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은 지난 12일 일본전을 끝으로 2010년 A매치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올해는 원정 월드컵 첫 16강 진출의 쾌거를 달성한 것에 큰 의의를 둘 수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에 이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조광래 감독은 '한국 축구의 세계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대표팀의 진화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지난 8월 11일 나이지리아전을 놓고 보면 조광래호의 행보는 탄탄할 것으로 보였고 내년 1월 아시안컵 우승을 기대케 했습니다.
하지만 조광래호는 지난달 9월 7일 이란전, 지난 일본전에서 전술적인 어려움에 빠져 좌초했습니다. 두 경기 모두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답답했던 것이 아닌, 경기 내용부터 매끄럽지 못했고 선수들도 마치 나사가 풀린 것 처럼 쫓기거나 또는 허둥대기 일쑤였습니다. 대표팀 전술의 긍정적 변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성장통으로 볼 수 있겠지만, 문제는 내년 1월 아시안컵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이를 대비할 A매치 평가전 일정도 여의치 않은 현실입니다. 나이지리아전과 비교하면, 아시안컵에서 겪게 될 고민들이 늘어나고 말았습니다.
1. 선수들이 '조광래 축구'에 적응 못했다
축구는 감독의 비중이 높은 스포츠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출중한 선수들이 즐비하더라도 감독의 전술 능력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오케스트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숙련된 연주자들이 즐비하더라도 지휘자가 악기의 음과 박자를 조율하지 못하면 그 곡은 졸작이 됩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2010년에 허정무-조광래 라는 선장과 함께 배를 탔습니다. 두 감독 사이에서 선수들의 경기력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허정무호는 2년 넘게 숙련된 상태였다면 조광래호는 새롭게 출항해야 하는 상황 이었습니다. 또한 조광래호는 허정무 감독에 선택받지 못한 선수들을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새판짜기'를 해야합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조광래 감독의 축구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3백과 4백을 한 경기에서 동시에 병행하는 축구, 포어 리베로를 두는 수비 전술, 그동안 대표팀에서 생소했던 4-1-4-1, 몇몇 선수들의 포지션 변신을 통해 신선한 바람을 연출하려고 했으나 아무런 색깔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 감독이 부임하면서 A매치 3경기를 치렀고 소집훈련도 부족했지만, 문제는 짧은 훈련 시간 속에서 많은 변화를 시도하기에는 선수들의 혼란만 커질 뿐입니다. 또한 조 감독은 대표팀에서 패스 중심의 공격력을 추구했으나, 정작 대표팀은 여전히 롱볼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 감독의 전술 업그레이드 의지는 좋지만 아직 선수들이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축구 대표팀을 성공적으로 이끈 히딩크호-허정무호 출범 초기에도 전반적인 경기력은 매끄럽지 못했고, 두 감독은 경질 여론까지 시달렸습니다. 그 사례를 놓고 보면 조광래호의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자케로니 재팬'은 오카다 체제보다 더 강해졌습니다. 일본 축구 고유의 강점인 미드필더진의 두꺼움, 오카다 체제의 강점인 탄탄한 조직력, 그리고 자케로니 재팬에서 전방패스와 스피드를 강화하며 일본을 강하게하는 무기가 더 늘었습니다. 기존 대표팀 장점에 신임 감독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시너지를 이루었죠. 반면 조광래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향이 짙으며 마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염두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시안컵입니다.
2. 여전히 상대 역습에 취약하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 국제 무대에서 수비 불안으로 무너진 경우가 비일비재 했습니다. 상대 역습에 쉽게 흔들려 결정적 실점 위기를 허용한 적이 다반사였죠. 중동 축구에게 고전했던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한국의 수비수들은 고질적으로 경기 집중력이 부족하며, 상대 공격 옵션의 빠른 주력을 제어할 수 있는 선수가 마땅치 않습니다. 조광래호가 승리하지 못했던 이란전과 일본전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이란전에서는 이영표의 수비 실수에 의해 한 순간에 상대 역습을 내주고 결승골을 허용했으며, 일본전에서는 후반 막판부터 상대 역습에 여러차례 흔들리며 그것을 막아내기에 급급하면서도 계속 뚫렸습니다.
아시안컵에서 한국과 상대하는 팀들은 그 취약점을 노릴 것입니다. 지난 2007년 아시안컵 4강에서 한국을 탈락시킨 이라크는 선 수비-후 역습을 일관했고, 한국전 승리를 벼르는 팀들도 마찬가지 반응일 것입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조광래호의 수비 전술은 지금까지 비효율적인 모습이 뚜렷했습니다. 이란전에서 상대팀이 측면 공격을 시도하면 좌우 윙백이 수비에 가담해서 5백이 되었는데, 문제는 그것이 중원 싸움에서 밀려 2선 돌파를 통한 역습을 허용했습니다. 일본전에서는 후반전에 공격에 계속 치중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의 간격이 점점 벌어져 상대 역습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수비가 안정되지 못했지만, 문제는 그 상태에서 아시안컵을 준비해야 합니다.
3. 박주영의 대표팀 골 부진
한국은 조광래호 출범 이후 3경기에서 2골을 넣었습니다. 2골은 지난 나이지리아전에서 윤빛가람, 최효진 같은 미드필더 자원들이 기록했을 뿐, 공격수의 몸에서 상대 골망을 흔든 경우는 없었습니다. 더욱이 이란전과 일본전에서는 무득점에 그쳤습니다. 3경기에서 중앙 공격수로 출전한 박주영이 소속팀 AS모나코에 이어 대표팀에서 골 부진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기 내용도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후방에서 패스를 받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거나 결정적인 골 기회를 노리는 적극성, 중앙 공격수로서 상대 수비를 흔들거나 그 사이를 파고들며 위협을 가하는 움직임이 부족했습니다. 그 결과는 최전방 고립과 함께 골 부족으로 귀결되죠.
