '최악 오브 최악'이라는 표현을 쓰기에 충분합니다. 아직까지 발목 부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경기력이 부진하며, 흡연 문제, 스캔들, 최근에는 팀을 떠나겠다며 "맨유는 야망이 없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다가 그것도 얼마되지 않아 5년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부상에서 복귀하면 에르난데스-베르바토프와 주전 경쟁을 해야 할 처지입니다.

이러한 행보가 씁쓸한 이유는, 불과 몇 개월전까지 '루니의 시대'가 맨유와 프리미어리그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웠기 때문입니다. 거의 매 경기마다 골을 넣으며 상대 수비를 위협하는 루니의 '미친 존재감'은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고 리그 득점 1위까지 사수했습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선수'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의 겁없는 질주에 브레이크를 거는 경쟁자로 거듭났죠. 그랬던 루니가 걷잡을 수 없는 슬럼프에 빠지리라곤 어느 누구도 예상을 못했습니다. 단순한 네임벨류만을 놓고 보면 루니는 여전히 맨유의 에이스 소리를 듣겠지만, 문제는 그 행보가 꾸준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좌초 상태에 몰렸습니다.

루니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고되는 이유는 에르난데스가 급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맨유의 단순한 영건으로만 인식되었던 에르난데스가 시즌이 시작된지 2개월 만에 맨유의 영웅으로 떠오를 줄은 아무도 예상 못헸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폼을 놓고 보면 에르난데스가 루니보다 더 낫습니다. 전반적인 클래스에서는 루니가 에르난데스를 압도하고, 에르난데스의 현재 실력은 루니의 지난 시즌보다는 경기력이 농익지 못한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루니에게 더 많은 기대를 걸게 됩니다. 하지만 부상 복귀 이후에도 평소 실력을 되찾지 못하면 그때는 '피도 눈물도 국물도 없는' 냉정하고 혹독한 댓가가 기다려집니다. 지난 시즌 맨유 에이스였던 선수가 벤치로 밀리는 시나리오를 우리들이 보게 될지 모릅니다.

공교롭게도 루니와 에르난데스는 서로의 역할이 겹칩니다. 박스 안에서 골을 노리는 타겟맨이자 상대 수비 뒷 공간을 노리는 타입에 속합니다. 물론 루니는 이타적인 역할에 강한 선수이기 때문에 쉐도우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역할은 베르바토프가 맡고 있습니다. 베르바토프는 올 시즌 초반 타겟맨으로 활약하며 멋진 골들을 작렬했지만, 에르난데스가 팀의 새로운 주축 선수로 가세한 이후에는 다시 쉐도우로 내려갔습니다. 에르난데스가 누군가의 공격을 보조하기보다는 골에 특화된 움직임-위치선정-골 결정력에 강한 본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최근 베르바토프의 득점력이 줄어들고 다시 이타적인 플레이에 눈을 돌린것도 에르난데스의 성장과 맞물립니다. 그런데 베르바토프의 경기력은 맨유 입단 이후 가장 안정된 폼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퍼거슨 감독이 루니에게 많은 출전 기회를 부여하며 슬럼프 회복을 바라기에는 무리입니다. 지금까지 퍼거슨 감독의 로테이션 방식은 누구든 예외가 없었고, 실력과 컨디션에 의해 철저하게 선발 스쿼드를 운영했습니다. 맨유의 성적이 향상되려면 특정 선수를 편애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퍼거슨 감독은 루니의 슬럼프 탈출을 돕겠지만 에르난데스의 활용 빈도를 줄이는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에르난데스가 있음에 '경기력 저하에 시달리는' 맨유가 최악의 위기를 면했기 때문입니다.

현 시점에서는 루니와 에르난데스의 경쟁이 불가피하며 베르바토프도 가세할 수 있습니다. 루니는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슬럼프 탈출에 매진해야 합니다. 에르난데스로서도 루니의 장점을 익히며 자신의 공격력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경험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루니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의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영웅이 된 에르난데스의 걷잡을 수 없는 오름세는 루니에게 위기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