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상대인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는 강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자신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특별한 선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는 지난달 16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에콰도르의 경기가 끝난 뒤에 가진 출정식에서 '대한민국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이러한 내용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불과 11년 전까지 K리그 수원삼성 입단 테스트 탈락, 대학 진학 실패 위기, 올림픽 대표팀 발탁 후 인맥으로 대표팀에 뽑혔다는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이제는 명실공히 한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축구영웅'으로 거듭났습니다.
축구팬들이라면 머릿속에서 '박지성 없는 한국 축구는 지금쯤 어떤 행보를 걸었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 떠올려 봤을 것입니다. 박지성이 수원공고 졸업 무렵 김희태 당시 명지대 감독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명지대 입학 당시에는 신입 축구부원이 모두 선발된 상태였으나 테니스부 정원이 1명 모자르면서 간신히 대학 진학에 성공했습니다. 마치 운명같은 드라마를 보는 듯 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국민 모두의 시선과 이목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박지성은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가 아닙니다.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이 지난해 4월 박지성의 TV 다큐멘터리에서 "고1때는 키가 164~165cm 정도에 너무 왜소하고 힘이 약했어요"라고 말했던 것 처럼 평범한 성장을 했습니다. 안흥중 시절에는 축구 명문으로 유명한 정명고에 입학할 예정이었으나 주전 출전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승과 인연이 멀었던 수원공고로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 당시 "대학에 못가면 통닭집을 차리겠다"는 농담을 했을 정도로 국내 축구계에서 주목을 받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1998년 전국체전 우승을 이끌었고 이듬해 명지대 입학과 동시에 올림픽 대표팀 발탁으로 태극 마크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박지성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입지전적' 입니다. 한때 대학팀 입단 조차 힘들었던 신세였으나 이제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축구 선수로 거듭났습니다. 2000년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는 팀의 성적 부진으로 이듬해 J리그에서 한 시즌을 소화했지만 4년 뒤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을 거쳐 세계 최정상급 클럽인 맨유에 입단했고, 지금까지 맨유에서 다섯 시즌 동안 주축 선수로 활약 중입니다. 10년 전에는 올림픽 대표팀 발탁 과정에서 인맥 논란에 시달려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으나 이제는 국가 대표팀에 없어선 안 될 대들보입니다. 남아공 월드컵에 나선 박지성의 존재감은 2002년의 히딩크 감독과 견줄만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박지성은 천부적인 컨셉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렸을적 부터 특출난 기량으로 축구계의 주목을 받는 촉망받는 유망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한국과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노력하고 배우는 자세에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경기마다 성심 성의껏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고 훈련에 임하면서 다른 누구보다 열심히 뛰려고 했습니다. 항상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붙고 헌신하려는 자세를 보이면서 감독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베컴-로이 킨-판 니스텔로이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을 내쳤던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얻게 됐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자기 자신을 특별한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공격 포인트를 위해 뛰는 이기적인 모습보다는 팀을 위해 헌신하는 이타적인 모습을 자신의 무기로 삼아 지금까지 달려왔기 때문이죠. 이러한 박지성의 성공 스토리는 운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운은 결국 사람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며 박지성이 손에 움켜 잡았습니다. 축구는 개인이 아닌 팀 스포츠이며,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들이 감독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히딩크-퍼거슨 같은 세계적인 명장들이 박지성을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 입니다. 두 명의 명장에 의해 기량 연마를 거듭했던 박지성은 마침내 세계적인 축구 선수로 거듭났고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끌 적임자로 떠올랐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박지성은 공격력이 부족하다", "박지성은 맨유 클래스에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이적하는 것이 낫다", "박지성은 카리스마가 부족해서 한국 대표팀 주장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말입니다. 