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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안정환, 나이지리아전 슈퍼 조커로서 적절할까?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공격수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공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한 선수는 안정환(34, 다롄 스더) 입니다. 안정환은 그동안 허정무호에서 요원했던 슈퍼 조커로서 두각을 떨칠 것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그리스-아르헨티나전에서 출전할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특히 아르헨티나전에서는 후반 중반 1-2로 뒤진 상황에서 출전하는 듯 했으나 끝내 허정무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안정환의 남아공행은 몇 개월 전까지 불투명 했습니다. 허정무호의 초기 멤버로 활약했으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데다 이미 전성기가 지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존 공격자원들 중에서 안정환 만큼의 기술과 골 결정력, 조커로서의 강력한 임펙트를 지닌 선수들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후반전에 승부의 흐름을 결정지을 수 있는 막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적임자가 없었던 것이 기존 허정무호의 약점이었고 결국 안정환이 대표팀에 다시 승선했습니다.

안정환은 지난 3월 3일 코트디부아르전에서 조커로 투입해 최전방에서 끊임없이 슈팅 및 패스 기회를 마련하며 대표팀 공격에 힘을 실었습니다. 그래서 동료 선수들의 유기적인 콤비 플레이를 유도하는 인상 깊은 활약을 펼쳤고 그것이 발판이 되어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90분을 뛸 수 있는 체력이 부족하지만 코트디부아르전을 계기로 후반전에 팀 공격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임펙트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허정무호의 철저한 슈퍼 조커로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안정환은 월드컵 직전에 치렀던 벨라루스-스페인전에서 부진했습니다. 일본 원정에서 허리에 담이 걸린 여파도 있었지만 두 경기에서 아무런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허정무호에서의 입지가 좁아지는 원인이 되면서 그리스-아르헨티나전에 결장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경기 흐름을 비춰볼 때 안정환의 부진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미드필더진에서 기본적인 패싱 게임이 되지 않았고 특히 스페인전에서는 한국이 점유율에서 밀렸기 때문에 공격수가 이렇다할 공격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안정환의 부진은 본인도 어쩔 수 없었던 결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안정환의 부진이 매끄럽지 못했던 이유는 과거의 스타일과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전성기 시절의 안정환은 미드필더진으로 활발히 내려오면서 동료 공격 옵션과 거리를 좁혀 정확한 패스를 통한 공격을 전개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안정환은 체력 저하 때문에 움직임이 무뎌지면서 활동 반경이 좁아졌습니다. 코트디부아르전에서는 부단히 뛰려는 의지가 확고했지만 벨라루스-스페인전에서는 상대 수비진을 위협할 수 있는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전성기가 지났음을 각인시키는 순간 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허정무호는 월드컵 본선 직전까지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이면서 조커로 가용할 수 있는 자원들이 늘어났습니다. 이동국은 1년 동안 평가전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월드컵을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염기훈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아르헨티나전에서 교체 투입했습니다.(나이지리아전에서 박주영-염기훈 투톱 출격 유력) 근래에 눈부신 성장을 했던 이승렬, 미드필더진에서 패스 게임을 유도할 수 있는 김보경-김재성도 허정무호의 조커로서 유용한 자원들 입니다.(공격 옵션은 아니지만, 김남일은 월드컵 본선에서 2경기 연속 교체 출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무게감은 안정환과 다릅니다. 안정환은 한국 축구 역대 월드컵 본선 최다 득점자(3골, 박지성과 동률)로서 월드컵 무대에서 골을 넣은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미국전, 2006년 독일 월드컵 토고전에서 조커로 출전하여 한국에게 귀중한 결과를 안겨주는 골을 넣었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 주눅이 들지 않고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월드컵 뿐만 아니라 2003년 일본 원정 결승골을 비롯한 몇몇 A매치에서 조커로 투입해 골을 넣거나 인상깊은 활약을 펼쳤던 경험이 있어 '슈퍼 조커'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허정무호가 월드컵 본선에서 공간을 활용한 공격이 유기적이지 못합니다. 동료 선수에게 정직하게 이어주는 패스 위주의 공격 패턴을 진행하면서 상대 수비에게 읽히는 경향이 두드러졌기 때문이죠. 그리스전에서는 공격 옵션들이 빠른 문전 침투를 통해 느린 발의 상대 수비를 간파했지만 아르헨티나전에서는 공격 패턴이 상대에게 읽히면서 공격이 번번이 끊어지는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패스를 받는 선수가 상대 수비수 사이의 빈 공간쪽으로 교묘하게 들어가면서 후방의 패스를 유도하거나, 트라이앵글을 형성해서 원터치-투터치 패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물론 박지성-김정우-기성용-이청용으로 짜인 미드필더진의 개인 능력은 모두 훌륭합니다. 4명의 선수는 거의 2년 동안 허정무호에서 함께 발을 맞추면서 조직력도 나름 키웠습니다. 문제는 월드컵 본선에서 그동안 쌓아왔던 조직력이 유명무실하다는 것입니다. 상대 압박을 간파할 수 있는 유기적인 패스 전개가 되지 않으면 안정환이나 이동국 같은 공격수들이 골을 해결지을 수 있는 기회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미드필더진의 패스 게임이 떨어지면 상대 수비에게 차단당할 가능성이 많으며 이것은 곧 공격수의 고립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안정환이 출전해도 미드필더진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슈퍼 조커로서의 제 기능을 다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이지리아전은 미드필더들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패스를 주거나 받아내는 움직임의 능동성을 키우며 킬패스를 노려야 합니다. 나이지리아의 수비는 아르헨티나-그리스 공격의 킬패스에 약한 단점을 드러냈고 좌우 풀백들이 뒷 공간을 허용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미드필더진이 얼마만큼 공격 기회를 효율적으로 만들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공격수의 골 여부가 결정됩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그리스전에서 몇 차례 골 기회를 날렸고 염기훈은 전형적으로 골을 잘 넣는 공격수가 아닙니다. 두 선수가 골을 결정짓지 못하면 안정환이 슈퍼 조커로서의 존재감을 더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나이지리아전에서 패스 게임의 문제점이 그대로 재현되면 안정환의 필요성이 적어집니다. 안정환이라는 슈퍼 조커를 두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이 찾아오면 안정환 보다는 패스 게임의 질을 키우는 자원이 더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안정환이 코트디부아르전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이유는 한국의 미드필더진이 상대 중원을 장악했기 때문에 좋은 경기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공격수는 골을 넣는 포지션이지만 현대 축구에서는 미드필더진의 효율적인 볼 배급과 유기적인 움직임이 중요시되기 때문에 미드필더들의 단합된 조직력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결국, 안정환의 나이지리아전 맹활약 여부는 미드필더진이 얼마만큼 지원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전성기가 지난 안정환은 스스로의 힘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역량이 떨어졌지만 현란한 기술과 지능적인 플레이가 다른 공격 옵션들을 압도하기 때문에 미드필더들의 뒷받침이 요구됩니다. 과연 허정무 감독이 나이지리아전에서 승부의 판세를 결정지을 조커로서 누구를 기용할지, 그 중에 한 명이 안정환이 될 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