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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과 일본 축구의 고민, 대형 골잡이 부재

 

한국과 일본 축구는 2010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의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비록 16강에서 각각 우루과이, 파라과이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역대 월드컵에서 아시아 2개 팀이 16강에 진출했던 사례가 두 번(2002-2010년)에 불과했음을,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 들이 조별본선에서 나란히 고배를 마셨음을 감안하면 한국과 일본의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의 결과는 칭찬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한국과 일본은 우루과이와 파라과이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전반 중반부터 허리에서 패스 게임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경기 흐름을 장악할 수 있었고 박스 바깥에서 골 기회를 창출하려는 의지가 두드러졌습니다. 패스 게임 과정에서 터프한 수비력을 지닌 상대 미드필더 뒷 공간을 공략한 것은 한국 축구의 기술력이 4년 전 보다 눈에 띄게 진보했음을 말합니다. 그것도 상대는 남미의 다크호스 였습니다. 문제는 그 이점을 골을 통해 승화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일본은 기존의 패스 게임을 버리고 선 수비-후 역습 체제의 실리축구를 통한 '이기는 축구'로 카메룬-덴마크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적어도 수비 조직력에서는 한국보다 더 좋았습니다. 포백을 골문 바깥 라인으로 고정시키고 엔도-아베-하세베로 짜인 미드필더들은 짜임새 넘치는 협력 수비에 상대 공격을 봉쇄하려는 투쟁심까지 가미됐습니다. 상대 공격을 끊으면 그 즉시 빠른 공수 전환을 통해 역습으로 재미를 봤으며 그 상황에서 반칙까지 얻어내 프리킥 골을 노렸습니다. 본선 4경기 중에 단 1골만 실점했지만 문제는 파라과이 같은 똑같은 실리축구 컨셉을 앞세운 팀을 만나면서 공격력에 문제점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 한 가지 아쉬운 공통점은 대형 골잡이의 부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박주영과 혼다 케이스케는 출중한 능력을 자랑하는 공격수라고 말할 수 있지만 공격수라고 해서 모두가 골잡이로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디에고 밀리토, 곤살로 이과인, 리오넬 메시(이상 아르헨티나) 다비드 비야, 페르난도 토레스(이상 스페인) 파비아누(브라질)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 웨인 루니(잉글랜드) 디디에 드록바(코트디부아르) 같은 전형적인 골잡이들과 박주영-혼다의 컨셉은 분명히 다릅니다.

골잡이라고 해서 무조건 골을 잘 넣는것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상대 수비를 흔들 위치를 찾거나, 박스 주위에서 날아드는 동료 선수의 공을 받을때 상대 수비를 제치는 민첩성, 상대 수비를 과감히 제낄 수 있는 발재간과 스피드, 볼 키핑력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미드필더들의 공격 지원과 상관없이 스스로 골을 해결지을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아무리 골을 잘 넣는 선수라도 골잡이로서 최상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2선에서의 패스에 의존하는 골잡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테오파니스 게카스(그리스)와 비야의 차이점 입니다.

만약 한국과 일본이 특출난 골 생산을 자랑하는 대형 골잡이가 있었다면 남아공 월드컵 8강 고지에 올랐을지 모를 일입니다. 한국은 박스 바깥에서 경기를 주도했지만 박스 안에서 골을 해결지을 선수가 없었습니다. 박주영이 2선 플레이에 힘을 실었지만 루가노-고딘으로 짜인 상대 센터백 조합을 넘지 못해 골문과 가까운 거리에서 위협적인 슈팅을 날리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일본의 혼다는 경기 초반부터 파라과이 수비수들의 발에 묶이고 말았습니다. 후방에서 공을 받아야 할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하다보니 상대 수비의 먹잇감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일본 공격이 파라과이 진영에서 여러차례 끊어지는 원인이 됐습니다.

