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선생' 박주영(25, AS 모나코)은 한국 공격에 없어선 안 될 선수입니다. 모나코에서 두 시즌 동안 붙박이 주전으로 출전하면서 기량 업그레이드에 성공했고 제공권 장악능력 및 몸싸움이 향상되면서 타겟맨으로 눈을 뜨게 됐습니다. 현대 축구가 원하는 공격수는 한 가지 역할보다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만능형인 만큼, 타겟맨과 쉐도우를 모두 소화하면서 유럽리그 경험까지 더해진 박주영의 능력을 놓고 보면 한국 최고의 공격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주영의 지난 12일 그리스전 활약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상반적입니다. 힘과 높이를 강점으로 삼는 그리스 수비진을 상대로 공중볼을 따내면서 제공권에 강한 이미지를 심어줬고, 빠른 문전 침투로 그리스 수비수들의 느린 발을 공략하여 후방 공격 옵션들에게 빈 공간을 열어줬습니다. 하지만 최전방 공격수임에도 여러차례의 골 기회를 놓치면서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특정 선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골이 부족했다'고 꼬집은 것은 박주영의 골 결정력 부족을 아쉬워했던 대목입니다.
박주영, 아르헨티나전이 매우 중요한 이유
박주영에게 아르헨티나전은 그리스전의 골 결정력 부족을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한국이 아르헨티나전에서 선 수비-후 역습을 바탕으로 미드필더들이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펼치기 때문에 박주영의 골 역량을 기대할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염기훈-박지성-이청용은 문전 침투보다는 하프라인 부근을 중심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박주영이 아르헨티나전에서 골을 해결지어야 합니다. 그리스전에서는 골 기회를 놓치는 불운에 시달렸지만 타고난 골 결정력을 자랑했던 선수였기 때문에 그 장점이 반드시 살아나야 한국이 이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박주영의 골 감각이 평소같지 않습니다. 지난 2월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이후 8경기 연속 무득점에 시달린데다 안면 부상을 비롯 햄스트링 부상이 재발된 상태에서 지난 5월 허정무호에 합류했습니다. 지난달 24일 일본전에서 페널티킥 골을 넣었지만 아직까지 필드골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그리스전에서는 활발한 움직임을 나타냈지만 얼마만큼 꾸준히 자기 폼을 유지할지 의문입니다. 올 시즌에만 팔꿈치 탈골을 비롯한 6번의 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 여파가 월드컵 본선에서 또 재현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전은 지금까지 박주영이 치렀던 경기와는 상당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월드컵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전은 세계 축구팬들과 유럽 빅 리그 스카우터들의 시선과 이목이 집중되는 경기이기 때문에 박주영을 비롯한 한국 선수들이 자신의 이름을 널리 떨칠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지난 16일 브라질전에서 1-2로 패했으나 탄탄한 조직력과 날카로운 역습을 노렸던 북한 축구가 세계인들의 찬사를 얻었고 정대세가 위협적인 공격력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것이 그 예 입니다. 그동안 폼이 떨어졌던 박주영에게는 아르헨티나전이 엄청난 동기부여가 될 것입니다.
박주영은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널리 떨친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2005년 U-20 월드컵에서는 한국의 에이스로 주목 받았으나 국가 대표팀 원정을 치렀던 체력 저하에 시달린 끝에 유럽 스카우터에게 '실망스러웠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부진을 일관한 끝에 교체됐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한국의 답답하고 무기력한 공격력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난 그리스전에서 한국의 승리를 공헌했으나 세계 축구팬들을 어필할 수 있는 임펙트(골)가 부족했습니다.
물론 박주영은 프랑스리그에서 주목받는 대기만성형 공격수로 꼽힙니다. 하지만 모나코는 박주영이 몸담았던 두 시즌 동안 프랑스리그 중위권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박주영은 팀 성적 때문에 UEFA 챔피언스리그 및 유로파 리그 같은 유럽 클럽 대항전 출전 경력이 없었습니다. 선수 개인의 기량을 놓고 보면 유럽 빅 클럽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만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잠재력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인 강팀이기 때문에 그동안 모나코에서 갈고 닦았던 실력을 맘껏 폭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주영은 아르헨티나전의 원톱으로 출전하여 월터 사무엘, 마르틴 데미첼리스 같은 세계적인 센터백들과 매치업을 펼칩니다. 공교롭게도 사무엘과 데미첼리스는 각각 인터 밀란과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서 올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인터 밀란 우승)을 공헌했던 주역들 입니다. 올 시즌 유럽 무대에서 빼어난 수비력을 자랑했던 사무엘-데미첼리스 조합과 박주영의 만남은 한국vs아르헨티나전을 지켜보는 축구팬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할 것입니다. 프랑스리그에서 세계적인 센터백들과 겨룰 기회가 적었던 박주영에게 중요한 고비가 다가온 것입니다.
'박주영과 경합할' 사무엘과 데미첼리스는 유럽 축구에서 수준높은 맨 마킹을 자랑하는 선수들입니다. 세밀한 태클과 엄청난 파워, 강력한 투쟁심을 비롯 오랫동안 유럽 무대에서 갈고 닦았던 경험을 앞세워 그동안 수많은 공격수들을 요리했습니다. 특히 사무엘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루시우와 함께 올리치-즐라탄-드록바 같은 세계 최정상급 타겟맨들을 봉쇄하며 인터 밀란의 유럽 제패를 이끈 센터백으로 유명합니다. 폼이 부쩍 오른 상태에서 월드컵 본선에 나섰기 때문에 그를 상대하는 공격수들이 분발하지 않을 수 없으며 박주영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사무엘과 데미첼리스는 개인 역량의 출중함이 조합에서 꽃을 피우지 못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가장 큰 약점이 고질적 수비 불안이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가 지난해 남미 예선에서 부진했던 이유는 수비수끼리의 호흡이 맞지 못했으며 가고-마스체라노로 짜였던 더블 볼란치의 중원 장악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남미 예선을 뛰지 않았던 사무엘이 대표팀에 다시 복귀한 이후부터는 수비진이 안정되었지만 지난 12일 나이지리아전에서 민첩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남겼습니다. 사무엘-데미첼리스의 호흡이 무르익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만약 박주영이 그리스전처럼 상대 수비진을 과감히 파고들며 부지런히 공격 기회를 창출하면 아르헨티나전에서 값진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사무엘-데미첼리스가 상대 공격 옵션의 빠른 침투에 약점을 드러내면서 뒷 공간을 내줬기 때문에 박주영이 그 틈을 파고들어 후방 공격 옵션에게 침투 공간을 벌어주거나 직접 골을 해결지어야 합니다. 만약 두 선수를 공략하여 골을 넣으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무엘과 데미첼리스는 세계적인 센터백들이기 때문에 두 명의 무게감을 이겨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입니다.
또한 박주영은 올해 여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이 유력합니다. 지금까지는 모나코에 충성하기 위해 이적설을 일축했으나 2004년 부터 지금까지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영입 관심을 받았고 맨유의 러브콜을 받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현재 풀럼-에버턴-에스턴 빌라의 영입 관심을 받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전 활약에 따라 또 다른 유럽 클럽들의 관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박주영이 아르헨티나전에서 맹활약을 펼친다면 자신의 몸값이 껑충 뛰어오르는 것을 비롯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를 수 있는 뜻깊은 순간을 보낼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전이 자신의 축구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