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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밀리토, 과소평가 된 '세계 최고의 공격수'

 

"내 생각에 밀리토는 FIFA 발롱도르를 받을 것이다.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대단했고 결승전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감독은 지난 5일 해외 축구 사이트 <트라이벌 풋볼>을 통해 디에고 밀리토(31, 인터 밀란. 이하 인테르)가 2010 국제축구연맹(FIFA) 발롱도르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밀리토는 지난 시즌 인테르의 유로피언 트레블을 이끈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로서 세계 최고의 선수를 선정하는 FIFA 발롱도르를 수상할 후보 중에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기존의 FIFA 올해의 선수상과 발롱도르가 'FIFA 발롱도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되기 때문에, 밀리토가 FIFA 발롱도르를 수상할지 주목됩니다.

하지만 밀리토는 퍼거슨 감독의 생각과 달리 FIFA 발롱도르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지 않고 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거나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두각을 떨친 포를란-뮐러-비야-스네이더르-메시에 비해 네임벨류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네임벨류를 놓고 보면 밀리토 보다는 남아공 월드컵 최우수 선수(MVP)에 선정된 디에고 포를란, 스페인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다비드 비야, 유럽 무대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친 리오넬 메시가 유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밀리토는 지난달 26일 유럽축구연맹(UE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습니다. 여론에 과소평가 된 '세계 최고의 공격수' 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밀리토가 부족했던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었을 뿐

지난해 여름 이적시장을 뜨겁게 달군 이슈 중에 하나는 즐라탄-에토 맞트레이드 였습니다. 인테르의 에이스이자 골잡이였던 즐라탄이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로 떠나고 에토가 네라주리(인테르 애칭)의 일원이 되었죠. 1965년 이후 유럽 제패 경험이 없었던 인테르 입장에서는 2005/06, 2006/07시즌 바르사의 유럽 제패를 이끈 경험이 있는 에토의 존재감이 소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즐라탄이 유독 챔피언스리그에 약한 징크스가 있었다는 점에서 에토에 대한 기대치가 컸고 여론 또한 마찬가지 였습니다.

반면 에토와 같은 시기에 인테르로 이적한 밀리토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2008/09시즌 세리에A 31경기 24골로 득점 2위에 올랐고(즐라탄이 1위) 그 이전 시즌에도 꾸준히 많은 골을 터뜨렸지만 에토의 이름값에 가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에토가 바르사의 특급 공격수로 군림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면, 밀리토는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 경험이 없었던 당시 30세 선수였습니다. 더욱이 인테르는 밀리토의 생애 첫번째 빅 클럽 이었습니다. 그동안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오가며 중소 클럽 또는 세리에B(2부리그)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익숙함을 더했던 공격수로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밀리토가 과소평가 되었던 결정적 이유입니다.

하지만 인테르의 2009/10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비롯 유로피언 트레블을 이끈 공격수는 에토가 아닌 밀리토 였습니다.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을 비롯해서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전에 이르기까지 토너먼트 7경기에서 5골을 터뜨렸고, 특히 결승전에서는 2골을 넣으며 인테르의 2-0 완승 및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즐라탄이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무대에서 골 부진에 시달렸던 아쉬움을 밀리토가 완전히 지웠죠. 그것도 4-2-3-1의 원톱 공격수로서 에토를 왼쪽 윙어로 밀어내고 골잡이의 진가를 발휘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에토가 골 결정력 부족으로 인테르 현지 팬들의 질타를 받은 끝에 미드필더로 좌천되었다면, 밀리토는 거의 매 경기 마다 골을 터뜨리는 꾸준함을 앞세워 인테르 유럽 제패를 결정 지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밀리토의 기량은 결코 비야-즐라탄-포를란-드록바-토레스 같은 세계 정상급 중앙 공격수들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2009/10시즌 인테르의 유로피언 트레블의 주역임을 상기하면 UE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FIFA 발롱도르 수상자에 이름을 올릴 자격이 있습니다. 특히 골 결정력은 어느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습니다. 상대 골망을 흔드는 테크닉을 주무기로 여러 형태의 슈팅을 골로 해결지을 수 있는 기질이 뛰어납니다. 슈팅을 난사하기 보다는 한 번의 슈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볼을 발에 정확히 맞추는 기질이 다분합니다.

