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시즌 유럽 축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스페인 축구의 양대산맥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레알은 '스페셜원' 조세 무리뉴 감독을 영입하면서 두 시즌 연속 무관에서 벗어나겠다는 각오를 세웠고, 바르사는 2008/09시즌 유로피언 트레블의 영광을 다시 누리고 싶을 것입니다.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도 선수영입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으며 우승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만큼, 그 결실이 어떤 형태로 귀결될지 주목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 할 것은, 레알과 바르사의 에이스이자 '세계 최고의 선수' 자리를 다투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의 자존심 대결입니다. 에이스의 숙명은 팀의 성적과 일치하기 때문에, 레알과 바르사의 행보는 두 선수가 직면한 상황을 그대로 표현합니다. 또한 두 선수의 활약 여부에 따라 레알과 바르사의 성적이 결정되고 팀의 경기력까지 좌우되는 영향력을 지닙니다. 그 대결에서 승리하는 쪽은 세계 최고의 선수 자리를 지키거나(메시) 다시 올라서는(호날두) 계기를 마련할 것입니다. 물론 프리메라리가-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지난 두 시즌 동안에는 메시의 우세였습니다. 2008/09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당시 맨유 소속이었던 호날두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했고 팀의 두번째 골을 넣으며 우승을 견인했던 활약상이 세계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하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호날두가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했고, 시즌 중반 부상 당했음을 감안하더라도 메시가 완벽한 우세를 점했습니다. 비록 바르사의 챔피언스리그 2연패를 이끌지 못했지만, 프리메라리가-챔피언스리그 동시 득점왕에 오르며 여전히 세계 최고임을 입증했습니다. 지난 4월 10일 레알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호날두와의 맞대결에서 또 다시 승리했던 것을 간과할 수 없죠.
하지만 올 시즌에는 두 선수의 위치가 뒤바뀔 조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즌 스타트는 메시가 호날두보다 조금 잘 끊었다고 볼 수 있지만, 올 시즌에 보여줄 것이 많은 선수는 호날두일 가능성이 큽니다. 메시의 행보가 올 시즌 만큼은 장밋빛이 아니라는 점, 호날두는 무리뉴 감독의 존재감에 힘입어 자신의 스타일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 두 선수 맞대결의 판도가 뒤바뀌는 배경으로 작용합니다. 물론 호날두가 변신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지만, 그 흐름이 매끄럽게 진행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레알과 무리뉴 감독의 공생적인 이득으로 이어질 것이며 바르사에게 반갑지 않은 시나리오입니다.
무엇보다 메시의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그동안 바르사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통해 수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엄청난 체력을 소모했고 특유의 번뜩이는 기량을 발휘할 기력이 무뎌졌습니다. 특히 올 시즌에는 남아공 월드컵 출전 및 아시아 투어 때문에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한국 투어때는 프로답지 못한 인터뷰 자세 때문에 국내팬들에게 성의없다는 질타를 받았지만, 몸이 피로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흐름이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팀과 소속팀 일정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을리가 없습니다.
물론 메시는 지난 시즌 초반 행보가 다소 무뎠습니다.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을 비롯해서 2008/09시즌에 수많은 경기에 출전했던 피로여파가 지난 시즌 초반에도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클럽 월드컵 이후 골을 몰아치는 불꽃같은 파괴력을 발휘하며 유럽 축구에 몸담는 선수 중에서 가장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그 같은 폼을 다시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피로가 계속 누적되고 있기 때문에 지난 시즌 만큼의 파괴력을 뽐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특히 지난 8일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일원으로 일본 원정에 90분 풀타임 출전한 것은 결과적으로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최소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이동, 시차 적응 때문에 몸이 더 무거워졌기 때문이며 일본전에서도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지 못했습니다.
바르사에서의 경기력을 놓고 보면, 아직까지 메시의 이상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피로한 몸을 이겨내고 여전히 꾸준한 골 생산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 시즌 6경기에서 5골 2도움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골을 넣지 못했던 지난달 11일 헤르쿨레스전과 29일 루빈 카잔전에서 상대의 집중 견제를 이겨내지 못해 부진했던 점, 지난 3일 마요르카전에서는 골을 넣었으나 경기 내내 상대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올 시즌에 기복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대팀 입장에서는 바르사전 승리를 위해 자신을 악착같이 견제해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바르사의 전술이 선 수비-후 역습을 노리는 상대팀들에게 완전히 읽혔다는 점은 메시에게 부담을 안겨줍니다.
반면 호날두는 올 시즌이 자신의 경기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시기입니다. 그동안 골에 엄청난 집착을 발휘했지만, 그런 폼에 비해 팀 플레이에 주력하는 이타적인 모습이 두드러지지 못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맨유와 레알은 호날두의 골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했고 특히 레알 같은 경우에는 지난 시즌까지 그런 패턴 이었습니다. 하지만 레알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한 무리뉴 감독은 철저한 팀 플레이에 의한 득점 과정을 좋아합니다. 어느 선수든 팀을 위해 싸우고 각자의 역할에 책임감을 더하면서 승리를 이끌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호날두의 컨셉이 무리뉴 감독의 축구 철학과 접점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호날두는 올 시즌 8경기에서 4골을 기록했고, 지난 3일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전에서 2골을 넣기 전까지 7경기에서 2골에 그쳤습니다. 지난 시즌 초반 7경기에서 9골을 작렬했던 것과 비교하면 골 숫자가 줄었습니다. 그렇다고 부진한 것은 아닙니다. 레알의 득점력이 전체적으로 떨어졌고, 알론소-라스-케디라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동시에 투입되면서 호날두가 팀 플레이를 비롯해서 2선 가담까지 요구받게 됐습니다. 2선에서 팀의 공격을 직접 전개하면서 동료 선수들과 연계 플레이를 노리는 공격 패턴이 아직까지는 익지 못했지만, 무리뉴 감독의 전술에 적응하는 의지가 뚜렷한 것은 분명합니다. 지난 3일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전 2골은 화려한 득점력을 되찾는 계기가 됐습니다.
만약 호날두가 꾸준히 자기 몫을 해내면서 더 이상 이기적인 공격 패턴만을 고집하는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팀 플레이로 입증하면, 자신의 장점이 늘어나게 됩니다.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 무기를 추가로 확보한 것은 앞으로 그라운드에서 보여줄 능력이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경기력 업그레이드의 계기로 이어집니다.
그 시점이 챔피언스리그 16강 토너먼트 이후라면 레알은 16강 징크스에서 벗어날 명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성공하면 호날두의 거침없는 질주는 계속 될 것이며 메시와의 맞대결에서 대등한 위치에 도달하거나 혹은 넘어설 수 있는 자신감을 키우게 됩니다. 호날두 입장에서도 세계 최고의 선수 자리를 되찾으려면 메시를 이겨야하기 때문에 경기력 변화를 원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메시가 세계 최고의 선수였으나, 어쩌면 올 시즌은 호날두가 메시를 제압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