그런데 혼다는 공격수가 아닙니다. 월드컵 본선 직전까지 오른쪽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오갔던 미드필더였습니다. 팀의 원톱을 소화했던 오카자키 신지가 상대팀들의 강력한 압박에 이렇다할 대처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축구는 경기 조율과 테크닉이 뛰어난 미드필더들을 집중적으로 키웠지만 특출난 공격수가 배출되지 않는 문제점을 드러냈고 그 여파가 오카다호에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오카다 감독은 오카자키를 벤치로 내리고 미드필더 중에서 가장 득점력이 좋은 혼다를 원톱으로 배치했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혼다가 공격수로서의 위치선정, 공을 받을때의 순간적인 위치가 매끄럽지 못한 것은 일본 입장에서 아쉬운 일 이었습니다.

일본에 비하면 한국은 그나마 좋은 여건입니다. 박주영이 두 시즌 동안 프랑스리그에서 공격력을 연마하며 업그레이드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리그는 다부진 체격과 거친 수비력, 탄력까지 갖춘 수비수들이 즐비하다보니 공격수들이 골 넣기 쉽지 않은 리그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동양인 공격수가 정착하기에는 불리함이 있는데 박주영이 기교와 파워에서 결코 밀리지 않음을 입증했습니다.

하지만 한국도 대형 골잡이 부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동국은 국제 무대에서 신뢰를 얻지 못했고, 염기훈-이승렬은 전형적인 공격수가 아니며, 유병수-김영후는 대표팀 경험이 부족하거나 부름을 받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J리그처럼 외국인 골잡이에 대한 의존도가 심한 편인데, 이것이 대형 골잡이 발굴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프로팀 성적 관점에서는 외국인 골잡이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자국 축구의 실력적인 관점에서 보면 토종 골잡이를 집중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집니다. 물론 토종 골잡이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해야겠지만 문제는 그 경쟁을 이겨내 대표팀 공격수로서 꾸준하게 맹활약을 펼친 선수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 축구의 공통된 고민이자 과제입니다.

물론 박주영은 2003년 부터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대형 골잡이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각급 대표팀과 FC서울에서 많은 골을 넣으며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을 이겨낼 축구 천재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박주영 컨셉을 대형 골잡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2006~2007년 부상 및 혹사 여파에 따른 슬럼프로 골 생산이 떨어졌고 2008년 AS 모나코 이적 이후에는 공격을 조율하거나(2008/09시즌) 공중볼 다툼에 주력하면서(2009/10시즌) 전형적인 골잡이 보다는 공격수로서 모든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만능형 공격수로 변신했습니다.

그런데 박주영이 남아공 월드컵 4경기에서 19개의 슈팅을 날려 1골을 기록한 것은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월드컵에 출전한 32개국 선수들 중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21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슈팅을 날렸지만(16강까지) 문제는 그 시도에 비해 결과가 아쉬움에 남습니다. 물론 호날두는 맨유 시절부터 슈팅을 난사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지만, 박주영이 공격수로서 확실히 골을 해결지으려면 주어진 골 기회를 놓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프랑스 리게앙에서는 2008/09시즌 31경기 5골, 2009/10시즌 27경기 8골(프랑스컵 포함 9골)로 지난 시즌보다 골 숫자가 많았지만, 정작 골 역할을 도맡는 선수는 왼쪽 윙어 네네입니다.

하지만 박주영이 2006~2007년의 슬럼프를 딛고 다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지금까지는 골잡이로서의 성장보다는 만능형 공격수로서의 성장이 두드러졌지만 공격수는 골로 말하기 때문에 이제는 골 생산에 다시 눈을 뜰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최전방에서 스스로 공격을 해결짓는 능력도 길러야 합니다. 골잡이라면 적은 골 기회 속에서도 골을 터뜨릴 수 있는 기질이 출중해야 합니다. 만약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면 골에 대한 잣대에서 자유롭지 않을겁니다. 프리미어리그는 출중한 경기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의 유입이 잦은 치열한 생존의 장이기 때문에 자신의 진가를 골을 통해 증명해야 합니다. 아울러 박주영 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도 대형 골잡이를 집중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