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일 한국과 라이벌 대결을 펼칠 일본 축구 대표팀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위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0 완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단순한 운에 의해 이긴것이 아닌 철저한 준비와 경기력 업그레이드에 의한 '당연한 결과' 였습니다. 이탈리아 출신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은 일본 대표팀 사령탑 데뷔전에서 강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자케로니 재팬'의 부흥을 예고했습니다.
일본은 8일 저녁 8시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승리했습니다. 전반 18분 하세베 마코토가 기습적으로 날렸던 중거리슛이 아르헨티나 골키퍼 세르히오 로메로가 선방했지만, 오카자키 신지가 문전 쇄도 후 골키퍼와 단독으로 맞선 상황에서 오른발 세컨슛을 날리며 결승골을 넣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풀타임을 소화한 리오넬 메시를 주축으로 파상공세를 펼쳤지만 경기 내내 골운이 따르지 않은데다 패스미스까지 속출한 끝에 일본에 패했습니다. A매치에서 아시아 팀을 상대로 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로써, 일본은 남아공 월드컵 이후에 치러진 A매치 3경기(파라과이-과테말라-아르헨티나)를 모두 이겼습니다. 오는 12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조광래호와 맞붙어 올해 한국전 2연패를 복수하겠다는 각오입니다. 한국은 지난 2월과 5월 일본 원정에서 각각 3-1, 2-0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번에는 '아르헨티나전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일본과 상대한다는 점에서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펼치게 됐습니다.
일본 축구의 업그레이드 비결은 '조직력 강화'
일본과 아르헨티나의 평가전이 눈길을 끌었던 이유는 세 가지 였습니다. 첫째는 일본이 지난 6월 남아공 월드컵 한국전에서 4-1 대승을 거둔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비롯해서 '세계 최고의 선수' 메시와 대결한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한국이 오는 12일 일본과 대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광래 감독이 일본의 전력을 탐색하기 위해 사이타마 스타디움을 방문했고 국내 축구팬들도 이 경기를 관심있게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자케로니 감독을 영입한 일본 축구의 현재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단순 이상의 무게감이 있었습니다.
우선, 일본은 아르헨티나전에서 4-3-3을 구사했습니다. 가와시마가 골키퍼, 쿠리하라-나가토모-콘노-우치다가 포백, 엔도-하세베가 수비형 미드필더, 카가와가 공격형 미드필더, 오카자키-모리모토-혼다가 스리톱 공격수로 뛰었습니다. 후반전에는 4-2-3-1을 실험하면서 3의 자리를 오카자키-혼다-카가와 라인으로 변형했고, 19분에 모리모토를 빼고 마에다를 원톱으로 올렸습니다. 지난해 J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던 마에다는 골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상대 배후 공간에서 볼을 터치하여 위협적인 슈팅을 날리는 인상깊은 공격력을 과시했습니다.
평가전을 치른 일본과 아르헨티나의 행보는 서로 대조적 이었습니다. 일본은 지난 4일부터 소집훈련에 돌입하면서 자케로니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아르헨티나전을 위해 만전을 기했습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수많은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시차 적응 및 장시간 이동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메시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은 그동안 유럽 축구에서 수많은 경기에 출전했고 남아공 월드컵 출전에 따른 휴식 부족까지 시달렸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전에서 선수들의 몸이 전체적으로 무거웠습니다. 월드컵에서 한국을 4-1로 꺾었고, 지난달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4-1로 이겼던 팀이 맞는지 의심 될 정도로 컨디션 부터 좋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승리를 아르헨티나가 그저 못했다고 보기에는 무리입니다. 아무리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몸 상태가 안좋더라도 객관적인 전력 및 선수 개개인의 실력은 일본이 열세입니다. 그럼에도 축구는 팀 스포츠입니다. 개인보다는 팀이 중시되는 것이 축구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조직력 강화'가 있었습니다. 공수 양면에 걸쳐 서로 하나 된 호흡을 과시하며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조직적인 축구가 경기 내내 유기적인 흐름을 더했습니다.
일본의 아르헨티나전 승리는 철저한 조직력에 의한 승리였습니다.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가 서로 폭을 좁히면서 패스 플레이로 경기 분위기를 주도하고 지역 방어를 강화하는 '콤팩트 사커'를 펼쳤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전임 감독인 오카다 체제에서 지구력를 강화하는 훈련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강력한 체력과 부지런한 움직임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공격 패턴을 줄기차게 진행했습니다. 여기에 강력한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던 아르헨티나를 거세게 몰아 붙였습니다.
