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수원 블루윙즈전에서 인상깊은 K리그 데뷔전을 치렀던 세르베르 제파로프(28, MF). 그는 우즈베키스탄 대표팀의 주장이자 플레이메이커로서 2008년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던 아시아의 대표적인 축구 스타입니다. 분요도코르 소속으로 뛰었던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 포항과의 8강 1차전에서는 2골을 기록하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던 선수로서 국내 축구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제파로프가 2년 전 서울에서 뛰었던 네덜란드 출신 미드필더 키키 무삼파처럼 허무하게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짓는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무삼파처럼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데다 서울의 전, 현직 외국인 미드필더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축구팬들이 제파로프를 저평가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금까지 우즈베키스탄리그에서 활약했기 때문입니다. K리그가 아시아에서 가장 우수한 경기력을 자랑하며 강팀과 약팀의 레벨 격차가 크지 않지만 '분요도코르가 독주하는' 우즈베키스탄리그는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파로프가 무삼파처럼 높은 네임벨류에 비해 실패할 것이라는 견해가 나름 설득력을 얻었죠.

하지만 제파로프가 수원전에서 선보였던 무게감은 무삼파와 대조적 이었습니다. 무삼파는 어떠한 인상깊은 장면을 심어주지 못하고 두달 동안 5경기만 뛰고 퇴출되었지만 제파로프는 후반 13분 교체 출전했음에도 경기 흐름을 스스로 장악했습니다. 실전에서 동료 선수들과 처음으로 발을 맞추다보니 처음에는 동료 선수들에게 공이 오지 않아 멈칫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후반 21분 이승렬이 교체 투입하고 서울이 4-2-3-1 포메이션으로 전환하면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아 동료 선수들에게 능수능란한 패스를 연결하며 수원의 수비 진영을 흔들었죠.

제파로프의 패스가 예사롭지 않았던 이유는 짧은 패스와 롱패스를 가리지 않고 동료 선수에게 정확하게 날카롭게 연결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선수들의 패싱력은 K리그에서 손꼽히기로 유명하지만 스루패스와 전진패스를 이용한 낮은 패스의 빈도가 높은 편입니다. 반면 제파로프는 넓은 시야와 현란한 볼 솜씨를 앞세워 적시적소의 상황에서 패스 거리를 가리지 않고 얼마든지 공격진에게 논스톱 패스로 골 기회를 열어줬습니다. 상대 수비진에 차단 될 수 있는 모험적인 패스가 여럿 이었지만 동료 선수에게 여유있게 볼을 연결하며 서울 공격의 창의력을 키웠습니다. 무엇보다 데얀과의 호흡이 척척 잘 맞았던 것은 K리그 우승을 노리는 서울에게 천군만마와 같습니다.

그런 데얀은 수원전 종료 후에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새로들어 온 선수들에게 만족한다. 제파로프는 오늘 여러분들도 보았듯이 정말 훌륭한 선수다"라며 제파로프의 기량을 치켜 세웠습니다. 지난 시즌까지 타겟맨으로 뛰었으나 올 시즌 빙가다 체제에서 쉐도우로 전환했던 데얀의 공격 부담을 제파로프가 덜게 된 것입니다. 데얀은 올 시즌 18경기에서 10골 9도움의 맹활약을 펼쳤는데 이제는 제파로프의 존재감에 힘입어 골에 전념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00년대 중반의 AC밀란이 카카-셉첸코 콤비로 재미를 봤다면 서울에게는 제파로프-데얀 조합 이라는 새로운 공격 무기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물론 제파로프는 K리그에서 수원전 단 한 경기만 출전했기 때문에 섣불리 코리안 드림에 성공했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판 엘 클레시코 더비로 불리는 수원과의 K리그 최대의 라이벌전에서 동료 선수들과 축구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경기를 지휘한 것은 그의 포스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활약은 앞으로 K리그에서 폭발적인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합니다. 서울 선수들과 호흡이 무르익을 시즌 막판 및 포스트 시즌에는 수원전보다 더욱 강렬한 모습을 K리그에 각인시킬지 모릅니다.

서울에게 있어 제파로프의 영입이 반가운 이유는 남아공 월드컵 이후 다소 주춤했던 공격력을 끌어올렸기 때문입니다. 이승렬이 남아공에 다녀오느라 컨디션이 떨어졌고 에스테베즈가 팀을 떠나면서 측면 공격의 파괴력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제파로프가 수원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면서 서울의 공격력이 순식간에 크레이지 모드로 발동했습니다. 제파로프가 2선에서 양질의 볼 배급을 하면서 데얀-이승렬이 공격에 자신감이 붙어 끊임없는 공간 침투로 수원 수비 진영을 뚫었고, 앞으로 최태욱-리마까지 가세하면 서울은 '골 넣는 공격축구'를 앞세워 올해 상반기 평균 관중 4만명에 이어 하반기에도 K리그의 흥행을 주도할 것입니다.

