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차기 감독 선임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던 정해성 전 수석코치,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난색을 표시했고, 최강희-김호곤 감독을 비롯한 현역 K리그 감독들도 거부하면서 아직까지 차기 감독을 뽑지 못했습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지난 7일 "국내파 감독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윤곽을 짓지 못하고 감독 선임 시기를 거듭 연기하는 상황입니다.
난항에 빠진 감독 선임 문제는 대한축구협회의 책임이 큽니다. 대표팀 감독을 국내파로 한정지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차기 감독 유력 후보로 거론된 국내파 지도자들 중에 대부분은 현직 지도자 였으며 정새성 전 수석코치도 포함 되었습니다. K리그 감독 같은 경우에는 시즌 중인데다 소속팀과 계약을 맺고 있는 신분이라는 한계가 작용합니다. 더욱이 대표팀 감독은 여론의 많은 관심을 받지만 수장으로서의 부담과 중압감이 크기 때문에 누구나 선망하는 사령탑이 아니며 '독이 든 성배'라는 안좋은 수식어를 듣는 실정입니다. 정해성 전 수석코치가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준비 부족으로 고사한 것이 그 예죠.
여론에서는 조광래 경남 감독 또는 김학범 전 성남 감독의 대표팀 사령탑 선임을 바라는 눈치입니다. 두 감독은 K리그에서 철저한 지략과 과감한 결단력을 앞세운 용병술을 자랑하는 지략가 입니다. 조광래 감독이 어린 선수들을 집중 육성하여 대표급 선수로 키우는 세대교체 역량이 우수하다면 김학범 전 감독은 선수들의 철저한 체력 관리를 우선시합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가 지금까지 두 감독에게 뚜렷한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것은, 두 감독을 뽑을 의지가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조광래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의 재야 인사이고 김학범 전 감독은 2008년 11월 성남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 현장 경험이 없었습니다.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마땅한 국내파 감독이 나타나지 않자 지난 15일 월드컵 대표팀 초청 만찬회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표팀 감독 후보자를 찾겠다"며 외국인 감독을 영입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표팀을 이끌어갈 국내파 감독을 더 이상 영입하지 못하면 외국인 감독에게 눈을 돌리겠다고 밝혔으니 '국내파 감독으로 뽑겠다'는 원칙이 깨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3년 전과 다를 바 없습니다. 대한축구협회는 2007년 11월 베어벡 전 감독의 뒤를 이을 차기 사령탑으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를 유럽으로 보내며 믹 맥카시 울버햄프턴 감독, 제라르 울리에 전 리버풀 감독과 영입 협상을 했지만 끝내 거절 당했습니다. 그래서 대한축구협회는 국내파 감독을 영입하겠다며 당초의 계획을 수정했고 그 다음날 허정무 당시 전남 감독이 독이 든 성배를 마셨습니다. 허정무 전 감독이 떠난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어 국내파 감독을 찾지 못하고 외국인 감독을 물색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문제는 외국인 감독이 한국 대표팀 사령탑을 원하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한국이 아시아의 축구 강국이자 남아공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팀이라는 매리트가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오히려 한국이 낯설수도 있습니다. 특히 유럽 감독이라면 다른 대륙보다는 유럽쪽에서 지휘봉을 잡는 것을 선호할지 모릅니다. 2003년 부터 4년 7개월 동안 쿠엘류-본프레레-아드보카트-베어벡 감독이 한국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성공하지 못했던 행보를 다른 외국인 감독이 알고 있다면 대한축구협회의 제의를 꺼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한축구협회는 외국인 감독 영입을 유혹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 대표팀 감독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결정적 키워드는 바로 돈이죠. 하지만 단순한 연봉 뿐만 아니라 기사가 달린 고급 자동차, 특급 호텔 제공을 비롯 상해 보험 가입, 통역 및 성과금 등에 이르기까지 돈을 쏟아부을 곳이 많습니다. 히딩크 감독 같은 경우에는 연봉이 12~15억원 선으로 알려졌지만 각종 옵션까지 포함하면서 30억원을 지출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의 연봉이 7억원임을 상기하면 규모가 크죠.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참가했던 지도자들 중에 10명은 2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습니다. 만약 대한축구협회가 세계적인 명장을 뽑을 의지가 있다면 엄청난 돈을 지출해야 하는 부담감에 놓이게 됩니다.
그보다 더 문제는 다음달 11일 나이지리아전까지 시간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새로운 감독이 팀을 맡으려면 선수 파악이 완료되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합니다. 외국인 감독이라면 그 시간이 더딜 수 밖에 없으며 나이지리아전에서 선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경기에 임해야 합니다. 나이지리아전까지 얼마 안남았으니, 대한축구협회는 시간에 쫓긴 상황에서 차기 대표팀 감독을 선임해야 합니다. 애초부터 감독 후보군을 국내파로 한정지었던 것이 결국에는 예상치 못한 문제로 봉착하게 된 셈입니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놓고 보면, 대한축구협회는 차기 대표팀 사령탑에 대한 확실한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독을 뽑을 우려를 안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될 지 모르지만, 2004년 여름 본프레레 전 감독을 영입했으나 1년만에 실패에 부딪혔던 아픔이 또 재현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경험을 2003년과 2004년 상반기의 쿠엘류호를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습니다. 본프레레 전 감독은 아프리카와 중동 같은 세계 중심이 아닌 변방이 활동 무대였으며 협회 혹은 선수들과의 마찰이 잦았던 이력을 안고 한국땅을 밟았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런 본프레레 전 감독은 히딩크 감독과 똑같은 네덜란드 출신 지도자이지만 토털 사커를 추구하는 성향이 아닙니다. 포백 정착에 실패했고, 측면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공격 루트를 일관했고, 공격 및 수비 과정에서 미드필더가 생략되었고, 김동현의 윙 포워드 전환(2005년 미국 전지훈련) 이천수의 수비형 미드필더 변신(2004년 가을 베트남전)등 다소 납득이 되지 않는 포지션 변화 속에서 뚜렷한 결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영광을 그대로 이어가야 할 한국 축구의 진보적인 과제와 맞지 않았던 지도자 였습니다.
그 책임은 대한축구협회에 있었습니다. 본프레레 전 감독이 한국 축구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지도자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짚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영입했기 때문입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나이지리아를 이끌고 금메달을 따냈던 영광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8년전의 과거였을 뿐입니다.(감독 선임 당시가 2004년 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도 다를 바 없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원했던 국내파 감독은 아직까지 적임자를 찾지 못했고 이제는 외국인 감독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전까지 시간이 얼마 안남은 현 상황에서는, 국내외 감독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여유롭지 못합니다. 어쩌면 제2의 본프레레가 허정무 전 감독의 후임이 될 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