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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무릎 부상, 한국 축구의 '빛과 그림자'

 

'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예상치 못한 무릎 부상 때문에 결국 일본전에 결장합니다. 지난 2007년 4월 오른쪽 무릎 재생 수술을 받았던 부위에 고통을 느낀데다 물까지 차면서 선수 보호 차원에 의해 경기에 뛰지 않게 됐습니다. 조광래호 입장에서는 박지성의 부상 공백을 안고 일본과 격돌하는 부담스런 상황에 몰렸지만, 그보다 더 크게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박지성이 여전히 무릎 부상의 악령을 이겨내지 못한데다 대표팀 차출 후유증이 점점 더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우선, 박지성의 무릎 부상은 맨유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입니다.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발목 골절로 최소 내년 2월에 복귀가 가능한 상황에서 박지성까지 빠지면, 측면에 가용할 수 있는 마땅한 윙어가 루이스 나니에 불과합니다. 라이언 긱스는 올해 37세로서 1주일에 1경기만 소화 가능한 체력 상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베베-오베르탕 같은 젊은 윙어들은 아직 검증되지 못했거나 실력 부족의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그동안 박지성을 무리하게 투입시키지 않았던 이유는 무릎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지난해 가을에 이어 올해도 대표팀에 다녀오면 무릎이 부어 올라 물이차는 어려움에 시달렸습니다.

물론 박지성은 대표팀에 필요한 선수입니다. 한국은 그동안 박지성의 존재 유무에 따라 공격력이 좌우되고 공수 밸런스 조절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박지성이 있음에 젊은 선수들이 A매치에서 주늑들지 않고 배짱 넘치는 경기력을 펼칠 수 있었고 그 흐름속에서 이청용-기성용이 팀 전력의 주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박지성이 팀의 득점에 관여하면서 대표팀의 킬러 부재를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었고, 흥행적인 입장에서도 박지성의 네임벨류가 미치는 영향이 컸습니다. 그리고 박지성이 주장을 맡으면서 대표팀에 '소통의 리더십'이 등장하여 선수들이 신뢰와 친목으로 똘똘 뭉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한국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정 첫 16강 진출을 달성한 과정을 놓고 봐도 박지성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문제는 대표팀에 필요한 이득이 오히려 박지성에게 적잖은 희생을 안겨주고 말았습니다. 박지성은 잉글랜드에서 한국을 왕복하는 과정에서 최소 12시간 이상 비행기에 탑승해야만 했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하기 때문에 시차 적응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느꼈습니다. 컨디션이 경기력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축구 선수 입장에서 장시간 비행과 시차 적응은 엄청난 피로를 안겨줍니다. 맨유가 지난 2008년 12월 클럽 선수권 출전을 위해 잉글랜드에서 일본으로 이동할 때 수면 코치를 영입한 것이 그 예 입니다. 그럼에도 맨유 선수들은 다시 잉글랜드에 돌아왔을 때 피곤함에 지쳤다고 하소연 했습니다. 박지성은 2003년 1월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 진출 이후 지금까지 8년 동안 대표팀 차출을 위해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더욱이 박지성은 무릎이 좋지 않습니다. 무릎이라는 부위는 외부 영향에 의해 자극을 받기 쉬우며, 특히 하체를 많이 이용하는 축구 선수에게는 무릎이 민감합니다. 무릎이 피로하면 부상 가능성이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부 여론에서는 박지성이 결장하면 '박지성 위기론'을 꺼내들며 흔들기에 바빴지만,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무리하게 출전시키지 않았던 것은 빠듯한 경기 일정 속에서 무릎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박지성이 대표팀 경기를 위해 국내에 입국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다보니 무릎이 피로할 수 밖에 없었고, 컨디션도 떨어지면서 경기력까지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박지성의 경기력은 지난 시즌부터 들쭉날쭉 했으며 올 시즌에도 정상적인 경기를 펼친 경험이 적습니다.