특히 서울팬들은 제파로프의 부드러운 패스를 통해 한 명의 외국인 플레이메이커를 머릿속에서 떠올리실 것입니다. 2005년 부터 3년 동안 서울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맹활약을 펼쳤던 포르투갈 출신의 히칼도(본명 : 히카르두 나시멘투) 말입니다. 히칼도는 2007년 서울 사령탑으로 부임했던 귀네슈 감독과 마찰을 빚었던 아쉬움이 있지만 서울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독차지했던 외국인 선수였습니다. 이장수 감독 시절 3-4-1-2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정확한 패싱력과 날카로운 킥력, 빠른 드리블 돌파를 앞세워 서울 공격을 진두지휘했었죠.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서울하면 '박 선생' 박주영을 떠올렸습니다. 박주영이 있음에 서울이 K리그의 인기구단으로 도약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박주영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선수는 히칼도 였습니다. 한 번 공을 잡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드리블 돌파를 통해 공격의 물꼬를 트거나 공격 옵션들과 유기적인 연계 플레이를 엮으며 영리하게 공격을 풀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깨까지 닿는 찰랑찰랑한 '오리지널' 금발 단발머리는 히칼도의 전형적인 트레이드 마크였죠.

여전히 히칼도를 그리워하는 서울팬들 입장에서는 제파로프에게 각별한 시선을 보낼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제파로프의 포스에서 히칼도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서울은 3년 전 히칼도와 작별한 이후 그동안 여러명의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히칼도만큼 팀 공격의 절반 역할을 담당할 것 같은 포스를 지닌 선수는 없었습니다. 지금의 빙가다 체제에서는 데얀이 그 몫을 했지만 본래는 전형적인 골잡이 였습니다. 제파로프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놓는 서울의 4-2-3-1은 다른 팀들에게 충분한 위협대상이 될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제파로프와 히칼도는 서울에서 특이한 등번호를 달고 뛰었습니다. 히칼도의 등번호가 50번 이었다면 제파로프는 88번 선수로 활약중이죠. 심지어 어느 서울팬은 히칼도가 서울을 떠나자 "등번호 50번을 영구결번하자"며 구단에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제파로프가 서울의 올 시즌 K리그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거듭나면 훗날 히칼도처럼 서울팬들에게 애틋한 외국인 선수로 존재감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제파로프는 6개월 임대 신분으로 K리그에 진출했으며 서울팬들은 벌써부터 완전 이적을 원하고 있습니다. 과연 제파로프가 히칼도가 이루지 못했던 서울의 K리그 우승 주역으로 이름을 남기게 될지 앞으로의 행보가 흥미진진합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쥬녀쥬녀 2010.07.30 14: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히칼도..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요^^
    지금은 어디서 선수생활 잘 하고 있나 궁금해요~

    • 나이스블루 2010.07.30 1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난 시즌까지 포르투갈의 CD아베스 소속이었는데,

      올해 36세여서...
      다가오는 올 시즌에도 뛸 지는 모르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2. 하하 2010.07.30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계셨네요;

    패스센스와 정확한 킥력은 히칼도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죠!

    박주영-히칼도 처럼 , 이승렬-제파로프 기대해봅니다!

  3. df 2010.07.30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효리사랑님의 글이 최고에요

  4. 쿠란 2010.07.30 1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 서울이 우승에 가장 근접했다고 생각합니다

    • 나이스블루 2010.07.30 2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공감합니다.

      현재 기세를 놓고 보면 FC서울의 우승이 유력한 것 같네요.

      시즌 막판 변수(데얀의 유니폼 던지기)가 나타날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요.

  5. 새라새 2010.07.30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프로축구에 저런 선수가 있는지도 오늘 처음 알았네요..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 효리사랑님 덕이죠^^

  6. 커피믹스 2010.07.30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저런선수가 있는지 첨 알았네요. 제파로프 . 제파로프 ㅎㅎ

  7. 서울팬 2010.07.31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칼도 포루투갈 도움왕 출신..당연 포스는 쩔었지만 귀네슈감독은 혼자 너무 공을 오래잡고 있고
    수비가담과 압박시에 능력에 대한 불만족때문에 마찰이 일어난것 같습니다.
    지금 서울도 귀네슈감독이 입혀논 색깔이 그대로 묻어나는데요...
    거기에 이번 제파로프 선수가 히칼도처럼 공격도 해주면서 수비와 압박부분을 얼마나 잘해주느냐도
    중요할것 같습니다...
    수비력도 괜찮게 해주면 하대성선수 자라에 들어가도 될텐데
    그렇지 못한다면 4-2-3-1로 나와야겠죠...
    하대성처럼 기서용처럼 수비가담도 좋고 빠르고 킥력좋고 압박도 좋은 선수였으면 좋겠습니다.

  8. 노조미이시구로 2010.08.11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솔직히 히칼도보다 더 뛰어난것같음....
    괜히 히바우도가 극찬한 제파로프가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