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네덜란드는 2010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그동안 즐겨 구사했던 축구 스타일을 버리고 새로운 전술로 변신했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독일 축구가 투박하고 힘에 의존했던 흐름에서 공격적이고 기술적으로 변했다면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던 네덜란드는 수비에 무게를 두는 안정적인 성향으로 돌아섰습니다. 독일은 젊고 기술적인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젊은 전차'로 탈바꿈했고 네덜란드는 수비 조직력에 무게감을 더하면서 '실리축구'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팀 모두 이번 대회에서 4-2-3-1 포메이션을 구사했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나라의 월드컵 행보 또한 기존과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독일은 스페인과의 4강전 이전까지 본선 5경기 13골을 기록해 '골 넣는 공격축구'의 저력을 선보였습니다. 16강 잉글랜드-8강 아르헨티나 같은 우승 후보를 상대로 무려 4골이나 폭발했던 경기력은 마치 예전의 네덜란드 축구를 보는 듯 했습니다. 클로제-뮬러가 골을 책임지고, 포돌스키-외질이 공격을 조율하면서 돌파 위주의 경기를 펼치고, 슈바인슈타이거-케디라-람이 공격의 시작점을 열어가는 흐름은 마치 톱니바퀴처럼 짜임새 넘쳤습니다.
독일의 변신이 놀라웠던 이유는 순혈주의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클로제와 포들스키는 폴란드 이민자 2세이며 트로호프스키도 폴란드계 입니다. 그 밖에 외질, 타스치(이상 터키) 카카우(브라질) 보아탱(가나) 케디라(튀니지) 같은 외국계 선수들이 독일 대표팀을 택하면서, 독일은 힘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팀으로 변신했고 스페인전 이전까지 성공적으로 정착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개방적인 국가 운영으로 경제를 발전시킨 네덜란드 사회의 모습을 독일 축구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면 네덜란드는 공격보다는 수비가 안정된 팀 이었습니다. 2008년 하반기에 부임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실리축구를 선호했기 때문이죠. 판 브롱크호르스트-마테이선-헤이팅아-판 데르 비엘로 짜인 포백의 견고한 수비 조직력은 월드컵 출전국 중에서 가장 최강이며, 판 보멀-데 용으로 구성된 더블 볼란치의 단단한 수비력까지 힘을 더하면서 상대 공격을 철통같이 봉쇄했습니다. 8강 브라질전 2-1 승리의 원동력은 파비아누-카카 봉쇄에 성공하면서 허리 싸움에서 우세를 점했던 수비력에 있었습니다. 월드컵에서 항상 철벽같은 수비력으로 재미를 봤던 독일 축구가 연상되었던 이유입니다.
그리고 카위트-스네이더르-로번이 빠른 역습을 주도하면서 상대 수비의 허점을 노린 끝에 본선 6전 전승의 오름세를 앞세워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시작은 잘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예전의 네덜란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물론 공격 스타일은 독일과 다릅니다. 과거의 독일은 선 굵은 경기를 펼치면서 강력한 한 방을 노렸고 네덜란드는 빠른 공수 전환에 의한 패스 게임 및 측면 옵션들의 과감한 돌파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월드컵 6전 전승은 지금까지의 네덜란드 행보와는 분명 달랐습니다. 꾸준한 승리를 챙겼던 독일 축구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4강 스페인전 패배는 메이져 대회에서 막판 고비를 넘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과거 행보와 똑같았습니다. 경기 시작부터 무기력하고 안일한 경기를 펼친 끝에 후반 28분 푸욜에게 헤딩골을 허용하고 0-1로 무너졌죠. 마치 마법에 걸린 것 처럼 스페인 수비를 상대로 힘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으며, 8강 아르헨티나전까지 환상적인 공격 축구를 펼쳤던 여파 때문인지 일찌감치 체력이 소진된 것 같았습니다. 뮬러의 경고 누적 공백이 아쉬웠지만, 클로제-포돌스키-외질의 동반 부진은 독일에게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패스 게임부터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슈바인슈타이거-케디라로 짜인 더블 볼란치 조합이 스페인 공격 옵션들의 전방 압박에 걸리면서 경기 주도권을 스페인에게 쉽게 허용했죠. 그래서 포돌스키-외질-트로호프스키 같은 2선 미드필더들의 역할 및 위치가 애매해지면서 공수 밸런스 붕괴 및 클로제 봉쇄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스페인의 파상 공세를 막기 위해 수비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상대의 공을 빼앗으면 그 즉시 빠른 공수 전환을 통한 역습을 노렸어야 했는데 문제는 그게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공격수와 미드필더의 몸이 무겁다보니 역습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죠. 마치 예전의 네덜란드를 보는 듯 했습니다.
반면 네덜란드의 4강 우루과이전 승리는 독일의 스페인전 이전까지의 남아공 월드컵 행보를 보는 듯 했습니다. 우루과이가 네덜란드와 함께 실리축구를 펼치는데다 알바로 페레이라-아레발로-가르카노-페레스 같은 중앙 미드필더들을 허리에 모두 포진하고 수비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네덜란드가 공격의 흐름을 주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격 옵션들이 전방에서 여러 차례 공격 기회를 잡으면서 판 브롱크호르스트-블라루즈로 짜인 좌우 풀백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고, 후반전에는 판 더르 파르트가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 있었음에도 활발한 공격 작업을 펼치면서 상대 수비를 흔들었습니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우루과이를 상대로 3-2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비록 2실점했지만 본선 6경기 중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으며 '골 넣는 공격축구'의 저력을 선보였습니다. 카위트-로번이 좌우 측면에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활발히 파고들며 좌우 밸런스를 무너뜨렸고, 판 페르시가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를 흔들며 2선 미드필더들과 간결한 패스를 주고 받았던 흐름이 3골을 넣을 수 있었던 발판으로 작용했습니다. 우루과이전에서 독일 축구의 남아공 월드컵 향수를 네덜란드가 자극시킨 것이죠.
그래서 독일과 네덜란드의 축구는 4강에서도 '뒤바뀐 운명'이 되었습니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막강한 공격 축구, 네덜란드가 독일의 안정적인 성향을 팀 전력의 근간으로 세웠습니다. 4강에서는 독일이 과거 네덜란드의 무기력함, 네덜란드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파상공세를 펼쳤던 독일의 경기력을 재현한 것 처럼 보였습니다. 이미 독일은 4강에서 탈락했고, 과거의 독일 축구를 보는 것 같은 네덜란드의 꾸준한 오름세가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어떤 결말을 맺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