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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공격력 불안' 프랑스, 아트사커는 어디로?

 

프랑스는 한때 세계 최정상급 레벨을 자랑했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유로 2000 우승 및 2006년 독일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명실상부한 축구 강국으로 올라 섰습니다. 그 영광에는 '축구황제' 지네딘 지단이 있었고 티에리 앙리-다비드 트레제게로 짜인 '영혼의 투톱'에 비에라-튀랑-리지라쥐-드사이 등과 같은 세계 톱클래서 선수들이 다수 포진했습니다. 이들은 프랑스 특유의 '아트사커'를 뽐내며 아름다운 축구의 묘미를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프랑스에서는 강팀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단이 독일 월드컵 이후 은퇴하면서 팀 전력에 뼈대를 잡아줄 선수가 나타나지 않은 끝에 전력 내림세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유로 2008 본선 조별리그에서 1무2패 꼴찌로 탈락한데다 남아공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는 세르비아에 밀려 2위로 내려 앉았습니다. 아일랜드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앙리의 '신의 손'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끝에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으나, 만약 앙리가 손으로 골을 넣지 않았다면 지금쯤 안방에서 TV로 월드컵 본선을 바라봤을지 모를 일입니다.

프랑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격력 부족 및 팀 플레이 결여 입니다. 상대팀에게 웬만해선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펼치지만 문제는 다득점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유기적인 콤비 플레이 부족, 선수 개인 역량에 의존하는 공격력, 골 결정력 부족, 공격 옵션의 중복 포지션 문제까지 공격력에 있어 총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아트사커라는 키워드를 통해 지금의 스페인 못지 않은 화려한 공격을 펼쳤지만 이제는 그 아름다움을 상당 부분 잃었습니다.

그래서 레몽 도메네크 감독은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4-2-3-1에서 4-3-3으로 전환하여 답답했던 공격력을 만회하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기존에는 '라스(라사냐 디아라)-툴라랑'으로 짜인 더블 볼란치를 구사했으나 라스가 부상으로 최종 엔트리 합류에 실패하면서 아부 디아비를 주전으로 기용했습니다. 디아비는 살림꾼 성향의 라스보다 공격적인 성향의 중앙 미드필더입니다. 그래서 디아비를 공격적으로 배치하면서 요한 구르퀴프와 함께 더블 공격형 미드필더 체제를 구성하여 공격력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4-3-3은 우루과이와의 본선 1차전에서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 끝에 0-0으로 비겼습니다. 그동안 왼쪽 윙어 프랑크 리베리에 의존하는 공격력을 펼쳤는데, 이날 경기에서는 왼쪽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은 디아비쪽으로 공격 물줄기가 향하면서 왼쪽 공격이 활발하고 오른쪽이 조용해지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프랑스의 왼쪽 옵션을 맡은 리베리-디아비-에브라는 총 180개의 패스를 날렸고 오른쪽을 책임진 고부-구르퀴프-사냐는 132개의 패스를 날리는데 그쳤습니다. 후반전에는 앙리를 왼쪽 윙 포워드로 교체 투입시키면서 왼쪽에 치중하는 공격 형태를 나타냈지만 결과적으로 공격의 단조로움을 노출하고 말았습니다.

스위칭도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프랑스는 리베리-아넬카-고부로 짜인 스리톱을 구사했는데, 리베리가 왼쪽 측면에서 공을 잡으면 고부가 최전방으로 이동하여 아넬카 대신에 공을 따내려는 움직임을 나타냈고 전반 10분에는 골문 앞에서 절호의 슈팅 기회를 잡았습니다. 문제는 고부가 최전방으로 이동하면서 아넬카와 위치가 중복되는 문제점이 나타났고, 고부의 빈 자리를 구르퀴프가 책임졌으나 공과 무관한 움직임을 펼치면서 비효율적인 스위칭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원톱인 아넬카는 골을 넣는 임무를 맡았으나 동료 선수들의 매끄럽지 못한 움직임 때문에 전반전에 짜증스런 표정을 짓는 장면이 TV에 여러차례 노출 됐습니다.

