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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일본 축구의 아킬레스건, 마땅한 원톱이 없다

 

일본 축구 대표팀을 짊어질 '자케로니 재팬'의 출발은 기대 이상 이었습니다. 출범 첫 경기였던 지난 8일 아르헨티나전에서 1-0 완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고, 12일 한국전에서는 득점 없이 0-0으로 비겼으나 경기 내용에서 우세를 점한데다 한국전 3연패를 허락하지 않는 데 의의를 두었습니다. 지금의 기세를 놓고 보면 내년 1월 아시안컵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오를 조짐입니다. 2000-2004년에 아시아를 제패했던 만큼,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 합니다.

그런 일본 축구의 현재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이유는 남아공 월드컵때 보다 경기력이 더 늘었기 때문입니다. 공수 양면에 걸쳐 짜임새 넘치는 조직력이 향상되었고 그 속에서 과거 일본 축구에 깊게 투영되지 않았던 승리욕을 길렀습니다. 불과 몇 개월전까지 패스-점유율 위주의 축구 패턴을 고수했으나 이제는 압박 축구에 눈을 뜨면서 쉽게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 응집력이 강화됐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에는 상대 빈 공간을 노리는 침투를 적극 구사하고 전진패스의 빈도를 늘리면서, 결정적인 역습 기회를 노리는 움직임 및 판단력이 영민하게 변화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하세베-엔도로 짜인 더블 볼란치가 있습니다. 두 선수가 중원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상대를 찰거머리처럼 압박하면서 포백이 수비 부담을 덜 느끼게 됐습니다. 일본이 툴리우-나카자와 센터백 콤비 없이도 아르헨티나-한국전에서 무실점의 성과를 낸 원인은 하세베-엔도의 수비력이 강하다는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두 선수가 중원을 든든히 버티면서 공격 옵션들이 후방을 의식하지 않고 전방 공격에 치중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했습니다. 두 선수는 많은 볼 터치를 통해 쉴새없이 전방으로 패스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정확도-타이밍-세기 모두 흠잡을 것 없으며 때에 따라 상대 빈 공간을 노리는 공격 연결까지 펼칩니다. 어쩌면 두 선수의 중원 조합은 아시아 최강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본은 한 가지의 고질적 약점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바로 공격수입니다. 90년대의 미우라-나카야마 세대 이후 대표팀에서 꾸준히 골을 넣거나 위협적인 공격력을 자랑했던 공격수가 없습니다. 그 이후 조 쇼지-야나기사와-다카하라-스즈키-쿠보 같은 공격수들이 등장했지만 20대 중반 또는 후반부터 급격한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같은 범주에 포함 될 수 있는 오쿠보 요시토는 오카다 체제에서의 성공적인 왼쪽 윙어 전환을 통해 만회한 인상이 짙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공격수 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뜻보면, 일본의 아르헨티나전과 한국전 행보는 완벽에 가까운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공격수 문제는 여전히 해결짓지 못했습니다. 아르헨티나전 원톱이었던 모리모토 다카유키, 한국전 원톱이었던 마에다 료이치는 상대 수비수들에 의해 정적인 활동 패턴이 읽히면서 자신의 공격력을 끌어올리지 못했습니다. 모리모토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힘으로 공격 전개를 펼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상대 수비를 자신쪽으로 끌고 들어오는 움직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공격력을 펼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에다는 한국전에서 철저하게 부진하며 대표팀에 약한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흐름은 몇 개월전의 오카다 체제에서도 비롯됐습니다. 일본의 원톱이었던 오카자기 신지는 지난해 A매치에서만 15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쳤지만 대부분의 골은 약팀을 상대로 거둔 결과물입니다. 상대팀의 강력한 압박을 받으면 맥을 못추면서 최전방에 고립되는 약점을 남겼고, 이 같은 패턴이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직전까지 두드러지면서 일본의 성적 부진 원인으로 귀결됐습니다. 결국 오카다 감독은 오카자키를 선발에서 제외시키고 오른쪽 윙어 혼다를 원톱으로 올리는 포지션 변화를 감행했습니다. 혼다는 덴마크전 무회전 프리킥을 포함해서 2골을 넣으며 일본의 16강 진출을 이끌었고 오카다 감독의 선택은 적중했습니다.

하지만 오카자키의 당시 대표팀 부진은 어쩔 수 없었던 결과였습니다. 오카자키는 혼다처럼 전형적인 원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인 움직임과 투철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휘젓는 타입에 속합니다. 2선과 측면에서의 활동이 많은 선수이며 그 과정에서 다득점을 양산했습니다. 반면 최전방은 후방의 패스를 받아 골 기회를 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움직임이 고정되기 쉬웠습니다. 오카자키에게는 그 역할이 몸에 안맞았던 것이죠. 공교롭게도 아르헨티나전에서는 왼쪽 윙어로 출전하여 엄청난 기동력을 발휘한 끝에 결승골을 뽑아냈습니다. 그동안 오카자기카 중앙 공격수로 뛰었던 것은 일본 공격수 자원이 취약함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 일본이 지난 두 번의 A매치에서 인상깊은 공격력을 과시했던 이유는 2선 미드필더들이 원톱의 단점을 커버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아르헨티나전에서는 오카자키-카가와-혼다가 상대 배후 공간을 적극적으로 침투하고 부지런히 활동 폭을 넓히며 일본이 경기 흐름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했습니다. 여기에 오카자키가 결승골까지 성공시키면서 그 빛을 더했습니다. 한국전에서는 오카자키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결장했고, 카가와-마쓰이 같은 좌우 윙어들이 침묵을 지켰지만 혼다가 후반 중반부터 펄펄 날았습니다. 후반 초반까지는 부진했지만 그 이후 조용형의 뒷공간을 노리는 돌파를 적극 시도하며 결정적인 역습 기회를 창출했습니다. 하지만 마에다의 부진 때문에 결국 무득점에 그쳤습니다.

이 같은 경기 흐름은 아시안컵에서도 이어질 것입니다. 모리모토-마에다를 능가할 수 있는 원톱은 일본 축구에 존재하지 않으며, 이들에게 믿음을 주거나 아니면 오카자키-혼다-카가와 중에 한 명이 원톱을 대신 맡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센터백 툴리우를 원톱으로 세우기에는 무모한 선택으로 여겨집니다. 투톱 전환 가능성은 더욱 비현실적 입니다. 투톱으로 변신하면 일본 미드필더진은 5명에서 4명으로 줄어들고, 공간에 대한 부담이 심해지면서 공수 밸런스 및 조직력이 깨지는 역효과가 벌어집니다. 결국, 일본은 아시안컵에서 미드필더진의 강점을 그대로 이어가기 위해 원톱을 세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아시안컵 우승 가능성이 충분한 팀입니다. 하지만 원톱 문제는 우승 행보에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2선 미드필더들이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만 그들에게 의지하기에는 전술적인 유연성, 개인 공격력이 절대적으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잘 이겨냈지만 아시안컵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일본 축구의 업그레이드를 꿈꾸는 자케로니 감독 입장에서도 언젠가 이 부분을 심도있게 고민할지 모릅니다. 과연 일본의 아시안컵 우승 행보가 무난할지, 아니면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 의해 원톱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