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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카카, 레알 마드리드의 먹튀로 전락하나?

 

'하얀 펠레' 카카(28, 레알 마드리드. 이하 레알)는 2007년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났습니다. 2006/07시즌 당시 소속팀이었던 AC밀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소속팀과 브라질 대표팀을 통해 일취월장한 공격력을 발휘하며 세계 축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당시 카카의 나이는 25세였기 때문에 세계 축구는 '카카의 시대'가 계속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카카는 2008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009년 리오넬 메시에게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타이틀을 내주면서 조금씩 미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AC밀란이 2007/08시즌 세리에A 5위에 그쳐 2008/0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고 에이스였던 카카에게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당시 AC밀란은 카카 원맨팀 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카카는 팀의 성적 부진 때문에 무리하게 출전하면서 거듭된 잔부상에 시달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카카는 2007/08시즌과 2008/09시즌에 각각 30경기 15골 10도움, 31경기 16골 9도움을 기록하며 세리에A 진출 이후 많은 골을 넣었고 이전처럼 화려한 스탯을 쌓았습니다. 문제는 그때의 부상이 자신의 끝없는 추락을 부추긴 '스포츠 헤르니아(탈장)'로 이어졌습니다.

카카는 지난해 여름 AC밀란에서 레알로 소속팀을 옮기면서 6450만 유로(약 981억원)의 엄청난 이적료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이적료'였던 지네딘 지단의 7300만 유로(약 1321억원, 2001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액수였습니다.(카카의 레알행이 이루어진 며칠 뒤에 호날두가 9350만 유로로 레알로 이적하면서 세계 최고의 이적료 경신) 2007/08시즌과 2008/09시즌에 부상 여파로 흔들렸지만 호날두-메시와 더불어 '세계 3대 축구 천재'로 불렸던 화려한 네임벨류에 힘입어 엄청난 이적료를 기록했습니다. 플로렌티노 페레즈 단장 부임으로 '갈락티코 2기' 시대를 열으며 대형 선수 영입에 많은 돈을 투자한 레알의 니즈에 적합했던 선수였기 때문에 이적료가 많을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카카는 레알 이적 이후 걷잡을 수 없는 내림세에 빠졌습니다. 세리에A 시절에 괴롭혔던 잔부상 여파로 고전하더니 결국 스포츠 헤르니아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근력과 유연성이 떨어지면서 자신의 장기였던 순발력이 무뎌졌고, 그 여파는 세리에A 시절의 번뜩이는 움직임을 잃는 슬럼프로 이어졌습니다. AC밀란 시절에는 하체의 순발력을 살리며 전방으로 돌진하여 골을 넣거나 동료 선수에게 결정적인 골 기회를 연출하는 장기를 적극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스포츠 헤르니아에 의해 더 이상 순발력이 살아나지 못하면서 예전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게 됐죠. 돌파 뿐만 아니라 턴 동작에 어려움을 겪으며 개인기와 볼 키핑에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카카는 레알 팬들에게 야유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고 지난 3월 초 세비야전에서는 평점 0점의 굴욕까지 당했습니다. 갈락티코 1기 시절 팀 공격을 지휘했던 지단의 발자취를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죠. 물론 지단도 2001년 유벤투스에서 레알로 이적한 이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스타일에 적응하기까지 1시즌 동안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카카에게 위안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카의 부진은 지단과는 다른 성격 이었습니다. 스포츠 헤르니아 때문에 경기에 뛸 수 있는 몸 상태가 좋지 못했을 뿐더러 그것 때문에 예전 만큼의 쏜살같은 기력을 보여주지 못했죠.