그런 일본이 경기 초반부터 거침없이 공격을 몰아친 것은 아르헨티나의 컨디션 약점을 노리겠다는 심산 이었습니다. 초반에 경기 흐름에서 확실하게 우세를 점하는 기선 제압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 일본의 의도였죠. 그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공격진에 있던 오카자키-모리모토-카가와-혼다가 서로 포지션을 이동하며 상대 배후 공간을 파고들고, 엔도-하세베-우치다가 2선에서 전진적인 움직임을 취하여 공격 옵션들의 활동 부담을 덜며 아르헨티나의 공격 의지를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반 18분 하세베의 중거리슛이 상대 골키퍼 몸에 맞고 오카자키의 세컨슛에 이은 결승골로 이어졌습니다. 일본의 아르헨티나전 승리 과정에서 '철저한 준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이후 일본은 수비를 강화하면서 상대에 실점하지 않는 타이트한 경기 운영을 과시했습니다. 아르헨티나가 중원에서 점유율을 회복한 것에 개의치 않고 상대 스리톱의 발을 꽁꽁 묶었죠. 미드필더들이 포백과 간격을 좁히면서 이중, 삼중으로 상대 공격 옵션을 애워쌓았습니다. 그래서 D. 밀리토(디에고 밀리토)는 나가토모-콘노에게 일방적으로 봉쇄당하면서 전반 32분 조기교체되는 굴욕을 당했고, 그라운드를 왕성하게 누비는 테베스의 기동력은 일본의 끈질긴 커버 플레이에 의해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나마 메시가 인상적인 돌파와 감각적인 발재간을 뽐냈지만 일본의 '질식 수비'를 뚫기에는 혼자서 역부족 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이 1-0 이후 공격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 이후에는 카가와 중심의 공격 패턴으로 상대 배후 공간을 노렸습니다. 오카자키-모리모토-혼다가 최전방에서 활발한 기동력을 과시하면서 상대 수비를 뒤흔들며 카가와가 매끄럽게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는 흐름을 조성했습니다. 그런 카가와는 전반 38분 문전 중앙에서 공을 몰면서 데미첼리스를 직접 뚫는 개인기를 연출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 수비를 자신쪽으로 유인하며 동료 선수들의 공격 침투를 도왔습니다. 그 결과는 아르헨티나 중원이 뚫리고 수비라인이 위기를 맞이하는 상황으로 이어져 일본이 추가골 기회까지 노릴 수 있었습니다.
한국전 경계대상 1호로 지목된 카가와의 공격력은 명불허전 이었습니다. 후반 6분 오카자키의 오른쪽 얼리 크로스를 문전 중앙에서 논스톱 오른발 슛이 노골이 되었지만, 상대 견제에 아랑곳않고 흔들림없이 빠른 타이밍에 의한 슈팅을 날린 장면은 그의 공격력에서 과감함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또한 패스의 강약을 조절하며 상대 수비의 빈 공간쪽을 노리는 공격을 펼치면서 일본의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자신이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일본 공격 옵션들끼리 활발히 패스를 주고 받을 수 있었죠. 특히 혼다는 카가와와 간격을 좁히면서 직선 및 곡선 형태의 패스를 연결하며 자신의 약점이었던 공격 적극성 부족을 만회하려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아울러, 일본은 아르헨티나전 승리를 계기로 축구 스타일이 업그레이드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일본 축구는 그동안 패스와 점유율을 강화하는 아기자기한 축구를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고질적인 피지컬 부족 때문에 상대의 강한 압박을 받으면 여지없이 무너지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남아공 월드컵에서 수비 조직력을 강화하는 탄탄한 경기 운영으로 재미를 봤고, 아르헨티나전에서는 공격 과정에서도 조직력에 눈을 뜨면서 경기력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일본 축구의 기존 장점이었던 기술력에 조직력이라는 새로운 무기가 생겼고,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정신력까지 강해졌습니다. 여기에 자케로니 감독의 지도력까지 더해지면 내년 1월 아시안컵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듭날지 모릅니다.
-일본vs아르헨티나, 출전선수 명단-
일본(4-3-3) : 가와시마(후반 39분 이시카와)/쿠리하라-나가토모-콘노-우치다/엔도(후반 22분 아베)-카가와(후반 31분 나카무라)-하세베/오카자키(후반 22분 세키구치)-모리모토(후반 19분 마에다)-혼다
아르헨티나(4-3-3) : 로메로/에인세-G. 밀리토-데미첼리스-부르디소(후반 34분 라베찌)/캄비아소(전반 44분 볼라티, 후반 40분 디 마리아)-달레산드로(후반 15분 파스토레)-마스체라노/테베스-D. 밀리토(전반 32분 이과인)-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