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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차범근 해설위원, 일본 축구를 비판한 까닭

 

차범근 SBS 축구 해설위원은 일본과 카메룬의 경기를 중계하던 도중 "일본이 1998년 이후 굉장히 발전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일본의 미드필더 조직력은 좋지만 한 방의 마무리가 없기 때문에 정체 현상을 가졌다"며 일본 축구에 대한 비판을 했습니다. 아울러 "그림만 보면 카메룬이 이기는 것 같다"며 카메룬전에서 1-0으로 승리했던 일본의 경기 운영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방송 도중에 왜 일본 축구를 비판했을까요?

 

오카다 다케시 감독이 이끄는 일본 축구 대표팀이 카메룬과의 남아공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승리했습니다. 일본은 14일 저녁 11시(이하 한국시간) 플룸론테인에 소재한 프리 스테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E조 본선 1차전 카메룬전에서 1-0으로 승리했습니다. 전반 39분 마쓰이 다이스케가 오른쪽 측면에서 올린 왼발 크로스를 혼다 케이스케가 문전에서 상대 수비수 사이를 비집고 왼발로 가볍게 밀어 넣으며 결승골을 넣었습니다. 이로써 일본은 원정 월드컵 사상 첫 승을 올렸으며, 덴마크를 2-0으로 격파한 네덜란드에 이어 골득실에 의해 E조 2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월드컵 4강에 진출하겠다"는 팀이 맞는지 의심 될 정도로 최악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슈팅 숫자 5-11(유효 슈팅 5-5, 개), 점유율 45-55(%), 패스 정확도 59-71(%), 패스 시도 횟수 389-481(개, 패스 성공 횟수 230-341, 개)를 기록했으나 모두 카메룬에게 뒤졌습니다. 오카다 감독은 지난 14일 FIFA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은 수비만 하지 않을 것이다. 테크니션들이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경기를 펼칠 것이다"며 카메룬전에서 공격 축구를 하겠다고 선포했으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연막 작전 가능성도 있지만 패스 정확도가 60%도 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은 90년대 부터 개인기와 패스를 중시하는 남미식 플레이를 선호 했습니다. 축구 유망주를 브라질에 파견하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로 남미 축구를 흡수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했습니다. 그 틀은 지금까지 유지되면서 미드필더진의 패스를 바탕으로 유기적인 콤비 플레이를 추구하는 아기자기한 공격을 펼쳤습니다. 특히 숏 패스를 여러차례 번갈아가면서 점유율을 늘리는 패턴은 일본 축구의 전형적인 공격 스타일 입니다.

 

그런데 일본 축구 고유의 '패스 축구'가 카메룬전에서는 '롱볼 축구'로 변형 됐습니다. 일본은 숏 패스 93개, 미디움 패스 196개, 롱 패스 100개를 날렸는데 숏 패스보다 롱 패스 횟수가 근소하게 많습니다. 숏 패스 정확도는 81-79(%)를 기록하면서 카메룬을 앞섰지만 롱패스 27-42(%), 미디움 패스 65-82(%)로 카메룬에게 밀렸습니다. 특히 일본의 롱볼 역할을 맡았던 나카자와와 툴리우는 각각 15개와 13개의 롱패스를 날렸으나 4개와 1개만 정확하게 연결했을 뿐입니다. 카메룬전에서 롱볼에 비중을 두었으나 비효율적인 공격을 키운 셈입니다.

 

물론 롱패스를 정확하게 연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부정확한 패스를 남발한 경기 운영은 문제가 있습니다. 경기 내내 짜임새있는 패스워크와 조직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던 수준 낮은 경기를 펼친 것입니다. 좌우 측면과 중앙을 골고루 활용하는 공격 패턴보다는 원톱으로 출전한 혼다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했고, 혼다의 패스 정확도는 64%에 불과했습니다. 정확한 패싱력을 자랑하던 평소의 혼다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혼다보다는 부지런한 움직임과 공수 양면에 걸친 착실한 플레이로 허리를 책임진 마쓰이가 더 좋은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카메룬이 졸전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에용 에노, 요엘 마티프 같은 A매치 출전 경험이 15경기도 안되는 젊은 미드필더들이 선발 출전을 했는데 일본의 압박 수비에 흔들리는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젊은 미드필더 사이에서 중심을 잡았어야 했을 장 마쿤은 전형적인 홀딩맨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압박을 스스로 풀어낼 수 있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카메룬 미드필더들의 부진은 세계 톱클래스 공격력을 자랑하는 사뮈엘 에토의 최전방 고립으로 이어졌고 웨보-슈포모탱 같은 또 다른 공격 자원들도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일본이 압박에 중심을 두는 수비 축구를 펼쳤다고 해서 경기력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한국 축구, 2009/10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2차전에서 FC 바르셀로나를 격파한 인터 밀란의 사례처럼 수비 축구도 옹호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비 축구라도 짜임새를 잃은 경기 운영을 펼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카메룬의 공격을 차단하는 철저한 수비는 좋았지만 그 이후 공격으로 전환하면서 롱볼을 남발하고 패스 미스가 속출하는 것은 좋은 경기를 펼쳤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일본에게 있어 카메룬전은 16강 진출을 위해 이겨야 했던 경기 였습니다. 기존의 패스 축구와 점유율 확보로는 상대팀에게 일격을 허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 특유의 스타일을 버리고 수비를 중요시하는 실리축구로 변신했습니다. 월드컵 본선 이전까지 최근 4번의 평가전에서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카메룬전을 이겨야 한다는 의식이 뚜렷했을 것입니다. 오카다 감독이 패스 축구를 포기하고 이기는 전략으로 바꾼 것은 일본 입장에서 최상의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고 옹호받을 수 없습니다. 일본 축구를 비판한 차범근 해설위원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