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선생' 박주영(25, AS 모나코)이 축구팬들의 예상과 달리 2010/11시즌을 불안하게 출발했습니다. 지난 시즌까지 두 시즌 동안 모나코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했고 특히 2008/09시즌에는 팀 공격을 짊어졌다는 이유로 '박 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습니다. 하지만 지난 시즌 막판부터 골 부진으로 신음했던 여파가 최근까지 이어지면서 공격력 향상에 이렇다할 돌파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모나코에서 최근 15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쳤으며 경기 내용에서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주영은 지난 2월 8일 생테티엔전을 시작으로 지난달 30일 옥세르전까지 프랑스컵을 포함한 지난 15경기에서 골이 없었습니다. '공격수는 골로 말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15경기 연속 무득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지난 시즌까지는 '모나코 미드필더들의 취약한 공격 지원이 박주영을 외롭게했다'는 명제가 설득력있게 작용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박주영의 골이 없었던 지난 2월 부터는 하루나-알론소의 폼이 떨어졌으며 네네가 상대팀들의 집중 견제에 시달리며 경기력에 기복이 따르던 시기 였습니다.
하지만 역의 관점에서 보면, 박주영의 15경기 연속 무득점 원인은 최전방에서 공격을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 부족으로 봐야 합니다. 공격수는 단 한 번의 공격 상황을 놓치지 않고 상대 골망을 흔들어야 하는 숙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롱볼 축구를 펼치는 모나코는 미드필더진의 아기자기한 패스 전개를 구현하면서 많은 슈팅을 노리는 팀이 아니기 때문에 박주영이 많은 슈팅을 날리는데 버거운 부분이 있습니다. 무득점의 근본적 원인은 팀 전술이겠지만 선수 본인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박주영이 유럽 정상급 공격수로 성장하려면 팀의 환경에 개의치 않고 꾸준히 골을 생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지난 시즌 부상이 잦았던 것 또한 슬럼프의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박주영은 지난 시즌에만 6번의 부상을 당했습니다. 지난해 8월 중순 왼쪽 팔꿈치 탈골, 지난해 10월 경미한 발 부상, 11월초와 올해 2월 중순 햄스트링 부상, 4월 28일 왼쪽 안면 부위가 찢어진 얼굴 부상, 5월 2일 햄스트링 부상으로 신음했습니다. 박주영은 FC서울 시절에도 부상 이후에 실전 감각 저하를 이겨내지 못하면서 평소의 폼을 되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부상 때문에 경기를 풀어가는 리듬이 끊기면서 위치선정-연계 플레이-볼 키핑-패싱력의 위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지난 시즌 6번의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피로도가 쌓이는' 시즌 후반부터 부진에 빠진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최근 박주영의 공격 패턴 또한 부상 여파와 관련이 없지 않습니다. 상대 수비에 한 번 막히면 계속 봉쇄당하는 흐름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공격이 읽히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서 동료 선수와의 2대1 패스 및 전진패스를 통해 연계 플레이를 노리거나 또는 미드필더의 전방 침투 공간을 벌려줘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시즌 세 번이나 햄스트링을 다쳤기 때문인지 경기를 거듭할수록 부지런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 수비에 고립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볼 터치가 적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수록, 최전방에서 골을 스스로 해결짓는 공격력을 기대하기에는 어렵습니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점은, 모나코의 대대적 공격력 변화가 박주영을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모나코는 네네-피노-마주 같은 기존 공격 옵션들을 떠나보내고 하루나-알론소까지 부상으로 빠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공격 옵션들을 영입했습니다. 공격수에 음보카니-니쿨라에, 윙어에 아우바메양-말롱가를 수혈하면서 박주영의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모나코의 대대적인 공격 변화 및 음보카니-니쿨라에-아우바메양의 성공적인 정착이 박주영의 입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됐습니다.
