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박지성 교체보다 더 아쉬웠던 루니의 결장

 

'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67분 동안 무난한 활약을 펼쳤지만 맨유는 막판 뒷심 부족으로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세 시즌 연속 풀럼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풀럼 원정 징크스'에 시달리고 말았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웨인 루니가 복통으로 결장한 공백 이었습니다.

맨유는 23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크레이븐 커티지에서 열린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라운드 풀럼 원정에서 2-2로 비겼습니다. 전반 11분 폴 스콜스의 선제골로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지만 후반 12분 사이번 데이비스에게 동점골을 허용했습니다. 후반 39분 브레데 한겔란트의 자책골로 승리를 눈앞에 두는 듯 했으나 후반 42분 루이스 나니가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2분 뒤 한겔란트에게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승점 3점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최근 세 번의 풀럼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악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3월 22일 0-2, 그 해 12월 20일 0-3 완패를 비롯 이번 경기에서는 나니의 페널티킥 실축과 한겔란트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승리를 눈앞에서 놓쳤습니다. 후반 22분까지 뛰었던 박지성은 경기 종료 후 <스카이 스포츠>로 부터 "Industrious without hurting the Cottagers(활발했지만 풀럼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다, Cottager는 풀럼의 애칭)"는 평가와 함께 평점 6점을 부여 받았으며, 나니-발렌시아와 동일한 평점을 기록했습니다.

루니가 출전했으면 박지성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을텐데...

박지성이 풀럼전에서 두드러진 맹활약을 펼친 것은 아니었지만 부진하지는 않았습니다. 90분을 충분히 뛸 수 있는 컨디션이 최상이었다면 이날 경기의 최우수 선수였던 스콜스에 버금가는(스카이 스포츠 기준)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90분을 뛰기에는 경기를 거듭할 수록 페이스가 주춤했고, 동료 공격 옵션들이 루니의 결장에 따른 활동 폭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면서 자신의 경기력에 적지않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그렇다고 박지성이 처음부터 컨디션이 나빴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발렌시아보다 더 좋았으며 활동 폭 및 기동력에서 우세를 점했습니다. 좁은 지역에서 과감하고 정확한 패스를 연결하며 맨유의 연계 플레이를 도왔고, 중앙 및 오른쪽 측면까지 이동하며 상대 수비를 끌어 당기거나 자신쪽으로 시선을 유도하는 공간 창출에 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축구공과 무관한 움직임이 많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질 수 밖에 없었지만 맨유의 공격 전개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입니다. 문제는 발렌시아가 콘체스키에게 봉쇄 당하면서 좌우 측면의 밸런스 균형이 맞지 못했습니다.

박지성의 풀럼전 공격 패턴은 지난 8일 첼시전과 똑같았습니다. 부지런한 움직임을 앞세운 공간 침투를 앞세워 골 기회를 노리거나 박스 안에서 결정적인 패스를 이어주는 직접적인 공격 성향 보다는 공간 창출 같은 이타적인 경기력에 힘을 쏟았죠. 주로 2선에서 그런 움직임이 많았는데, 박스 안에서는 루니가 쉐도우로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노리는 공간 창출 및 패스 플레이에 따른 부분 전술 강화를 시도했습니다. 그 효과는 발렌시아가 골문 침투 과정에서 골을 넣는 것을 비롯 자신의 공격 파괴력을 끌어올리는 맹활약을 펼쳐 맨유의 3-1 승리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문제는 루니가 풀럼전에 결장했습니다. 그래서 에르난데스가 타겟맨, 베르바토프가 쉐도우를 맡아 루니의 공백을 만회하려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루니와 똑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습니다. 에르난데스는 부지런히 뛰었음에도 공을 몰고가면서 파괴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움직임을 일관했고, 베르바토프는 상대 압박에 취약한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지난 시즌의 단점을 또 되풀이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렌시아가 콘체스키에 의해 발이 묶이면서, 박지성의 기동력 및 활동 폭이 점점 힘에 부치게 됐습니다.

