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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1위vs105위, 북한 축구는 박수 받아야 한다

 

김정훈 감독이 이끄는 북한이 '세계 최강' 브라질과 상대하는 모습은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출전했던 한국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은 우승후보 독일을 상대로 전반전에 3골 내주는 불안한 경기를 펼쳤는데 후반전에 2골을 넣으며 추격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골을 넣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비록 동점에 실패했지만 강팀 독일에게 0-3으로 패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무서운 뒷심'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태극전사들의 투지가 당시 초등학생 이었던 저의 마음을 자극시켜 축구팬으로 이끌었습니다.

북한은 브라질전에서 1-2로 패했습니다. 전반전에 0-0으로 비기면서 브라질의 공격을 능수능란하게 차단하는 저력을 발휘했지만 후반전에 마이콘과 엘라누에게 오른쪽 진영에서 기습적인 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후반 10분 마이콘이 오른쪽 구석에서 골대와 골키퍼 리명국 사이의 틈으로 슈팅을 밀어넣는 장면은 55분 동안 0-0으로 잘 버텨왔던 북한의 사기가 떨어졌을 것입니다. 후반 27분에는 엘라누에게 추가골을 허용하면서 심리적으로 힘든 경기를 펼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저력은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대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0-2로 밀리고 있었으나 금새 평정심을 되찾아 브라질 공격 옵션들을 압박했고, 패스를 주고 받으며 점유율을 확보하는 침착한 경기 운영을 펼쳤습니다. 상대팀에 공을 빼앗기면 역습을 내주면서 추가골을 허용할 수 있기 때문에 원래의 페이스를 되찾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리고 후반 44분, 지윤남이 브라질 왼쪽 진영에서 정대세의 헤딩패스를 받자 상대팀 선수 3명을 제치고 왼발로 골망을 흔드는 '뜬금슛'을 넣었습니다. 북한의 패색이 짙은 상태였지만 그것을 무색케 하는 강렬한 임펙트의 골 이었습니다.

비록 북한이 브라질에게 패했지만 지지 않으려는 뒷심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지윤남의 골을 통해 그 정점을 확실하게 찍어줬고 무기력하게 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골로 증명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골키퍼이자 올 시즌 인터 밀란 트레블의 주역으로 활약한 세자르를 상대로 넣은 골 이었기에 값어치가 컸습니다. 그것도 세계 최정상급 수비 조직력을 자랑하는 브라질 수비수들을 농락하여 상대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아무리 출중한 공격 옵션이라도 브라질의 뒷문을 공략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지윤남의 골 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은 북한의 밀집 수비 였습니다. 북한은 5백을 기반으로 미드필더들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주문하면서 정대세-홍영조 투톱에게 전방 압박을 맡기는 전형적인 수비 축구를 펼쳤습니다. 출중한 공격 옵션들이 즐비한 브라질에게 공간을 내주지 않기 위해 협력 수비를 펼치는데 주력했습니다. 특히 브라질의 원톱과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는 파비아누, 카카를 봉쇄하는데 성공하면서 브라질의 중앙 공격을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파비아누가 브라질 부동의 원톱이고 카카가 3년 전 발롱도르 수상자이자 세계 최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임을 상기하면, 북한의 수비는 매우 견고했습니다. 55분 동안 무실점으로 잘 버텨낸게 대단할 따름입니다.

경기 운영도 매끄러웠습니다. 브라질이 전방 압박하면 지체없이 백패스를 돌리며 볼 배급 공간을 확보했는데 어떠한 버벅거림이 없었습니다. 하프라인을 넘어선 이후에는 브라질 선수들의 틈 사이로 한 박자 빠른 전진패스를 날렸습니다. 다른 팀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브라질을 상대로 주눅들었을지 모르지만 북한에게는 그런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세밀한 패싱력을 바탕으로 하는 역습으로 브라질에 과감한 도전장을 내민 북한에게 배짱이 느껴졌던 이유입니다.

정대세가 골 욕심이 앞선 모습은 경기를 보는 이들을 아쉽게 했습니다. 특히 지윤남의 골 이후 2번의 슈팅 기회가 있었는데 침착하게 마무리했다면 상대 골문 안쪽으로 빨랫줄처럼 향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정대세는 좌우 측면과 최전방, 2선까지 활발히 뛰어다니면서 수비에 임하고 공격까지 펼치느라 많은 힘이 소모된 상태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브라질 센터백 주앙에게 밀리면서 후반 중반부터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전반전부터 브라질 선수들의 깊은 태클에 시달리는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브라질전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게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브라질과의 뚜렷한 실력 차이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며 선전했기 때문입니다. 브라질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1위지만 북한은 무려 105위 입니다. 이번 경기는 207명이 정원인(FIFA 회원국이 207개국) 학교에서 전교 1등과 전교 105등의 시험 성적을 평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더욱이 북한은 상위 50% 안에도 들지 못합니다. 물론 축구는 변수가 많고 이변이 속출하기 쉬운 스포츠지만, 북한이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선전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더욱이 북한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훈련을 했습니다. 브라질전을 치르기 며칠전까지 남아공의 동네 헬스장에서 훈련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월드컵 선전을 꿈꾸었습니다. 세계에서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브라질 선수들을 상대한 북한은 최선을 다하는 감동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재일동포 3세로 일본에서 성장했으나 일본 사회의 차별을 받아야 했던 정대세는 브라질전을 앞두고 국가가 연주될 때 눈물을 흘리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천안함 사건 때문에 남북 관계가 악화되면서 북한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며 저도 북한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축구는 축구일 뿐입니다. 축구는 강팀의 무조건적인 승리보다는 약팀이 강팀을 제압하거나 선전하는 짜릿함이 더 즐겁고 매력이 넘칩니다. 북한과 브라질전만을 놓고 보면 축구의 진정성을 보여준 북한에게 시선이 모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선전은 축구가 강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일깨웠습니다. 강팀과 경기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승부를 펼칠 수 밖에 없지만 축구는 불확실성이 뚜렷한 스포츠 종목이기 때문에 의외의 경기 내용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브라질전은 애초부터 어려웠던 승부였지만 '포기'보다 '도전'을 택한 북한의 의지는 굳건했습니다. 브라질전에서의 경기력이라면 포르투갈-코트디부아르전에서 좋은 결과를 거둘 가능성이 크며 어쩌면 16강에 진출할지 모릅니다. 과연 북한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진출의 위업을 44년 만에 재현할지 관심이 모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