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지난 24일 스토크 시티전 18인 엔트리에서 제외됐습니다. 이에 일부 국내 여론에서는 박지성 결장에 대한 우려와 걱정, 그리고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며 '박지성 위기론'을 재촉했습니다. 최근 잉글랜드 언론들이 "박지성은 맨유의 살생부에 포함됐다", "박지성 트레이드설"을 거론하며 팀 내 입지에 대한 안좋은 보도를 꺼내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박지성 위기론이 또 불거졌습니다. 더욱 씁쓸한 것은, '지긋지긋한' 박지성 위기론이 확실한 종지부를 찍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우선, 박지성의 올 시즌은 '위기'로 부를만 합니다. 결장이 잦은 것을 비롯 18인 엔트리에 이름을 내밀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맨유가 프리미어리그 9경기를 치르고 있을 때, 박지성이 선발 출전한 경기는 지난 8월 22일 풀럼전 단 한 번에 불과했습니다. 그 외 2경기에서는 조커로 투입되었지만 나머지 6경기에서는 결장했습니다. UEFA 챔피언스리그 3경기 연속 선발 출전중이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잦은 결장을 커버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또한 올 시즌 폼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우려하는 여론의 시선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박지성 위기론은 정당한 반응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 위기론을 제기하는 것은 산소탱크의 속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박지성은 남아공 월드컵 이후 4주 동안 쉬었지만 각종 행사 때문에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없었고 그 기간도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맨유가 지난 7월 초 부터 프리시즌 일정을 시작하는 바람에 7월 말에야 잉글랜드에 합류했지만 체력을 정상적으로 끌어올릴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8월-9월-10월에 국내에 입국하여 A매치를 치렀는데, 그동안 대표팀에 차출되면 컨디션이 두드러지게 저하되는 특징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정이 혹독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컨디션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기력에 상당 부분 영향을 끼쳤죠.
박지성은 지난 1일 MUTV를 통해 "올 시즌 나의 활약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운을 떼며, "올 시즌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정신적으로 약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 2010/11시즌을 준비할 수 있는 마음이 단단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휴식 기간이 짧았던 것을 비롯 잦은 대표팀 차출 때문에 올 시즌을 대비하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습니다. 문제는 월드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휴식이 짧았고 팀에 늦게 복귀했습니다. 지난 12일 A매치 일본전 직전에는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부상 악령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많이 뛰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체력 안배를 해야합니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무리시키지 않는 것, 그동안의 박지성 부상 이력은 웬만한 축구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맨유가 여러 대회에 참가하고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을 펼치다보니, 일부 국내 여론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삐뚤어진 시선으로 박지성의 경기 출전에 일희일비합니다. 물론 축구 선수는 많은 경기에 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박지성이 붙박이 주전으로 뛰기를 바라는 것이 축구팬들의 마음입니다. 그 과정에서는 "박지성은 이적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끓었죠.
하지만 맨유에서 거의 매 경기 선발로 뛰는 공격수 및 미드필더는 없습니다. 얼마전까지 그 범주에 있었던 루니는 과부하에 시달린 끝에 발목 부상을 계기로 끝없는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박지성은 이적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다른 팀으로 이적하더라도 엄연히 주전 경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문제까지 고려해야죠. 일각에서는 "박지성은 맨유에서 모든 것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박지성 본인은 "아직 맨유에서 이룰 것이 많다. 팀에서 오랫동안 뛰고 싶다"고 했습니다. 맨유는 세계 최정상급 클럽이고 박지성은 그 팀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 네임벨류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내년이면 30세가 되더라도 맨유에서 꿈을 접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그런 박지성의 스토크 시티전 결장 원인은 명백한 체력 안배 입니다. 무릎 부상에서 회복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10여일 전 무릎에 물이 찼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으나 지난 21일 부르사스포르전에 선발 출격하면서 이른 타이밍에 복귀했고, 주중에 칼링컵 4라운드가 있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 입장에서 결장이 필요했습니다. 그동안 무릎을 많이 다쳤고 세 번씩이나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맨유에서 거의 매 경기 뛰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박지성이 선수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하려면 맨유의 로테이션 시스템에 적극 응해야 하며(지금까지 그래왔지만), 우리는 그 현실에 어떠한 부정적 시선을 보내지 않고 순응해야 합니다. 문제는 일부의 '무리한 기대'가 박지성 위기론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박지성 위기론이 대두될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원인은 공격력입니다. 팀이 골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나 공격적인 경기를 펼쳐야 하는 경우에 배제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죠. 물론 박지성의 공격력이 과감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기질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팀에서 원하는 이타적인 컨셉에 조용히 최선을 다하다보니 자신만의 특별한 색깔을 낼 수 있는 임펙트의 맛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수비적인 컨셉이 굳어지고 말았죠.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박지성은 현실에 만족한다", "욕심이 없다", "퇴보했다"는 일부 축구팬들의 쓴소리가 나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박지성에게 건설적인 비판으로 작용하지 못합니다. 박지성은 오랫동안 철저히 팀 플레이를 선호하고 그 흐름에 맞추며 성장했음을 일부에서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박지성은 6시즌 연속 맨유에 잔류했습니다. 철저한 팀 플레이어로서 공헌했던 부분이 퍼거슨 감독에 의해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형적인 공격 성향의 윙어였다면 공격 포인트 및 팀 기여도 여부에 따라 팀 내 입지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그런 컨셉으로 맨유에 성공적인 정착을 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맨유에 잔류했을지 의문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영입한 것은 20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AC밀란전에서의 골이 아닌, 자신의 전술 이해도를 최대화시킬 수 있는 팀 플레이어로서의 출중한 기질 이었습니다. 물론 박지성의 공격력 향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팀을 위해 뛰는 면모가 일부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은 아쉽습니다.
또한 맨유는 팀의 성적을 확실하게 이끌 특출난 공격 옵션의 영입을 원할 것입니다. 비록 구단의 재정난 때문에 공격적인 선수 영입을 펼치지 못했지만, 팀의 전력이 지난 시즌보다 좋지 못한데다 맨시티가 우승의 대항마로 가세했기 때문에 새로운 선수를 데려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 과정에서 박지성 입지를 둘러싼 위기론은 분명히 불거질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하면, 박지성 위기론은 그가 맨유에 존재하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현실이 야속하고 안타깝습니다. 일본 J리그 시절을 포함하여 10년 동안 해외에서 온갖 고생에 시달렸던 박지성에게 냉정한 평가보다는 응원하고 격려하는 마음이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