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최고의 선수'로 명성을 구가했던 '하얀 펠레' 카카(28, 레알 마드리드. 이하 레알)의 현재는 과거에 비해 초라한 것이 사실입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와 더불어 '세계 3대 축구천재'로 이름을 떨쳤지만 이제는 그 대열에서 이탈한 것이 분명하며, 또 다른 축구 영웅들의 등장 속에서 존재감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여름 레알로 이적하면서 부상 및 부진으로 고전한 것,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들쭉날쭉한 행보가 결국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았습니다.
결국, 카카는 지난 여름 이적시장 부터 지금까지 이탈리아 세리에A 복귀 루머에 시달렸습니다. 레알에서의 입지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카카 입장에서는 지난 8월 왼쪽 무릎 반월판 수술을 받으면서 3~4개월 동안 결장하게 된 것을 답답하게 여길지 모릅니다. 문제는 부상 복귀 이후 레알에서 계속 뛰게 될지, 아니면 레알에서의 실패를 머금고 세리에A에서 재기를 꿈꿀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또한 자신의 영입을 원하는 팀은 친정팀 AC밀란 뿐만 아니라 인터 밀란(이하 인테르)까지 가세한 상황입니다. '세계 최정상급 타겟맨'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AC밀란)의 예 처럼, 임대 가능성이 없는것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카카의 옛 친정팀이었던 브라질의 상파울루를 비롯해서 첼시,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까지 그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카카의 복잡한 거취가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 어떤 형태로 매듭짓고 결론을 쓰게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1. 레알 마드리드 잔류
'축구계의 엄친아'로 유명한 카카 입장에서 레알에서의 실패는 그 누구보다 화려한 커리어에 뼈아픈 흠집이 생기는 결정타가 됩니다. 카카는 친정팀 AC밀란에서 뛰던 후반부에 '여러 대회 우승을 통해 축구 선수로서 이루었던 목표를 모두 이루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스페인 진출 이후 온갖 어려움에 시달리면서 엄친아의 이미지와 점점 부합되지 않게 됐습니다. 현 상황에서 레알을 떠나면 재기 실패는 물론 먹튀라는 오명을 받게 됩니다. 지난해 여름 6450만 유료(약 1008억원)에 '세계 최고 이적료 3위'의 엄청난 금액으로 레알에 둥지를 틀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액수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카카는 무리뉴 감독의 성향에 어울리는 공격형 미드필더 입니다. 무리뉴 감독은 포르투-첼시-인테르 사령탑을 맡으면서 각각 데쿠-램퍼드-스네이더르 같은 역습 전개 및 종패스가 뛰어난 공격형 미드필더를 선호했습니다. 카카는 잦은 부상 때문에 과거에 비해 돌파-턴 동작-유연성이 떨어지는 어려움에 시달렸지만 적어도 패싱력 만큼은 군계일학의 솜씨가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무리뉴 감독이 미드필더와 윙 포워드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 일부 경기에서 알론소-라스-케디라로 짜인 스리 볼란치를 구축하며 공격형 미드필더를 생략한 전술을 구사했다는 점은, 카카가 과연 무리뉴 감독이 원했던 선수인지 의구심이 제기됩니다. 또한 자신의 자리에 '이적생' 외질이 가세했다는 점에서 주전 탈락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카카가 명예회복에서 깨끗하게 성공하려면 '레알 잔류' 만큼 최상의 시나리오가 없습니다. 세리에A로 돌아가면 레알에서 실패한 커리어가 계속 따라오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불안정했던 행보를 부상 복귀 이후에 무리뉴 체제에서 되갚아야 재기에 성공합니다. 물론 경기 스타일은 변해야 할 것입니다.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예전만큼의 빠른 주력과 부드러운 유연성을 뽐내기에는 부상을 키우는 꼴이 됩니다. 짧고 간결한 패스 위주의 경기 패턴을 통해 팀을 위해 헌신적인 플레이를 해야 합니다. AC밀란 시절의 번뜩이는 파괴력을 재현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타겟맨 출신의 인테르 왼쪽 윙어' 에토의 사례처럼 어느 자리에서든 자기 몫을 충분히 해내야 합니다.
또한 페레스 레알 회장 입장에서도 '자신이 영입했던' 카카의 세리에A 복귀는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카카가 이대로 세리에A에 돌아가면, 카카 영입에 6450만 파운드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은 자신의 결정은 외부에서 잘못되고 틀린 선택으로 비춰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곧 레알 회장으로서 힘든 행보를 걷게 될 결정타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가 카카의 재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카카가 레알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쳐 팀의 우승을 이끌면 자신에게 이로운 것은 분명합니다. 결국, 카카에게 있어 레알 잔류는 힘든 도전이지만 명예회복을 위해 부딪혀봐야 할 시나리오입니다.