문제는 박주영의 골 감각이 회복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소속팀에서 왼쪽 윙어로 전환했기 때문입니다. 음보카니가 라콤브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박주영이 측면 미드필더로 좌천된 듯한 인상이 짙습니다. 라콤브 감독은 박주영이 아닌 음보카니의 파워넘치는 움직임과 듬직한 체격을 선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주영이 앞으로도 왼쪽 윙어로 꾸준히 출전하면 중앙 공격수로서의 감각이 무뎌지고 두 포지션 사이의 역할 혼동이 벌어지는 문제점에 직면합니다. 그 시점은 아시안컵 이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4년 전 대표팀에서 왼쪽 윙 포워드 전환과 동시에 포지션 혼란에 빠진 박주영에게 있어 현재 행보는 결코 좋다고 볼 수 없으며, 대표팀의 아시안컵 공격력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4. 믿음감이 부족한 윤빛가람, 그리고 파트너 문제
윤빛가람은 나이지리아전에서 A매치 데뷔전 데뷔골을 기록하는 인상깊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란전과 일본전에서는 상대 허리의 압박에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두 번씩이나 허리 싸움에서 밀렸다는 것은 아시안컵에서 붙박이 주전 미드필더로 내세우기에는 믿음감이 부족합니다. 물론 A매치 3경기 연속 선발로 뛰었고, 2~3개월전까지 경남에서 사제지간으로 지냈던 조광래 감독의 전술을 잘 알고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 압박에 취약한 단점은 아시안컵 같은 비중 높은 경기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대표팀의 중원 장악이 어려움을 겪는 단점으로 직결되기 쉽습니다.
그런 윤빛가람의 공격력이 최대화되려면 짧은 패스와 수비력의 장점을 자랑하는 파트너와 호흡을 맞춰야 합니다. 하지만 기성용, 신형민과의 조합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기성용은 수비 보다는 공격에 강점을 삼는 선수이며, 신형민은 짧은 패스보다는 롱패스에 강하고 남아공 월드컵 이전에 비해 폼이 떨어졌습니다. 김정우 같은 성향이라면 윤빛가람과 어울리기 쉬운타입이고 조광래 감독도 본인이 선호하는 타입이라고 언론을 통해 공개한 적이 있었지만, 기초 군사훈련 이후 컨디션 저하로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문제는 윤빛가람의 최적 파트너가 결정되지 않았고 호흡까지 끌어올리지 못한 상황에서 아시안컵을 맞이해야 합니다.
5. EPL리거-K리거-J리거 체력이 정상적이지 않다
한국은 'EPL 리거' 박지성-이청용에 대한 전술적인 의존도가 높습니다. 두 선수가 공격의 실마리를 마련하지 못하면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없는 답답함을 일관하게 됩니다. 일본전을 놓고봐도 박지성 결장 여파는 예상보다 깊었습니다. 문제는 두 선수가 아시안컵을 앞두고 소속팀에서 빠듯한 경기 일정을 소화한다는 점입니다. 12월 19일, 26일, 28일, 내년 1월 1일, 4일에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그리고 6일 뒤에 아시안컵 첫 번째 경기인 카타르전을 준비합니다. 체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대표팀 일정을 병행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몸 상태로 대회에 임할지 의문입니다.
특히 이청용은 팀 내에서의 입지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박지성처럼 로테이션에 의한 선발 제외 혹은 결장을 기대하기 힘든 눈치입니다. 지난 시즌 후반부처럼 체력 저하에 시달릴지 모릅니다. 박지성은 무릎에 물을 빼더라도 복귀 이후에 부지런히 경기 일정을 소화해야 합니다. 맨유의 측면 자원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기 출전 빈도가 늘어날 것입니다. 결국, 이청용처럼 피로한 상태에서 아시안컵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1월 중순은 K리그의 휴식기가 끝나고 동계훈련에 돌입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대표팀 K리거들의 체력이 정상적으로 올라온 시기가 아니며 J리거도 다를 바 없습니다. 대표팀이 체력 훈련을 강화하더라도 선수들의 실전 감각이 떨어진 것이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6. 박지성이 아시안컵에 빠질 수도 있다
아시안컵은 대륙 대항전이기 때문에 박지성 같은 유럽파들의 차출이 가능합니다. 짝수년도 1월에 열리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과 같은 성격의 대회로서, 네이션스컵도 유럽파들이 소속팀에서의 일정을 뒤로 하고 대표팀에 차출됩니다. 그러나 만약 박지성이 부상의 이유로 아시안컵에 빠지면 한국 대표팀의 우승 과정은 어려워지며, 우리는 일본전에서 박지성 공백을 절실히 실감했습니다. 물론 박지성은 더 이상 부상이 발생해서는 안되며 아시안컵에 필요한 옵션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크고 작은 부상이 잦았고, 그의 무릎 연골은 무리한 스케줄 때문에 피로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히려 맨유 입장에서는 박지성의 좋지 않은 무릎을 이유로 아시안컵 출전에 난색을 표시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아직 맨유측의 반응이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맨유와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이 일본전을 앞두고 무릎 통증과 함께 물이 찼던 소식을 부정적으로 여길것입니다. 마땅한 측면 옵션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력 손실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더욱이 박지성은 맨유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펼치고 있고, 예년에 비해 경기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아시안컵 이후의 행보를 가늠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현 시점에서는 박지성의 아시안컵 출전에 무게감이 실리지만, 조광래호는 만일을 대비해서 박지성이 없는 아시안컵 행보까지 대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