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그리스를 남아공 월드컵 첫 승 제물로 삼을 계획입니다. 그리스전의 승패 여부에 따라 월드컵 원정 사상 첫 16강 진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 12일 저녁 8시 30분(이하 한국시간) 포트 엘리자베스에 소재한 넬슨 만델라 베이에서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1차전 그리스전을 치릅니다. 그리스는 유로 2004 우승팀으로서 남아공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는 B조 2위를 기록한 뒤 우크라이나와의 플레이오프 끝에 본선 무대를 밟았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위 팀으로서 47위의 한국보다 34계단 위에 있지만 축구공은 둥글고 변수가 많은 스포츠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불허 입니다. 본선 첫 경기이기 때문에 팽팽한 접전이 예상됩니다.
1. 한국vs그리스, 너를 이겨야 내가 산다
한국과 그리스는 서로를 월드컵 본선 첫 승 상대로 설정한 상태입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 월드컵 본선 첫 경기이기 때문에 16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을 제외하면 모든 대회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했고, 그리스는 유일하게 월드컵 본선에 참가했던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3전 전패의 수모를 당했기 때문에 한국전 승리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두 팀은 1차전을 마치면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 같은 부담스러운 본선 상대국들과 경기를 치르는 만큼 첫 경기 승리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경기를 앞둔 양팀 감독들의 각오 역시 비장합니다. 허정무 감독은 그리스전을 앞둔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아시아의 한계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원정에 약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겠다"며 해외에서 치러지는 국제 대회 부진으로 '종이 호랑이'의 불명예를 안았던 과거를 떨치고 그리스전에서 당당하게 승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오토 레하겔 감독도 "그리스는 큰 나라가 아니며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이 대단하다. 하지만 내일(한국전)은 승리해야 한다"며 승리에 대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표현했습니다.
2. 패스 게임vs롱볼, 어느 팀이 효율적?
축구는 상대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어야 승리하는 스포츠입니다. 한국과 그리스의 대결은 본선 첫 경기이기 때문에 공격력에서 희비가 엇갈릴 것입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두 팀의 공격 패턴이 서로 다릅니다. 한국은 박지성-김정우-기성용-이청용으로 짜인 미드필더진을 중심으로 패스를 통해 공격을 전개하는 '패스 게임'을 펼치는 팀입니다. 허리에 포진한 선수들 모두가 정확한 패스를 자랑하기 때문에 팀 공격의 근간이 패스입니다. 반면 그리스는 후방에서 전방으로 한 번에 올리는 '롱볼'을 통해 공격을 전개합니다. 공격진에 포진한 게오르기오스 사라마스, 앙겔로스 하리스테아스의 신장이 각각 192cm, 191cm이기 때문에 공중볼에 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단연컨데, 본선 1차전에서는 한국이 그리스를 상대로 점유율에서 우세를 점할 것입니다. 패스를 주고 받는 경기 운영을 펼치면서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데다, 그리스는 미드필더진이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펼치면서 카운트 어택을 노리기 때문에 한국이 많은 공격 기회를 잡을 것입니다. 한국은 하프라인에서 최전방으로 연결되는 패스가 얼마만큼 유기적인지, 그리스는 한국의 공을 빼앗아 전방으로 롱볼을 올리며 기습을 노리는 타이밍이 얼마만큼 빠르고 정확도가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패스 게임과 롱볼 중에 어느 형태가 효율적이냐에 따라 경기 내용 및 결과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3. 승부의 키 포인트, 세트피스
축구에서는 세트피스처럼 쉽게 골 넣는 방법이 없습니다. 한국과 그리스는 공수 양면에 걸친 팽팽한 접전을 펼칠 것이고 수비라인을 두껍게 세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절호의 골 기회를 창출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승부의 쐐기를 박을 수 있는 결정타가 바로 세트피스입니다. 프리킥과 코너킥 상황은 두 팀 모두 골을 넣을 수 있는 최적의 기회입니다. 또한 상대팀의 세트피스가 실패하면 빠른 역습을 통해 상대팀 문전을 두드릴 수 있는 틈이 벌어집니다. 한국은 박지성-이청용의 돌파, 그리스는 롱볼을 통한 역습을 앞세워 세트피스 이후의 상황을 노릴 것입니다. 세트피스가 승부의 키 포인트로 작용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은 1994년 미국 월드컵 부터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4번 중에 3번의 대회에서 첫 골을 프리킥 상황에서 넣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첫 골은 세트피스가 아니었지만(황선홍의 필드골) 3~4위전 터키전에서 이을용이 프리킥 골을 넣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월드컵 무대에서 항상 프리킥에 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면 그리스는 190cm가 넘는 장신들이 즐비한 특성을 살려 전통적으로 세트피스에 강했고 지난달 27일 북한과의 평가전에서 넣은 두 골 모두 세트피스 상황 이었습니다. B조 4개국 중에서 평균 신장이 가장 높기 때문에(184.9cm) 세트피스에 강한 특성을 이어갈 것임에 분명합니다.
4. 염기훈-정성룡, 후보 선수 꼬리표 떼나?