이미 박지성의 무릎은, 적어도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부상의 우려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박지성이 지난해 4월 자신의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세 번 밖에"라고 강조할 정도로 세 번의 무릎 수술을 받은데다 몇 차례의 수술 위기까지 몰렸고, 잦은 수술 때문에 연골이 매끄럽지 못하면서 무리하게 움직이면 곤란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의 출전 시간 배려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소속팀을 동시에 병행하면서 무릎이 점점 악화됐습니다. 다행히 2007년 4월 무릎 수술 이후 더 이상의 수술은 없었지만, 문제는 소속팀에서 여전히 피말리는 경쟁을 펼쳐야하는데다 과거에 비해 경기력이 떨어졌습니다.

박지성은 지난 1년 동안 대표팀에서 세 번의 무릎 부상을 당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세네갈전 직후 무릎에 물이 찼던 것, 지난 5월 30일 벨라루스전 이후 무릎 통증으로 4일 뒤 스페인전에 결장한 것, 그리고 이번 일본전을 앞두고 무릎 통증과 함께 물까지 찼습니다. 문제는 무릎에 물이 차면 최소 1달 정도는 결장이 불가피합니다. 축구 선수는 무릎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감각을 되찾기 전까지는 그라운드를 밟을 수 없습니다. 박지성은 그동안 무릎을 많이 다쳤기 때문에 맨유도 이전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2007년 4월 무릎 수술을 받아 몇달 동안 장기 결장했던 원인 또한 대표팀의 우루과이전 일정을 위해 국내에 입국한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조광래 감독 입장에서도 박지성의 무릎 부상에 당황했을 것입니다. 내년 1월 아시안컵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전술을 대표팀에 능숙하게 적응시켜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박지성의 존재감이 필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아시안컵은 한국이 1960년 이후 반 세기 동안 우승에 실패했던 대회였기 때문에 박지성을 차출할 명분이 뚜렷하게 작용했습니다. 아시안컵은 엄연히 대륙 대항전이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선전 차원에서 2013년 브라질 컨페더레이션스컵 출전권을 따내야하기 때문에 박지성을 비롯한 최정예 전력을 구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지성 없이 아시안컵에 출전하면 대표팀의 우승 과정이 힘겹다는 것을 대표팀도 인식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박지성의 무릎은 대표팀이 생각했던 것 만큼 좋았던 편이 아닙니다. 8월-9월-10월에 걸쳐 국내에서 A매치를 치르는 버거움도 있었지만, 올 시즌 체력적인 완성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경기력 부진을 스스로 의식하는 심리적 어려움에 시달렸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출전에 따른 휴식 차원에서 맨유의 프리시즌 일정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체력이 평상시 수준에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표팀과 소속팀 일정을 병행하며 무릎이 점점 안좋아졌죠.

더욱 서글픈 것은, 대표팀이 여전히 박지성의 존재감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청용-기성용-정성룡 외에 조광래 체제에서 윤빛가람-홍정호-김영권 같은 신예들까지 가세하면서 세대교체가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팀의 핵심은 박지성이고 그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데려가고 싶어합니다. 조광래 감독은 지난 8월30일 이란전 대표팀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박지성의 능력이라면 아시안컵 뿐만 아니라 2014년까지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체력 또한 문제가 없을 것이며,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밝힌 전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이 무릎 부상 악령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2014년까지 정상적으로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되돌이켜 봐야 할 것은, 한국 축구는 특정 선수의 존재감에 너무 치우치는 근사안적인 운영 자세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동국-고종수-최성국-박주영-김진규가 각급 대표팀 소집에 의해 혹사 당하며 순탄치 않은 행보를 걸어왔던 것은 웬만한 축구 매니아라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지난해까지는 이청용-기성용도 혹사 위기에 직면했고, 이청용은 올해 초 과부하에 걸리면서 체력 저하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박지성도 그 범주에 포함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일본전을 앞두고 무릎 부상을 당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잦은 대표팀 소집 때문에 무릎이 악화되고 맨유에서도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의 직장은 대표팀이 아니라 맨유입니다. 2년 전에 어느 모 대표팀 감독이 올림픽을 위해 박지성을 와일드카드 대상으로 염두한 것을 미루어봐도, 한국 축구는 선수 관리의 배려적인 측면이 부족합니다. 박지성의 무릎 부상은 한국 축구의 '빛과 그림자'를 말해주는 안타까움을 자극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