2. 인테르 이적 혹은 임대
AC밀란에 대한 충성심이 강렬하기로 유명한 카카에게 '지역 라이벌' 인테르 진출은 마음속으로 원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카카가 인테르로 이동하는 시나리오는 현실적으로 가능하며 레알쪽에서 성사되기를 바라는 눈치입니다. 무리뉴 감독과 레알은 인테르의 지난 시즌 유로피언 트레블 멤버였던 마이콘, 에토의 영입을 바라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마이콘을 영입하려고 했으나 인테르가 원하는 이적료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그를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에토의 레알 이적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마이콘은 아직 레알행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카카-마이콘의 트레이드설이 제법 설득력 있기 때문입니다. 레알이 마이콘을 영입할 수 있는 방법은 기존의 자금외에 카카를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카카는 레알의 마이콘 영입을 위한 '잉여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레알의 라이벌 클럽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가 지난해 여름 즐라탄 영입을 위해 에토를 내주면서 4000만 유로(약 624억원)까지 지출한 것과 똑같은 예 입니다. 그런데 즐라탄이 올해 여름 AC밀란으로 임대되면서 인테르의 마시모 모라티 구단주가 불만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모라티 구단주는 그것을 앙갚음하기 위해 카카 영입을 염두하고 있으며, 지역 라이벌 AC밀란에게 충격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카카의 인테르 진출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의문입니다. 이미 카카의 자리에는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스네이더르가 굳건히 버티는 상황이며, 베니테즈 감독의 4-2-3-1에서 카카-스네이더르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AC밀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카카에게도 인테르 이적은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카카의 인테르 진출설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레알과 인테르가 본인들이 의도하는 시나리오를 위해 그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3. AC밀란 이적 혹은 임대
카카가 AC밀란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될 시나리오는 인테르 진출에 비해 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호나우지뉴의 내년 1월 미국 진출이 가시화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입니다. 호나우지뉴와 카카는 서로의 포지션이 겹치며, 둘 사이의 공존은 브라질 대표팀과 2008/09시즌의 AC밀란을 통해 실패로 귀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AC밀란 입장에서도 카카가 인테르로 이적하는 시나리오를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지 팬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질 것이 분명합니다.
AC밀란의 문제점 중에 하나는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꾸준히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지난 시즌에는 레오나르두 체제에서 4-3-3을 구사하며 측면 공격의 비중을 강화했지만 올 시즌 알레그리 감독을 영입한 이후에는 4-3-1-2로 전환하면서 호나우지뉴-시도로프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번갈아 기용했습니다. 하지만 호나우지뉴는 여전히 기복이 심하며 자신의 역량을 최대화 시킬 수 있는 포스가 뒤떨어집니다. 지금까지의 정황상으로는 바르사 시절의 포스를 되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시도로프는 지난 시즌에 비해 폼이 떨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AC밀란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가장 유력한 해결책은 카카를 레알에서 데려오는 것입니다. 물론 카카는 레알에서의 부침 때문에 과거 AC밀란 시절의 포스를 내뿜을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카카에게 있어 AC밀란은 친정팀이고 자신을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날 수 있게 했던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호나우지뉴가 내년 1월 팀을 떠난다는 전제하에서, 레알에 비해 주전 경쟁을 크게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릎 부상에서 복귀하여 레알에 그대로 잔류하면 외질 및 스리 볼란치와 경쟁해야 하는 버거운 상황에 놓이지만, AC밀란은 카카-호나우지뉴에 필적할 공격형 미드필더가 없는데다 시도로프는 원래 왼쪽 인사이드 미드필더 자원입니다. 카카를 다시 데려오기에는 재정적인 문제가 걸림돌이지만, 과거의 셉첸코(디나모 키예프) 사례처럼 임대를 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4. 그 외, 첼시-맨시티-상파울루
카카의 레알 잔류, 세리에A 복귀에 비해서 첼시-맨시티-상파울루 진출은 다소 무게감이 떨어집니다. 첼시-맨시티는 카카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팀들이자 선수 본인에게 새로운 부담거리로 가중 될 수 있으며, 옛 친정팀 상파울루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성급한 시나리오입니다. 또한 맨시티는 아데바요르가 벤치로 밀려날 정도로 주전 경쟁이 치열하며 야야 투레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만치니 감독이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를 두지 않는 4-3-3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카의 이적은 현실적이지 않아보입니다.
다만 첼시 같은 경우, 카카를 세계 최고의 선수로 키웠던 안첼로티 감독이 지휘하는 팀 입니다. 안첼로티 감독은 카카의 재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그의 활용을 강화하기 위해 최적의 포지션에 배치할 수 있는 지도력이 있습니다. 또한 첼시가 램퍼드 이외에는 미드필더진에서 창의력을 불어넣을 옵션이 없다는 점에서 카카 영입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첼시는 AC밀란에서 뛰던 카카를 데려오기 위해 레알과 영입 경쟁을 펼쳤던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인지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카카는 그때에 비해 내림세에 빠졌기 때문에, 과연 첼시가 절실하게 영입을 원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카카 영입 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영건 육성에 주력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