박지성은 페이스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공격에서 쉴틈없는 공간 창출로 제 몫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풀럼의 수비 조직이 전반 초반과 중반에 맨유 공격 옵션들에게 흔들리는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박지성의 활약은 수비에서 공헌도가 컸습니다. 풀럼의 공격을 직접 차단하거나 상대팀 선수가 소유한 공을 빼앗아 공격을 전개한 것, 에브라의 부담을 덜어주는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팀의 수비 밸런스를 높였습니다. 특히 풀럼의 오른쪽 풀백 판트실을 밀착 마크하여 공을 빼내려는 움직임을 시도하고 직접 맞부딪치면서 상대를 괴롭혔습니다. 전반 33분에는 뎀프시를 뒷쪽에서 견제하면서 상대의 패스 미스를 남발하는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의 페이스는 전반 막판부터 떨어졌습니다. 전진 패스보다는 백패스 또는 횡패스를 시도하는 장면들이 부쩍 늘었고, 활동 폭을 넓히면서 상대를 끊임없이 괴롭히기보다는 몸을 사리는 경향이 없지 않았습니다. 경기 당일 컨디션은 좋았지만 지속적으로 그라운드를 휘저을 수 있는 지구력 및 체력이 아쉬웠습니다. 그 원인이 앞서 언급했던 맨유의 전술적 문제도 있지만 또 하나는 지난 11일 A매치 나이지리아전 차출 후유증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대표팀 차출로 소속팀에서 자리를 비우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폼이 떨어지거나 부상당하는 아쉬움을 반복했는데, 풀럼전 페이스 저하가 이러한 측면과 연관이 없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맨유의 전술이 아쉬웠습니다. 전반 10분 스콜스의 선제골로 경기 초반부터 리드를 했지만 문제는 추가골을 넣으려는 과감한 의지가 부족했습니다. 에르난데스-베르바토프-발렌시아가 상대 수비에 의해 발이 묶이면서 박지성의 기동력이 요구될 수 밖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스콜스-플래처로 짜인 중앙 미드필더 조합이 킬패스보다는 공을 주고 받는 공격 패턴을 일관하며 팀의 공격 템포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풀럼이 선 수비-후 역습에 강하고 투박한 축구가 컨셉이라는 것을 맨유 선수들이 간과했던 것이죠. 그래서 풀럼 선수들은 맨유의 느린 공격 템포를 침착하게 막으며 호시탐탐 동점골 기회를 노렸고 후반 12분 데이비스가 일격을 가했습니다.

만약 루니가 정상적으로 경기에 임했다면 풀럼의 추격 의지가 꺾였을지 모릅니다. 루니는 지독한 골 가뭄에 시달리고 있지만 지난 첼시전과 뉴캐슬전에서는 쉐도우로서 끊임없이 상대 수비를 괴롭히거나 뒷 공간을 파고드는 패턴에 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맨유는 루니의 부상 공백을 안고 풀럼전에 임했지만 전반 10분 스콜스의 골 이후 너무 이른 시간 부터 공격의 템포를 늦춰버린 끝에 추가골은 커녕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공격 강화를 위해 후반 22분 박지성을 빼고 나니를 투입했고, 5분 뒤에는 발렌시아-에르난데스를 대신해서 긱스-오언을 출전 시켰습니다.

물론 박지성의 후반 22분 교체 상황은 국내 축구팬 입장에서 아쉬웠던 장면 입니다. 적어도 발렌시아보다는 경기력이 더 좋았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의 교체 결단에 불만을 품을 여지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이 풀타임 출전하기에는 페이스가 떨어졌기 때문에 충분한 교체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루니의 공백 이었습니다. 루니가 뛰었다면 맨유가 추가골 생산에 의지를 보였을 것이고, 박지성이 움직임에 대한 부담 없이 자신의 폼을 끌어 올렸을 것입니다. 루니가 맨유에게 있어 보배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풀럼 원정 무승부에서 깨달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