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제라드를 통해 본 리버풀의 16위 부진 원인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빅4 재진입을 노렸던 리버풀의 행보가 순탄치 않습니다. 지난 시즌 리그 7위 추락을 딛고 명예회복을 위해 시즌 초반부터 사력을 다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실상은 1승3무2패로 20위 중에서 16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지난달 19일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전에서 2-3으로 패하면서 13위에서 16위로 내려갔고, 25일 선덜랜드전에서는 2-2로 비기면서 두 경기 연속 16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리버풀의 부진은 칼링컵과 유로파리그에서도 이어지는 현실입니다. 지난달 23일 홈 구장 안필드에서 치러진 칼링컵 3라운드(32강)에서 리그2(4부리그) 소속의 노스햄프턴과 2-2로 비겼으나 승부차기 끝에 패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지난 1일 유로파리그 위트레흐트 원정에서는 답답한 공격력을 일관한 끝에 0-0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지난달 16일 유로파리그 슈테아우아전에서 4-1 대승을 거둔 이후 4경기 연속 승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로이 호지슨 감독의 경질설이 대두된 것은 리버풀의 행보가 얼마만큼 불안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최근 현지 언론이 리버풀 인수를 희망하는 단체가 마틴 오닐 전 애스턴 빌라 감독을 리버풀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눈여겨봤다고 보도하면서 호지슨 감독의 앞날 거취가 불투명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호지슨 감독이 리버풀 사령탑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질설이 이를 수 있지만, 프리미어리그의 감독 교체가 빈번하다는 것을 상기하면 현실적으로 경질이 가능합니다. 그 소문이 불거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리버풀의 성적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프리미어리그에서의 부진이 심각합니다. 6경기에서 1승3무2패에 16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강팀 답지 못한 행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승을 올렸던 지난 8월 29일 웨스트 브로미치전에서도 비효율적인 공격력에 시달린데다 상대의 빠른 역습에 고전한 끝에 페르난도 토레스의 결승골로 힘겹게 1-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매끄럽게 경기를 풀어간 경기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은 지금의 부진이 일시적이지 않음을 입증합니다.

리버풀의 가장 큰 문제는 호지슨 감독의 축구 철학이 베니테즈 체제에 길들여진 선수들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호지슨 감독은 경기를 치를수록 롱볼에 의존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베니테즈 전 감독 시절 다채로운 패스 시도를 위해 낮은 볼을 주고 받았던 선수들이 높게 공을 올려야 하는 현실이죠. 그래서 패스가 끊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면서 유기적인 공격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팀의 성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한 번의 결정적인 롱볼로 골 기회를 노리겠다는 호지슨 감독의 의중으로 볼 수 있지만, 문제는 베니테즈 체제에 비해 공격력이 퇴보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리버풀의 롱볼 전환은 '에이스' 스티븐 제라드의 존재감이 축소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제라드는 베니테즈 체제에서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면서 토레스와 함께 '제토라인'을 형성하며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제라드는 호지슨 체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혹은 4-4-2의 중앙 미드필더로 전환하더니 결정적인 골 기회를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포지션 때문에 리버풀 진영 및 하프라인에서 활동 반경을 잡다보니 상대 진영에서 패스를 전개하기가 어렵죠. 상대 진영으로 넘어들면 팀의 공수 밸런스가 깨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원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다고 제라드가 지난 시즌보다 부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난 시즌보다 몸이 가벼우며 경기력이 더 깔끔해졌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폭행 사건 및 재판 후유증(무죄), 잦은 사타구니 부상, 상대팀의 집중견제 때문에 어렵게 경기를 풀어갔지만 올 시즌에는 3가지의 불안 요소가 없어졌습니다. 전방보다는 후방에 무게감을 두기 때문에 상대팀의 집중견제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분명하죠. 하지만 그가 있어야 할 곳은 공격형 미드필더 입니다. 리버풀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메이렐레스-조 콜 같은 이적생들은 기존 선수들과의 호흡이 맞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여파는 공격 옵션끼리의 부조화로 이어져 토레스의 고립을 부추기게 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롱볼 빈도가 점점 높아졌다는 점은 매끄럽지 못한 공격 전개를 키우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제라드 중심의 패스 전개가 상대팀에 읽힌 것은 분명하지만, 제라드의 폼은 이미 정상적으로 돌아왔습니다. 리버풀은 수비보다는 공격에서 문제점이 크기 때문에 토레스의 부진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그 해답은 제라드의 전방 배치로 볼 수 있지만, 한 가지 고민은 팀에 쓸만한 수비형 미드필더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루카스-폴센-메이렐레스 같은 또 다른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있지만, 루카스의 기량은 정체를 거듭중이며 폴센은 전 소속팀 유벤투스에서 시달렸던 슬럼프를 리버풀에서 이겨내는 모습이 뚜렷하지 못합니다.

호지슨 감독은 탄탄한 수비력을 중요시하는 지도자이기 때문에 확실한 수비형 미드필더 자원을 원할 것입니다. 제라드를 후방으로 내린 이유가 이 때문이죠. 하지만 리버풀에게 더 필요한 것은 2008/09시즌 알론소-마스체라노 콤비에 버금가거나 뛰어넘을 수 있는 중원 조합 입니다. 아무리 루카스-폴센의 폼이 좋지 못하더라도 조합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길렀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호지슨 감독은 제라드의 후방 배치를 선택했고 그 여파는 리버풀의 공격력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리버풀 미드필더 중에서 제라드와 비슷한 레벨을 자랑하는 선수가 없는 특성은 아쉽지만,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제라드의 장점을 팀의 강점으로 다듬지 못하는 호지슨 감독의 지도력입니다.

물론 호지슨 감독 입장에서도 미드필더들의 조직력 문제는 변명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맨유전에 선발 출전했던 5명의 미드필더 중에서 4명은 최근 1년 사이에 안필드로 입성했던 선수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막시는 지난 1월 이적시장, 조 콜-폴센-메이렐레스는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 보강된 선수들입니다. 맨유전에 교체 출전했던 요바노비치 또한 여름 이적시장에서 영입된 선수입니다. 이들의 특성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하나된 호흡'을 선보이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제라드의 후방 배치 및 롱볼 전환은 경기력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습니다.

리버풀의 문제점은 호지슨 감독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토레스의 부진, 콘체스키 부상에 따른 마땅한 왼쪽 풀백 부족, 제라드를 제외한 주축 미드필더들의 파괴력이 약하거나 단점이 극명한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팀의 재정 상태와 맞물려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현실입니다.

근본적으로는 구단의 재정난 때문에 대형 선수 영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부채 해결에 결국 실패하여 스코틀랜드 왕립 은행(RBS)에 의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 주축 선수를 다른 팀에 팔아야 하는 신세에 놓입니다. 하지만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손꼽히는 명문 구단이기 때문에 그런 어려운 현실에 무너져서는 안됩니다. 적어도 경기력에서는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그 열쇠는 호지슨 감독이 쥐고 있으며 제라드를 통해 '반전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