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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타겟맨' 박주영에 대한 걱정스러운 시선

 

'박 선생' 박주영(25, AS 모나코)은 지난해 한국의 월드컵 7회 연속 본선 진출에 막중한 공헌을 했던 선수였습니다. 2008년 11월 20일 사우디 아라비아 원정, 지난해 6월 9일 아랍에미리트(UAE) 원정에서 귀중한 골을 넣으며 한국의 승리를 견인했죠. 경기 내용에서도 예전의 부진을 떨치며 자신의 하이 클래스였던 2005년의 모습을 되찾는 듯 했습니다.

당시 박주영의 존재감이 반가웠던 이유는 박지성 중심으로 일변되던 허정무호의 공격 패턴이 기존보다 다채로웠기 때문입니다. 박주영이 왼쪽 측면과 최전방을 번갈아가면서 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치면서 박지성에 의존했던 대표팀의 공격 색깔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박주영의 존재감속에서 이타적인 활약에 치중하며 공격 부담을 덜었고, 박주영은 미드필더진과 최전방을 부지런히 오가며 동료 선수들에게 양질의 패스 연결을 하면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침투하며 여러차례 결정적인 공격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허정무호 플랫 4-4-2에 공격형 미드필더가 없음을 감안하면, 박주영의 실질적 역할은 플레이메이커 였습니다. 모나코에서 꾸준히 단련되었던 플레이메이킹을 통해 경기를 조율하는 힘을 길렀고 그것이 허정무호의 공격이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모나코의 4-4-2에서 쉐도우 스트라이커와 오른쪽 윙어를 오가며 골 보다 패스와 드리블 돌파 위주의 경기를 펼쳤던 스타일이 허정무호에서 그대로 옮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박주영은 타겟맨입니다. 모나코의 4-2-3-1에서 원톱을 맡아 공중볼을 따내고 포스트플레이를 펼치는 정통파 타겟맨으로 변신했습니다. 박주영의 모나코 경기를 꾸준히 보지 않았던 분들은 기교-몸싸움 부족-쉐도우 스트라이커 같은 키워드를 연상하겠지만, 이제는 과거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올 시즌의 박주영은 탄탄한 체격을 앞세워 터프한 수비를 수비수들과 적극적인 몸싸움을 펼치며 공을 따내고 지키려는 투쟁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프랑스리그가 공격수들이 골 넣기 힘든 곳이자 거친 리그임을 감안할 때 '박주영은 몸싸움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그저 몇년 전 이야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박주영의 최대 강점은 공중볼 장악 능력입니다. 높은 점프를 앞세워 여러차례 공중볼을 따내고 190cm넘는 거구와의 공중볼 다툼에서 우세를 점할 정도로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줬죠. 그래서 모나코는 후방 옵션들이 박주영의 머리를 노리는 롱볼을 날리는 경우가 많았고 시즌 후반에 접어들 수록 그 빈도가 많았습니다. 박주영이 시즌 후반 9경기 연속 무득점에 시달렸을 때 주전에서 제외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을 통한 롱볼 전술이 팀 공격의 근간이었기 때문입니다. 9경기 연속 무득점도 2선 미드필더를 맡는 아루나-알론소의 좁은 활동 범위가 문제였을 뿐, 골 운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박주영이 지난 시즌과 공격 스타일이 바뀐 상태에서 남아공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난 24일 일본전에서는 기존의 플레이메이킹을 통해 공격을 조율하기 보다는 최전방에서 공을 기다리는 쪽에 초점을 모았습니다. 물론 후반전에 교체 투입하면서 4-2-3-1의 원톱을 맡았기 때문에 공격 조율을 바라기에는 당연히 무리지만, 후방에서 넘어오는 공을 받아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까지는 그런 스타일에 능동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은 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표팀의 공격은 후반전에 접어들어 템포가 느려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한국이 경기 흐름을 잡았던 형태가 소강 상태로 바뀌었고, 2선 미드필더들의 활동 부담이 커지면서 박주영이 최전방에서 종종 고립되는 모습이 벌어졌습니다. 후반 중반에 김보경-이승렬을 교체 투입시키지 않았다면 한국의 일본전 완승은 장담 못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경기력이 월드컵 본선에서 되풀이되면 상대팀에게 먹잇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레벨이 한국보다 한 수 아래라서 다행이었지, 한국과 대등하거나 더 높은 클래스의 팀이라면 허정무호의 공격 약점을 간파하고 수비의 허를 찌르는 묘안을 짜냈을 것입니다.