박주영이 지난달 30일 옥세르전에서 4-4-2의 왼쪽 윙어로 출전한 것은 단순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모나코는 음보카니-니쿨라에를 투톱으로 기용하고 박주영-아우바메양을 좌우 윙어로 활용했습니다. 박주영은 그 이전까지 4-2-3-1의 원톱으로 활약했지만 골 부족을 이겨내지 못했고 모나코는 옥세르전 이전까지 3경기 연속 무승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모나코는 박주영이 아닌 음보카니를 타겟맨으로 올리고 니쿨라에를 쉐도우로 기용하면서 아우바메양의 오른쪽 측면 돌파를 기반으로 공격을 풀어간 끝에 2-0으로 승리했습니다. 팀의 승리를 위한 일시적 변화로 볼 수 있지만, 음보카니-니쿨라에가 최전방에서 제 몫을 다했다는 점은 박주영에게 부담스러운 현상입니다.
냉정히 말해, 박주영은 음보카니와의 타겟맨 경쟁에서 밀렸습니다. 음보카니는 강력한 몸싸움과 탄력을 앞세워 상대 수비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성향으로써 최근 경기 내용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벨기에리그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프랑스리그로 이적했던 적응 문제 때문에 아직 경기력이 덜 여물었지만, 박주영과 달리 최전방에서의 활동 폭을 넓히고 2선과 끊임없이 공존하면서 공격을 전개하는 활발함은 팀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기에 충분합니다. 박주영은 타겟맨보다는 쉐도우에 가장 적합한 공격수이기 때문에 박주영-음보카니 투톱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니쿨라에가 최근 2경기 연속 골을 넣으면서 박주영이 왼쪽 윙어로 밀렸습니다.
그런데 박주영은 지난 옥세르전에서 왼쪽 윙어로 부진한 활약을 펼치면서 <프랑스 풋볼><레퀴프><풋볼 365> 같은 현지 언론으로부터 최저 평점을 받았습니다. 경기 내내 공격적인 움직임을 펼쳤지만 상대 수비에 막히는 바람에 볼 터치가 적었고 박스 안쪽으로 골 기회를 내주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오른쪽에서 왕성한 움직임을 앞세워 시종일관 상대 측면을 흔들었던 아우바메양과 대조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아우바메양은 볼 터치 및 패싱력이 다소 간결하지 못했지만 기동력을 통해 팀 공격의 숨통을 틔우고 직접 골까지 넣으면서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문제는 모나코가 지난달 31일 여름 이적시장 마감 당일에 윙어 자원인 말롱가를 영입하면서 박주영의 입지가 더 어렵게 됐습니다. 말롱가는 지난 시즌까지 낭시의 주전 윙어로 활약했던 선수이기 때문에 모나코의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박주영이 15경기 연속 무득점에 빠지고 경기 내용에서도 실마리를 못찾는 현 시점이라면, 모나코의 주전에서 밀리는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를 봐야 할지 모를 걱정을 하게 됐습니다. 모나코에서 지난 두 시즌 동안 붙박이 주전으로 뛰면서 에이스로 활약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주전 제외가 다소 어색할 수 있지만 슬럼프에 빠졌다는 것이 걸림돌 입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판단하면, 모나코가 박주영을 벤치로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름 이적시장 동안에 불거졌던 프리미어리그 클럽 이적설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박주영이 오는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금메달을 이끌며 병역 혜택을 받으면 내년 1월 이적이 유력합니다. 모나코 입장에서는 많은 이적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박주영에게 많은 출전 기회를 부여하면서 선수의 맹활약을 원할 것입니다. 박주영이 올 시즌 전반기를 부진한 상태에서 보내면 선수의 몸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에 계속된 주전 출전이 필요합니다. 박주영 입장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면 지금부터 변화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박주영이 팀 내 입지를 회복하려면 골이 필요합니다. 경기 내용에서 자신감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격수는 골로 말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상대 골망을 흔들 수 있는 강력한 임펙트가 요구됩니다. 골을 터뜨려야 음보카니-니쿨라에에 결코 밀리지 않으며, 오히려 두 선수를 압도하는 공격력을 지녔음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공격 기회라도 충실히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박주영에게는 여러가지 불안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 잡음을 없애려면 골부터 필요합니다. 지금의 어려운 행보를 이겨내고 유럽 무대를 호령하는 한국인 공격수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슬럼프를 꼭 이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