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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19위 추락' 리버풀, 에버턴전 졸전 씁쓸하다

 

올 시즌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리버풀이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에버턴에게 무릎을 꿇으며 강등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팀의 매각이 확정되었고, 페르난도 토레스의 사타구니 부상이 회복되면서 에버턴전에서의 분발을 예감케 했지만 실상은 정반대 였습니다. 그동안 에버턴에 강한 면모를 보였으나 이번 경기에서는 90분 동안 철저한 졸전을 펼쳤습니다.

리버풀은 17일 저녁 9시 30분(이하 한국시간)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8라운드 에버턴 원정에서 0-2로 패했습니다. 전반 33분 팀 케이힐에게 골문 가까이에서 오른발 강슛으로 결승골을 허용했고, 후반 5분에는 박스 중앙에서 기습 오른발 중거리슛을 날린 미켈 아르테타의 한 방에 얻어맞으며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에버턴전 패배로 최근 5경기 연속 무승(2무3패)에 그쳤으며, 리그 18위에서 19위(1승3무4패)로 추락하여 두 라운드 연속 강등권에 빠졌습니다. 아직 시즌이 30경기 남았지만, 지금의 경기력으로는 상위권 진입이 힘겨워 보입니다. 에버턴을 상대로 지난 10시즌 동안 단 1번의 패배에 그쳤으나 이제는 0-2 패배를 비롯 경기 내용까지 일방적으로 밀리는 졸전을 펼쳤습니다. 이번 패배는 리버풀의 현주소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리버풀의 롱볼 축구, 에버턴의 강력한 압박에 읽혔다

우선, 리버풀은 에버턴전에서 4-2-3-1을 구사했습니다. 레이나가 골키퍼, 콘체스키-키르기아코스-스크르텔-캐러거가 포백, 루카스-메이렐레스가 더블 볼란치, 조 콜-제라드-막시가 2선 미드필더, 토레스가 원톱을 맡았습니다. 이에 맞선 에버턴은 4-4-1-1을 활용했습니다. 하워드가 골키퍼, 베인스-디스틴-자카렐카-네빌이 포백, 오스만-아르테타-헤이팅아-콜멘이 미드필더, 케이힐이 쉐도우, 야쿠부가 타겟맨으로 뛰었습니다. 하지만 경기 상황에 따라 헤이팅아를 홀딩맨으로 활용하고, 아르데타-케이힐을 앞선으로 끌어올리거나 그 간격을 좁혀 두 선수의 활동 폭을 늘리는 변형 전술로 리버풀을 교란했습니다.

그 이유는 리버풀이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부조화에 의해 매번 힘든 경기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리버풀은 지난 1년 동안 여러명의 미드필더들을 영입했고 그 중에 일부가 팀 전력에 녹아드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미드필더들끼리 호흡이 제대로 맞지 못했고 원톱 토레스가 고립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토레스는 많은 활동량을 요구받다보니 사타구니 부상이 잦아지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2008/09시즌 리버풀의 중원을 주름잡았던 알론소-마스체라노 조합의 이적 공백을 확실하게 대체하지 못한 것이 상대팀의 공세에 쉽게 무너지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에버턴의 리버풀 격파 핵심 키워드는 '강력한 압박' 이었습니다. 리버풀의 미드필더와 공격진이 매우 어수선하기 때문에, 그 약점을 노려 '에버턴의 최대 강점인' 빠른 역습의 돌파구를 노렸습니다. 빠른발을 주무기로 삼는 디스틴이 토레스를 봉쇄하고, 헤이팅아가 제라드의 매치업 상대를 맡아 아르테타-케이힐이 리버풀의 중앙 공격 길목을 차단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측면에서는 베인스-네빌 같은 좌우 풀백들이 리버풀의 조 콜과 막시를 끈질기게 따라붙으면서. 좌우 윙어를 맡는 오스만-콜멘이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여 상대 윙어가 패스 받을 공간을 찾지 못하도록 공간을 장악했습니다. 이러한 수비 전략은 리버풀의 졸전을 키우면서 2-0 승리를 거두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리버풀은 전반 10분 점유율에서 64-36(%)로 앞섰지만 슈팅 숫자에서는 0-3(개)로 밀렸습니다.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이 볼을 잡을 시간이 많았지만, 에버턴의 강력한 압박을 이겨내지 못해 박스 안으로 접근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토레스에게 볼을 공급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공격이 차단되면 에버턴의 빠른 역습에 흔들리면서 슈팅 3개를 내주는 불안함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리버풀은 전반 11분 콘체스키, 15분 제라드, 17분 막시가 에버턴 선수를 상대로 거친 몸싸움을 펼치며 저항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습니다. 조 콜-토레스-막시가 상대 수비에게 철저히 묶이면서 공격 활로를 찾는데 실패했죠.