박지성이 루니-호날두-메시 처럼 특출난 공격력을 자랑하는 선수가 아니고, 맨유의 붙박이 주전이 아닌 로테이션 멤버이고, 홍명보-김남일 같은 카리스마형 주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편견이 불거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박지성이라는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이러한 말을 하고 싶습니다. 박지성이 있었기에 한국 축구가 그토록 요원했던 유럽 빅 클럽 선수를 배출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영광을 비롯 2006년 독일 월드컵 토고-프랑스전에서 선전했고, 많은 국민들이 박지성의 성장기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으며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에 대한 희망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축구가 인생의 축소판인 것 처럼, 성공은 엘리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박지성이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충분히 입증했습니다. 그런 박지성이 있었기에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에서 승리했고 16강을 넘어 8강 진출의 희망을 얻게 됐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없었다면 한국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꿈에 그쳤을지 모릅니다. 허정무호는 2008년 9월 북한과의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졸전을 펼친 끝에 박지성을 주장으로 선임했습니다. 대표팀의 과제였던 세대교체를 단행하여 젊은 선수들이 박지성이라는 정신적인 버팀목에 힘을 얻어 실전에서 주눅들지 않고 최상의 경기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유럽 진출 및 롱런을 원하는 젊은 선수에게 있어 '맨유 선수' 박지성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호흡할 수 있는 기회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소중한 동기부여로 작용했고, 이것이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이 남아공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고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쏟아졌습니다.
박지성의 공격력이 부족하다는 일부의 주장도 공감할 수 없습니다. 박지성은 루니-호날두-메시 같은 특출난 공격력을 주무기로 삼는 선수가 아니지만 이들과는 컨셉이 다릅니다. 철저히 팀 플레이를 펼치는 성향이며 그 원동력에는 풍부한 전술 이해 능력이 뒷받침 됐습니다. 좌우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가리지 않고 감독이 원하는 역할을 즉각적으로 수행하면서 스위칭-역습-공간 창출에 강한 진가를 발휘했으며 공수 양면에 걸쳐 고른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플레이가 있었기에 맨유에서 다른 누군가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고 그 진가가 허정무호에 이식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박지성을 한국 축구의 에이스로 치켜 세웁니다. 하지만 박지성이 대표팀의 중심 선수라고 해서 개인 기량을 맘껏 뽐내는 선수는 아닙니다. 그동안의 허정무호 경기에서도 그랬고 이번 그리스전에서도 나타났던 것 처럼, 박지성은 팀 플레이 위주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공을 주고 받는 연계 플레이를 엮으면서 원터치 패스 및 종패스를 노리는 공격 패턴은 박주영-염기훈-이청용 같은 공격 옵션들이 후방에서 든든한 공격 지원을 받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고 공을 따내면서 수비 옵션들이 부담감을 줄이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맨유에서 헌신하는 플레이가 대표팀에 그대로 이어지면서 그리스전 완승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박지성은 그리스전에서 후반 6분 상대 수비수의 패스미스를 가로채 특유의 순간 돌파력으로 전방을 파고들어 골을 성공시켜 한국의 2-0 완승을 이끌었습니다. 한국의 쐐기를 박기 위해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여 골을 넣은 박지성의 영리함은 빅 클럽에서 다져진 감각을 통해 빛을 발한 것입니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한 유럽 빅 클럽 선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결승전 선발 출전(각각 2008년과 2009년), '세계 최고의 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연패, 클럽 월드컵 우승 경력 등은 한국 축구의 역사가 되었고 앞으로 한국인 선수가 새롭게 경신하기 힘들 기록입니다.
그리고 박지성은 그리스전 골을 통해 한국인 선수 최초로 월드컵 3회 연속 골을 넣은 선수로 거듭났습니다. 이제는 박지성의 발에서 월드컵 원정 사상 첫 16강 진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됐고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전에서 고비만 넘는다면 또 하나의 한국 축구 역사가 쓰여지게 됩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이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라고 고백했던 박지성에게는(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에 이은 또 하나의 영광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든든한 느낌을 불어넣었던 박지성의 존재감이라면 충분히 해낼 것이라 믿습니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쓰고 있는 박지성은 참으로 '멋진 사나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