디아비와 구르퀴프의 공존도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디아비는 55개의 패스 중에 46개를 정확하게 연결했지만(패스 정확도 : 83.6%) 구르퀴프는 36개의 패스 중에 21개를 정확하게 연결하는데 그쳤습니다.(패스 정확도 : 58.3%) 프랑스의 4-2-3-1에서는 리베리-구르퀴프를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4-3-3에서는 왼쪽에 포진한 디아비가 공격을 조율하면서 오른쪽에 있던 구르퀴프의 공격력이 살아나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르퀴프의 부진은 고부가 오른쪽에서 결정적인 공격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문제점과 직결 됐습니다.

구르퀴프의 문제점은 공격력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의 4-3-3은 더블 공격형 미드필더 체제이기 때문에 수비형 미드필더-풀백 사이의 삼각형 공간을 상대팀에게 노출하기 쉬운 허점이 있습니다. 디아비는 특유의 넓은 활동 반경과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앞세워 우루과이와의 허리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지만, 구르퀴프의 수비 전환 속도가 느리면서 디에고 페레즈에게 뒷 공간을 뚫리는 문제점을 노출했고 그 과정이 디에고 포를란을 활용한 역습으로 이어졌습니다. 다행히 오른쪽 풀백 사냐가 전진 수비를 펼치면서 위기를 모면했지만 구르퀴프의 수비 문제를 안고 경기를 치러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르퀴프의 부진 원인은 도메네크 감독의 4-3-3 전환이 성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구르퀴프는 수비보다는 공격에서 두각을 떨치는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인데 4-3-3의 더블 공격형 미드필더 체제는 볼란치를 한 명만 두기 때문에 공격형 미드필더의 수비 부담이 더 많아집니다. 여기에 디아비와의 공존마저 어려움을 겪었으니, 도메네크 감독이 의도했던 4-3-3 변신 성공은 오히려 구르퀴프의 공격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부정확한 패스와 크로스도 문제입니다. 프랑스는 우루과이와의 패스 정확도에서 69-64(%)로 근소한 우세를 점했지만 패스 횟수는 531-434(개)로 월등하게 많았습니다. 전반전에는 214-235(개)로 뒤졌으나 후반전에 319개의 패스를 연결하면서 상대를 몰아 붙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된 패스 미스가 속출하면서 경기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무득점으로 이어졌습니다. 크로스는 20개 중에 4개를 정확하게 연결했지만 성공률은 20%에 불과했으며 전반전에는 7개 모두 부정확 했습니다. 사냐가 프랑스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크로스를 시도했지만(7개) 정확하게 연결한 것은 1개에 불과했습니다.

공격진 조합도 문제 있습니다. 아넬카는 지난해 대표팀에서 오른쪽 윙어로 뛰었으나 원톱이었던 안드레 피에르 지냑이 슬럼프에 빠지면서 최전방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첼시에서의 팀 플레이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월드컵에 임하다보니 골냄새가 다소 무딥니다. 2008/09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으로 활약했지만 지금의 경기력을 놓고 보면 골보다는 팀 플레이에 더 강한 체질입니다.

왼쪽 윙어에는 리베리-말루다-앙리가 모두 겹친 상황인데, 개인 능력을 놓고 보면 말루다-리베리 조합으로 운영하는 것이 마땅했으나 문제는 리베리가 바이에른 뮌헨에서 줄곧 왼쪽을 맡았기 때문에 오른쪽에서 공격력을 최대화시키기 힘든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리베리가 우루과이전에서는 왼쪽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공격 옵션 중에서 가장 폼이 좋은 말루다를 벤치로 내린 도메네크 감독의 선수 기용 미스가 우루과이전 무득점을 키우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공격력의 답답함이 앞으로 남은 멕시코전, 남아공전에서 되풀이 될 경우 월드컵 본선에서 탈락할지 모릅니다. 두 경기 모두 고지대에서 열리기 때문에 앞으로 힘든 경기를 펼칠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