무엇보다 볼 배급이 문제였습니다. 510-228(개)의 압도적인 패스 횟수를 기록했고 67-33(%)의 점유율 우세로 경기를 마쳤지만 오히려 비효율적인 공격력을 키우고 말았죠. 횡패스, 종패스, 백패스를 골고루 섞으며 공격을 전개했으나 그것마저 부정확하게 연결하면서 상대에게 커팅당하기 일쑤였습니다. 패스 타이밍이 느렸고 강약 조절에 약한 면모를 보이면서 에버턴의 압박에 쉽게 읽힐 수 밖에 없는 공격 패턴을 거듭했습니다. 그나마 제라드와 메이렐레스가 각각 71개, 70개의 패스를 시도하고 공수 양면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공격의 물꼬를 트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지만, 다른 동료 선수들이 두 선수를 뒷받침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제라드는 지난 시즌보다 폼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열악해진 경기력 때문에 전혀 빛을 못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리버풀은 전반 30분을 경과하자 롱볼 축구로 전환했습니다. 낮은 패스로는 더 이상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후방에서 전방으로 롱패스를 날리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동료 선수에게 높게 볼을 띄우거나, 측면에서 여러차례 크로스를 연결하는 패턴으로 변화했습니다. 디스틴에게 막혀 부진했던 토레스는 이때부터 공중볼을 받는 빈도가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토레스에게 제공권을 이용한 공격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데이비스(볼턴)-드록바(첼시)-샤막, 벤트너(이상 아스날) 같은 공중볼 및 포스트 플레이에 강한 타겟맨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후방에서 패스를 받아 돌파를 노리거나 골 기회를 엿보면서 상대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롱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토레스가 롱볼을 받으려는 상황에서 에버턴 수비수들이 그쪽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롱볼이 날라오면 상대 수비 입장에서 그것을 차단할 수 있는 타이밍을 확보하기 때문에 수비하는 입장에서 편합니다. 그 상황에서 한 가지의 문제점을 더 지적하자면, 토레스가 롱볼을 받거나 상대 수비가 걷어낸 이후의 리버풀 2선 미드필더들의 대응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2선에서 토레스와 간격을 좁히지 못하면서 공중볼을 받아내는 움직임이 소극적 이었습니다. 서로 자기 역할에만 치중하다보니 토레스와의 공존을 신경쓰지 못했죠. 더욱이 중원마저 무너졌기 때문에, 제라드를 골문쪽으로 박아놓기에는 공수 밸런스가 깨지는 문제점이 나타납니다. 결국, 리버풀의 롱볼 축구는 공격의 악순환을 키우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특히 전반 33분 실점 상황은 사전에 철저히 대비했다면 막아낼 수 있었던 장면 입니다. 에버턴이 하프라인 부근에서 볼을 터치하여 콜멘의 드리블 돌파가 시작되기 이전의 시점에서, 리버풀 2선에서는 그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압박에 관여하지 못했습니다. 그 약점을 노린 콜멘은 박스 오른쪽에서 루카스-콘체스키를 달고 쇄도하며 문전 가까이에 있던 케이힐에게 패스를 연결했고, 케이힐은 오른발 강슛으로 리버풀의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공격이 풀리지 않다보니 경기에 임하는 집중력이 결여되면서 상대의 기습적인 임펙트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후반 5분 케이힐에게 실점을 허용하고 사기가 떨어지면서 0-2 스코어를 만회할 힘을 잃어갔습니다.

교체 작전에서도 에버턴에게 패했습니다. 후반 30분 이전까지 단 1명의 선수(후반 25분 out 루카스, in 은고그)만 교체했을 뿐, 에버턴은 교체 카드 세 장을 모두 쓰면서 경기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전술 변화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호지슨 감독은 풀럼에 이어 리버풀에서도 교체 타이밍이 늦는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에버턴전 같은 경기에서는 빠른 선수 교체를 통해 팀 경기력을 안정시키며 경기 상황에 맞는 변화를 노려야 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에버턴에게 밀렸던 리버풀은 철저히 졸전을 펼친 끝에 결국 19위로 추락했습니다. 과거 프리미어리그에서 천하무적 행보를 구가하며 명문 클럽의 자존심을 세웠던 리버풀의 최근 행보가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강등권 탈출을 위해 사활을 걸었어야 할 에버턴전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진 것은, 더 이상 예전의 리버풀이 아니라는 것을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상기시키고 말았습니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리버풀의 올 시즌 팀 득점(7골)은 리그 득점 1위 테베스(맨시티)의 7골과 동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