밀리토는 단순히 골만 잘 넣는 선수가 아닙니다. 골을 터뜨릴 수 있는 기반을 스스로 마련하며 골잡이의 기질을 발휘하는 공격수이기 때문입니다. 최전방에서 스스로 공격을 해결하는 능력 만큼은 월드 클래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부진 체격(183cm, 78kg)을 지닌 선수로서 거구의 수비수들과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며 오히려 압도합니다. 박스안에서의 민첩안 움직임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교모하게 뚫거나 농락하는 본능적인 활약으로 어김없이 골을 넣습니다. 후방 패스를 받아내는 능동적인 움직임, 발군의 위치선정, 문전으로 달려들어 상대를 제압하는 베짱에 개인기까지 더해지면서 골을 해결짓죠. 특히 지난 시즌에는 스네이더르와의 철벽 호흡으로 많은 골을 합작하며 인테르에게 영광을 안겼습니다.

그런 밀리토는 상대 수비를 따돌리는 개인기를 주무기로 삼기 때문에 상대 수비 입장에서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최전방에서 볼을 잡으면 안정된 퍼스트 터치를 통해 볼을 지켜내면서, 상대 수비와 맞닥드리면 그 즉시 페인트 동작으로 견제에서 벗어나 어김없이 골을 노립니다. 발이 빠른 공격수는 아니지만(결코 느리지 않은) 상대 수비의 견제를 이겨내기 위해 민첩하게 움직이는 성향이 뒷받침되었기에 개인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밀리토가 최전방을 지키는 공격수는 아닙니다. 최전방을 기반으로 측면과 2선까지 활발히 오가며 상대 수비를 끌어 당기거나 후방의 패스를 받아 연계 플레이 및 골을 노리는 부지런한 움직임을 자랑하는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러한 능력이 20대 초반부터 빅 클럽에서 폭발했다면 지금쯤 세계적으로 엄청난 명성을 얻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밀리토는 25세였던 2004년 1월 이탈리아 세리에B에 속했던 제노아 입단을 통해서 유럽 무대에 첫번째 도전장을 내밀었고 5년 6개월 뒤에야 빅 클럽에 입성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아르헨티나 라싱의 간판 골잡이로 활약하면서 대표팀에 발탁 될 정도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20대 초반에 평범한 활약을 펼쳤으나 그 이후 갑자기 성장했던 케이스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유독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두각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에 지난해 여름 이전까지 빅 클럽과의 인연이 부족했고 지금까지 과소평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물론 밀리토의 남아공 월드컵 행보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2009/10시즌 인테르의 유로피언 트레블을 이끄는 맹활약을 펼쳤지만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이과인(레알 마드리드)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를 지킨 끝에 무득점에 그쳤습니다. 아르헨티나가 치렀던 5경기 중에 2경기(나이지리아전, 그리스전)에 출전했고 그 중 그리스전만 선발 출전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밀리토를 잘 활용했다면 이야기는 다를 수 있었습니다. 이과인은 한국전 해트트릭을 제외하면 박스 안에서 특별히 인상깊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8강 독일전 부진을 통해 큰 경기에 약한 징크스를 이겨내는데 실패했습니다. 밀리토의 대표팀 포스가 소속팀에 비해 강렬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인테르의 우승을 이끈 경험 및 큰 경기에 강한 진가가 있기 때문에 결과론적인 아쉬움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밀리토의 올 시즌 5경기 무득점 부진은 지난 시즌 활약상이 반짝에 그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밀리토의 부진은 그를 최전방에 묶는 베니테즈 감독 전술의 문제일 뿐, 최전방에서 스스로 공격을 해결하는 능력이 출중한 그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고 2009/10시즌을 통해 입증 됐습니다. 2009/10시즌의 경이적인 활약을 놓고 보더라도 세계 최고의 공격수 반열에 있는 선수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동안 명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여론의 과소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실력적인 폄하로 이어지기에는 곤란합니다. 올해 31세인 밀리토의 최전성기는 현 소속팀 인테르에서 뛰는 지금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