한국은 그리스전에서 그동안 백업 멤버로 활용되었던 염기훈과 정성룡을 주전으로 기용할 예정입니다. 두 선수는 최근 대표팀 훈련에서 주전팀의 조끼를 입고 훈련했고 경기 하루전에도 기존 주전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그리스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것입니다. 염기훈은 이동국이 부상으로 그리스전 풀타임 출전이 힘들기 때문에 박주영과 투톱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정성룡은 슬럼프에 빠진 이운재보다 폼이 더 좋은데다 움직임이 민첩하기 때문에 탄력 넘치는 자블라니(남아공 월드컵 공인구)의 궤적 및 타이밍을 제대로 맞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무엇보다 두 선수의 맹활약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염기훈은 타겟맨으로 기용 될 박주영을 보조하는 쉐도우로서 2선과 최전방을 부지런히 누벼야 합니다. 연계 플레이와 순발력에 약한 문제점이 있지만 그리스의 밀집 수비 사이에서 골 넣는 공간을 확보하려면 염기훈이 상대 수비 옆 공간 사이를 파고들며 다른 선수들의 골 기회를 도와줘야 합니다. 정성룡은 베이징 올림픽 본선을 제외하면 큰 무대에서 활약한 경험이 없는데다 공중볼 펀칭이 미숙한 문제점이 있지만 올해들어 경기 운영 능력 및 위치선정이 향상되면서 이운재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이 그리스전에서 승리하려면 골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는 정성룡의 무실점 선방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5. 매치업 대결 (1) 기성용vs사마라스, 셀틱 동료들의 맞대결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이기 때문에 같은 클럽 선수들이 맞붙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활약중인 기성용과 사마라스가 한국의 중원 사령관, 그리스 공격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아 월드컵 첫 승을 겨냥합니다. 기성용은 김정우와 함께 중앙 미드필더를 맡아 대표팀의 허리를 책임질 예정이며 패스 위주의 경기 운영으로 공격 옵션들을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카라구니스-카추라니스로 짜인 그리스의 노련한 허리와 경합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지만 빠른 볼 처리를 통한 유기적인 콤비 플레이가 요구됩니다.
사마라스는 왼쪽 윙 포워드로서 그리스의 공격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193cm의 장신이지만 빠른 순발력과 감각적인 드리블을 주무기로 삼는 테크니션 성향입니다. 경기 상황에 따라 후방에서 올라오는 공중볼을 받아내지만 감각적인 발재간을 주무기로 전방 공간을 침투하거나 동료 선수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이어주는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담당합니다. 여기에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볼 배급을 통한 플레이메이커 역할까지 도맡습니다. 한국과 그리스가 이 경기에서 승리하려면 기성용과 사마라스의 맹활약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6. 매치업 대결 (2) 이청용vs니니스, 최고의 영건 윙어는?
한국과 그리스는 기량이 출중한 젊은 오른쪽 윙어 자원을 두고 있습니다. 볼턴의 에이스로 활약중인 22세 이청용, 파나티나이코스 소속으로서 맨유의 영입 관심을 받는 20세 소티리오스 니니스가 바로 그들입니다. 현란한 발재간과 재치있는 돌파력을 자랑하는 두 선수가 팀 공격에 얼마만큼 활력을 불어넣느냐에 따라 경기의 희비를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이청용은 오른쪽 윙어로서 박지성과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며 니니스는 후보 자원이지만 조커로 출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리스의 승리를 책임질 강력한 임펙트를 노릴 것입니다.
무엇보다 두 선수에게 남아공 월드컵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한국과 그리스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할 영건이기 때문에 자신의 네임벨류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월드컵입니다. 만약 지구촌 축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맹활약을 펼치면 유럽 빅 클럽의 본격적인 러브콜을 받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이청용과 니니스는 올 시즌 막판에 각각 리버풀, 맨유 이적설로 관심을 끌었던 선수들이기 때문에 빅 클럽 스카우터들이 자신들의 발끝을 주목할 것입니다. 그래서 월드컵 본선 경기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7. 매치업 대결 (3) 김정우vs카라구니스, 중원 지배자 누구?
한국과 그리스의 대결은 서로 주고 받는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되기 때문에 허리 싸움이 뜨겁게 전개 될 것입니다. 그래서 두 팀의 살림꾼 역할을 하는 김정우와 기오르기오스 카라구니스가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김정우는 한때 수비력 논란에 시달렸으나 올해 초 부터 홀딩맨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으면서 수비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그러더니 빼어난 위치선정을 앞세운 공간 장악 및 끈질긴 몸싸움을 펼치며 어느 누구와 맞붙어도 주눅들지 않는 내구성을 쌓았습니다. 최근에 폼이 좋기 때문에 그리스전 맹활약이 기대됩니다.
카라구니스는 유로 2004 우승 멤버로서 중원에서 카추라니스와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담당합니다. 날카로운 중거리슛과 세트피스를 자랑하며 왕성한 기동력과 투쟁심까지 갖췄습니다.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통해 상대 플레이메이커를 봉쇄할 수 있는 압박을 자랑하며 상대 공격 예상 침투 공간을 미리 선점하는 위치 선정도 좋습니다. 전성기 시절에 비해 기동력 및 드리블 돌파가 약해졌는데, 과연 김정우가 카라구니스의 약점을 노리며 한국 승리의 발판을 마련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