문제는 카카의 행보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계기로 더 나빠졌습니다. 브라질 대표팀은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후보였기 때문에 카카 입장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도약할 수 았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카카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몸이 무거운 모습을 보인끝에 '많은 축구팬들이 기대했던' AC밀란 시절의 포스를 재현하지 못했고 결국 브라질은 8강에서 네덜란드에게 탈락했습니다. 그런 카카는 네덜란드전에서 니헬 데 용의 철저한 견제를 이겨내지 못하면서 무기력한 경기력을 일관했고 남아공 월드컵 무대에서 쓸쓸히 퇴장했죠. 그 이후에는 무릎 부상을 숨기고 월드컵에 참가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축구팬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결국 카카는 지난 8월 왼쪽 무릎 반월판 수술로 3~4개월 동안 결장하게 됐습니다. 레알의 올 시즌 전반기 일정을 포기한 셈이죠. 더욱이 올 시즌은 '스페셜 원' 조세 무리뉴 감독 체제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무리뉴 감독은 카카를 신뢰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데쿠(당시 FC 포르투)-프랭크 램퍼드(첼시)-베슬러이 스네이더르(인터 밀란)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유연한 공격 조율과 날카로운 패싱력을 앞세워 공격 전술을 세우는 것이 무리뉴 감독의 특징이었기 때문이죠. 비록 카카는 AC밀란 시절보다 부침에 시달렸지만 여전히 세계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네임벨류가 있었기 때문에, 무리뉴 감독에 의해 자신감을 되찾아 예전의 파괴력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무리뉴 감독의 선택은 카카가 아닌 '이적생' 메수트 외질 이었습니다. 외질 영입 당시에는 카카가 무릎 수술을 마친 상황이었고 3~4개월 동안 결장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대체 자원을 영입할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무리뉴 감독은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외질을 기용하며 올 시즌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외질은 레알로 이적한지 얼마되지 않아 다이나믹한 공격력으로 갈락티코의 공격력을 지휘하는 '미친 존재감'을 남기며 레알팬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습니다. 물론 외질의 기량은 남아공 월드컵 활약상을 통해 입증되었지만 레알로 이적한지 얼마되지 않아 적응기 없이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를줄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외질의 오름세는 곧 카카의 위기를 뜻합니다. 두 선수의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이기 때문에 서로의 위치가 겹칩니다. 끝없는 내림세에 시달렸던 카카는 부상에서 돌아오면 주전부터 되찾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불과 3년 전까지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고 지난해 여름 엄청난 이적료를 기록하며 레알로 팀을 옮겼던 화려함과 정반대 된 행보를 걷게 될 가능성이 크며 어느 정도는 그 단계를 밟고 말았습니다. 또한 부상에서 돌아오더라도 정상적인 컨디션을 되찾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외질이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카카-호날두-메시로 이어진 세계 3대 축구 천재를 위협할 잠재력을 과시했음을 상기하면, 카카가 외질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시나리오가 현실적으로 벌어질 수 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레알이 카카의 기량 회복을 '절실히' 기다리는 입장이 아니라는 겁니다. 레알은 매 시즌마다 우승을 꿈꾸면서 UEFA 챔피언스리그 제패가 절실한 입장이기 때문에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감독들이 경질 되었고, 주전 경쟁에서 밀렸던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떠나는 빈도가 잦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카카는 최근 더글라스 마이콘(인터 밀란)과의 트레이드설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무리뉴 감독과 레알이 마이콘의 영입을 절실히 바라고 있기 때문에 카카가 현지 언론에 의해 '잉여 자원'으로 분류되었죠.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하면, 카카는 레알의 먹튀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645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이적료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물론 현 시점에서 먹튀라고 단정짓기에는 이른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카카의 행보가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은 냉정히 말해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듭된 내림세에 빠진 상태에서 무릎 부상으로 3~4개월 동안 결장했고, 자신의 자리를 외질이 성공적으로 대체하면서 레알의 에이스로 자리를 잡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날 상황이 위태로운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카카가 이대로 쓰러지기에는 2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아까운 것이 사실입니다. 브라질 대표팀 에이스 출신의 호나우지뉴가 20대 후반의 나이에 슬럼프에 빠져 많은 축구팬들을 안타깝게 했던 행보가 카카에게 되풀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죠. 20대 후반이라면 더욱 훌륭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고 노련한 경기 운영을 기를 수 있습니다. 순발력 위주의 공격 패턴을 앞세웠던 카카의 경기력 변신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과거만큼의 번뜩이는 활약상을 마음껏 펼치는데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의 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변화하는 모습이 불가피 합니다. 부상에서 복귀하게 될 카카는 슬럼프 탈출과 먹튀 전락의 두 가지 상반된 갈림길에 놓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