또한 대표팀의 공격 패턴은 마치 모나코 경기 재방송을 보는 듯 했습니다. 박주영에게 롱볼이 향하는 장면이 나타난 것이죠. 박주영은 일본 수비수를 상대로 가볍게 공을 따냈고 몸싸움에서도 우위를 점했지만, 패스 위주의 공격을 펼쳤던 지난해와 사뭇 달랐습니다. 모나코에서의 스타일에 완전히 녹아들다보니, 허정무 감독도 그 역할을 대표팀에 이어간 것입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박주영의 플레이메이킹을 통해 재미를 봤던 대표팀으로서는 전술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죠. 그래서 대표팀은 박지성-박주영이 왼쪽에서 힘을 실었던 공격 전술에서 박지성-이청용이 좌우 측면에서 흔드는 공격 패턴으로 변화했습니다.

문제는 박주영의 컨셉이 이동국과 일부분 겹칩니다. 이동국은 허정무 감독의 길들이기 끝에 최전방을 활발히 움직이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박스 안에서의 포스트 플레이를 통해 상대 수비를 뒤흔드는 전형적인 정통파 공격수 였습니다. 이동국이 공격 조율에 집중하면서(에콰도르전을 말함) 박주영의 지난해 스타일을 흡수하고 있다면, 박주영은 오히려 이동국의 본래 스타일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 축구에서는 타겟맨과 쉐도우에 대한 뚜렷한 개념이 희미해지고 여러가지 장점을 자랑하는 만능형 공격수들이 선호받는 추세입니다. 그 관점에서라면, 이동국과 박주영의 변신은 반갑습니다.

하지만 허정무호는 4-2-3-1이 플랜B 이며 4-4-2가 기본 포메이션인 팀입니다. 월드컵 16강 진출을 책임질 투톱에 박주영-이동국이 유력할 텐데, 문제는 박주영과 이동국이 지금까지 호흡을 맞춘 시간은 45분(지난해 9월 5일 호주와의 전반전)에 불과합니다. 두 선수가 실전에서 함께 발을 맞춘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다른 선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임무 분담에서 혼동이 올 수 있습니다.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은 이동국이 다음달 2일 스페인전에 결장할 가능성이 있음을 상기하면, 이 문제는 월드컵 본선 그리스전까지 안고 가야 합니다. 더욱이 이동국은 유독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기에, 호흡에 대한 불안 요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선수 모두 공격 스타일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박주영에 대해서 또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부상 재발 가능성입니다. 올 시즌 모나코에서 총 6번의 부상을 당했는데 그 중에 세 번이 햄스트링 부상 이었습니다. 후방에서 롱볼을 받을 공간으로 부지런히 움직여 공중볼 경합을 하는 빈도가 많다보니, 허벅지 뒷 근육에 무리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2일 파리 생제르맹과의 프랑스컵 결승전에서는 안면 부상에서 회복된지 얼마 되지 않아 연장전을 포함한 120분 동안 최전방과 좌우 측면을 활발히 움직이며 무수한 공중볼을 따냈으나 결국 햄스트링 부상 재발로 시즌 아웃된 상태에서 허정무호에 합류했습니다.

단연컨데,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본선에서 박주영에게 롱볼을 따내는 임무를 맡길 것이 분명합니다. 박주영이 플레이메이킹보다는 공중볼에 더 익숙한데다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 수비수들을 제공권에서 압도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 때문입니다. 컨디션만 되찾으면 적극적인 몸싸움을 펼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에 타겟맨으로 전환한 이후부터 햄스트링 부상이 많아진 것은 선수 보호적인 측면에서 반갑지 않습니다. 물론 박주영은 타겟맨 전환 이후 여러가지 장점을 흡수한 만능형 공격수로 변신했지만, 월드컵 본선에서 부상이 또 재발되면 허정무호 전력이 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타겟맨' 박주영에 대한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