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중인 곤살로 이과인(23)은 남아공 월드컵 한국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했던 선수로 유명합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주전 공격수로 출전하면서 국제적인 인지도를 쌓았죠. 선수층이 두꺼운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특수성을 미루어보면, 대표팀 발탁 후 데뷔전을 치른지 8개월 만에 월드컵에서 자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활약한 것은 놀라운 성과입니다.
그 이유는 이과인이 유독 대표팀 발탁과 인연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 1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기 전까지 아르헨티나 클럽 리버 플레이트에서 두각을 떨쳤고, 2008/09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공격수로 확고하게 자리잡았음에도 대표팀 발탁 및 출전할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아르헨티나가 메시-아궤로-라베찌-리켈메 등을 앞세워 금메달을 따냈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이과인은 소집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2009년에는 아르헨티나 여론에서 "이과인을 대표팀에 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표팀에서는 늘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2009년 하반기 남아공 월드컵 남미 예선 탈락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과인을 차출했고, 그런 이과인은 그 해 10월 11일 페루전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조국의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에 기여했고 그때의 활약을 발판으로 대표팀에서의 입지를 키웠습니다. 2009년 10월 무렵 이전에는 대표팀과 인연이 없는 선수였지만 이제는 아르헨티나 공격진에 없어선 안 될 선수가 됐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거의 매 경기마다 꾸준히 골을 넣었던 내공이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빛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아르헨티나는 선수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과인의 대표팀 발탁 제외는 큰 이슈를 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과인이 이중 국적자(프랑스-아르헨티나) 출신이고, 아르헨티나 국적 취득이 늦었다는 이유로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다고 제기합니다.(참고로 이과인은 2007년 1월 프랑스 대표팀 발탁을 거부하면서 아르헨티나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하지만 이과인이 그동안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았던 '근본적 이유'는 마라도나 전 감독이 선호했던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라도나 전 감독은 이과인보다는 메시-아궤로-테베스 같은 테크니션을 강점으로 삼는 공격수들을 원했고 그들을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했습니다. 그래서 이과인-밀리토 같은 전형적인 골잡이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마라도나 감독이 메시-아궤로-테베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세 선수를 최전방에 고정시켜 놓는 패턴을 요구했지만 메시-아궤로는 2선 및 측면에서의 플레이를 즐기는 성향이기 때문에 자신의 장점을 맘껏 살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경기력 부진에 시달리며 한때 월드컵 남미 예선 탈락 위기에 몰렸습니다. 이과인이 대표팀에 발탁되었던 이유는 아르헨티나의 골 문제를 해결지을 수 있는 옵션이었고 페루전에서 그 진가를 충분히 발휘했습니다. 마라도나 감독이 원했던 선수는 아니었지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반드시 필요했던 선수였던 겁니다.
이과인에 대한 예를 들었던 이유는, 한국에서 이과인과 똑같지 않아도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는 선수가 한 명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유병수(22, 인천) 입니다. 유병수는 지난해 6월 2일 국가 대표팀의 오만전에 출전했으나, 대표팀이 교체 선수 한도를 FIFA 규정에서 초과하는 바람에 공식 A매치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병수는 대표팀 소집 경력이 단 한 차례만 있었을 뿐 공식적인 A매치 출전 경험이 없는 선수가 됐습니다. 그런데 유병수는 K리그의 국내 공격수 중에서 많은 골을 넣는 선수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유병수는 지난 17일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명단 포함에 실패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1세 이하 선수들을 위주로 발탁하겠다는 원칙을 이전부터 공개했고, 지난해 한국의 U-20 월드컵 8강 진출 주역이었던 박희성과 와일드카드 자격인 박주영을 발탁하면서 22세의 유병수가 제외 됐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23세의 신광훈, 22세의 김주영을 발탁하면서 21세 이하 선수를 뽑겠다는 원칙에서 물러섰지만 '금메달을 위해' 공격력보다는 수비력 강화가 불가피 했습니다.
결국, 유병수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출전 실패가 결정타가 되어 대표팀과 인연 없는 선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올 시즌 K리그 득점 2위(19경기 13골)의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국가 대표팀은 아니더라도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할 역량이 충분함을 과시했지만, 홍명보 감독은 아시안게임을 병역혜택보다는 런던 올림픽에 대비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유병수보다는 박주영에게 병역 혜택이 더 절실했고, 박희성은 홍명보 감독이 런던 올림픽까지 안고 가야 할 자원 이었습니다. 결국 유병수는 박주영-박희성 사이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끼인 끝에 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하는 악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또한 유병수가 허정무-조광래 감독에 의해 대표팀에서 제외 된 것은 감독의 구미에 맞는 선수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허정무 감독은 공격수들에게 적극적인 움직임 및 연계 플레이를 주문하며 공격의 활발함을 주문했고, 조광래 감독은 선 굵은 플레이보다는 패스의 세밀함과 빠른 기동력을 앞세운 기술적인 공격 패턴을 원했습니다. 박스 안에서의 절묘한 위치선정 및 민첩한 움직임으로 상대 골망을 흔드는 전형적인 골잡이 성향의 유병수는 두 감독 철학에 맞는 선수가 아닙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공격수 숫자가 적은 것은 내가 원하는 전방 공격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공격수를 찾고 있는데 아직 마땅한 선수가 없다"며 대표팀에 적합한 공격수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공격수 명단에 박주영과 석현준만 발탁했고 이란전에서 이청용을 투톱 공격수로 끌어올리는 전술을 구상했을 정도였죠. 물론 유병수는 조광래 감독이 원하는 공격수는 아닐지라도 대표팀에 부족한 '골' 문제를 해결할 재목임에는 분명합니다. 한국 축구는 꾸준히 골을 넣어줄 골잡이가 부족했었고, 공격수의 가장 기초적인 임무는 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병수는 언젠가 대표팀에 발탁 될 것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K리그에서 두드러진 골 결정력을 과시한 것 자체만으로도 대표팀에 발탁 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 아쉬움이 있었지만 아직 유병수의 나이는 22세이며 앞으로 많은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대표팀과 거리감이 있었으나 끝내 아르헨티나의 주전 공격수로 도약한 이과인을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유병수가 좌절하기에는 아직 이르며, 지금처럼 착실히 성장하면 대표팀에서 필요로 하게 될 날이 올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