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블루윙즈는 지난 2001년과 2002년 아시안 클럽 선수권(현 AFC 챔피언스리그) 및 아시아 슈퍼컵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의 클럽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래서 수원팬들은 '우리는 아시아의 챔피언'을 모토로 아시아 최고 클럽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수원이 아시아를 제패한 것도 이제는 8년 전의 추억일 뿐입니다. 전임 사령탑인 차범근 감독 체제에서 번번이 아시아 정복에 실패했던 수원이 윤성효 감독 체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려면 아시아 No.1 재도약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수원은 지난 15일 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성남 원정에서 1-4로 대패했습니다. 염기훈이 동점 프리킥 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비 불안으로 자멸한 끝에 라돈치치의 2골, 몰리나의 1골, 양상민의 자책골로 4골을 허용했습니다. 수원이 오는 22일 빅버드에서 열리는 홈 경기에서 4강 진입의 발판을 마련하려면 3-0 완승 또는 5-1의 대승을 거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서울-경남과 더불어 K리그 최소 실점 공동 1위(18실점)를 기록중인 성남을 상대로 대량 득점을 노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8강 탈락이 유력하지만 아시아 정복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면 '리아조르의 기적'을 떠올려야 합니다.
수원, 아시아 정복 위해 2차전을 포기해선 안된다
리아조르의 기적은 UEFA 챔피언스리그 역대 명승부 중에 하나로 꼽힙니다. 스페인 클럽 데포르티보 라 코르냐는 2004년 4월 8일 스페인 리아조르에서 열린 8강 2차전 AC밀란전에서 '거짓말 같은' 기적을 연출했습니다. 1차전 원정에서 1-4로 대패했지만 2차전에서 전반 5분 판디아니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35분 발레론, 44분 루케, 후반 31분 프란이 골을 넣으며 4-0으로 승리해 4강 진출에 성공했죠. 공교롭게도 데포르티보의 1차전 원정 스코어 1-4는 수원이 성남 원정에서 패했던 스코어와 똑같습니다.
물론 데포르티보 같은 기적의 역전극은 아무리 강팀이라도 이루기 힘든 시나리오입니다. 1차전에서 대량 실점으로 패했기 때문에 2차전에서 공격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지만, 오히려 상대팀의 카운트 어택에 밀려 일격을 허용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하지만 단기전 특성상 리아조르의 기적 같은 역전극은 언제든지 속출할 수 있습니다. 단기전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승리욕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기 쉬운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저 '마음먹기'에 달린 일입니다. 상대팀의 전술을 뛰어넘는 전략을 설정하여 선수들을 똘똘 뭉치게 하고, 그 구성원들이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상대 선수들의 기를 죽이는 근성을 발휘해야 대량 득점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수원에게 있어 리아조르의 기적 연출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포항이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과정에서 비슷하게 재현했기 때문입니다. 우즈베키스탄 분요도코르와의 8강 1차전 원정에서 1-3으로 패했지만 스틸야드에서 치렀던 2차전 홈 경기에서 연장 접전 끝에 4-1 대승을 거두는 '포항 극장'을 썼습니다. 만약 2차전에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향한 집념을 포기했다면 8강에서 탈락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포항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고 분요도코르전 4-1 승리로 탄력을 얻으며 4강을 거쳐 결승에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수원이 데포르티보와 더불어 반면교사 삼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수원이 성남과의 2차전에서 파란의 역전극을 일으키려면 엄청난 체력을 소모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원은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이후 여러 대회 스케줄을 병행하는 살인같은 일정을 치르면서 선수들의 체력이 많이 소진됐습니다. 정규리그 꼴찌에서 6위로(지난 4일 강원전까지, 현재 7위), FA컵 4강에 진출했던 파죽지세를 내달리며 많은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에 성남과의 2차전에서 올인하기에는 벅찬것이 사실입니다. 오는 18일에는 경남과의 K리그 경기까지 치러야 합니다. 그래서 매 경기마다 최적의 선수층으로 경기에 임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로테이션 멤버들이 분발해야 하는데 몇몇 선수들이 기복이 심한 경기력을 펼치면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1차전 장소였던 탄천 종합 운동장 잔디 사정은 좋지 못했습니다. 그라운드 면적 중에 절반 정도가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에 수원 같은 세밀한 패스 축구를 하는 팀들에게 불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윤성효 감독이 "조기 축구도 이런 잔디선 안 한다"며 성남의 잔디 문제를 비판했었고 이것이 여론에서 '잔디탓 논란'으로 확대 되었죠. 신태용 성남 감독은 "수원의 잔디 핑계는 변명일 뿐이다"라고 일축했지만, 윤성효 감독과 수원이 성남의 잔디 문제를 지나치게 걱정한 것은 분명합니다. 수원의 근본적인 문제는 체력 부족 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차전 장소인 빅버드의 잔디 상황은 수원에게 유리합니다. 빅버드의 잔디는 탄천 종합 운동장과 대조적으로 관리가 잘 되어 있는 수원의 홈 구장 입니다. 수원이 미드필더진을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패스 축구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는 18일 경남과 빅버드에서 경기하고 4일 뒤 성남과의 2차전을 치르기 때문에 또 다시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지만, 경남전을 통해 빅버드 잔디에 익숙해지면서 성남전을 대비하는 흐름은 수원에게 플러스 요소 입니다. 체력 부담을 안고 있는 수원 입장에서 성남과의 2차전을 홈에서 치르고, 수원 서포터즈 그랑블루의 열렬한 응원까지 더해지면 원기왕성한 에너지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비 문제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11일 제주에게 0-3으로 패했고, 15일 성남전에서 1-4로 대패하면서 2경기 동안 7골을 허용했습니다. 왼쪽 풀백 양상민은 백업 자원 부족으로 이미 과부하에 걸렸고, 부상에서 복귀한 황재원의 폼은 평소보다 떨어진 상태이며, 수비수 전원이 커버 플레이 및 위치선정이 매끄럽지 못하며, 조원희-백지훈 같은 중앙 미드필더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뒷 공간이 자주 뚫리는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두 선수는 7월에 비해 경기력 및 컨디션이 좋지 않습니다.)
수원이 성남과의 2차전에서 대승을 거두려면 기본적으로 무실점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원정팀 성남에게 한 골이라도 허용하면 원정 다득점에 의해 아무리 경기에서 승리하더라도 4강 진출이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수비 라인을 재정비하면서 라돈치지-몰리나 봉쇄를 연구하고, 성남의 카운트 어택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여 역습을 노리는 전술이 수원에게 필요합니다. 수원이 한국판 '리아조르의 기적'을 연출하여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꿈을 이룰려면 2차전에서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