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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일본, 월드컵에서 3전 3패로 무너질 것이다

 

일본 축구에게 있어 24일 한국전은 남아공 월드컵 4강 진출의 분수령 이었습니다. 한국이 8년 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달성한데다 전통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것, 박지성이라는 아시아 최고의 축구 선수가 속한 것, 그리고 한국전을 통해 출정식을 치르기 때문에 한일전에 대한 중요성이 컸습니다. 만약 한국을 이겼다면 월드컵 4강 진출의 자신감을 성취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과는 한국이 2-0으로 승리했고 경기 내용에서도 단연 우세 였습니다. 일본 축구가 자랑하는 볼 점유율에서도 전반 14분에는 77-23(%)로 크게 앞섰지만 경기 종료 후에는 55-45(%)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한국에게 경기 흐름에서 압도 당하는 장면이 늘어나면서 추격의 발판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죠. 점유율을 늘린 것도 자기 진영에서 횡패스를 돌리는 경우가 많았을 뿐, 한국 진영에서 결정적인 공격 기회를 얻으려는 의지가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일본의 점유율 확보 '의지' 만큼은 세계 4강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일본 입장에서 패배가 처참한 이유는 한국전에서 부상자를 제외한 최정예 스쿼드를 가동했기 때문입니다. 축구팬들에게 회자되는 일본 축구 전설의 1군은 허구였을 뿐이죠. 전통적으로 공격진이 취약한데다 투톱 시스템으로 별 다른 재미를 못봤기 때문에 한국전에서 4-2-3-1로 변형했습니다. 일본 축구가 자랑하는 미드필더들의 출중한 개인 역량을 강화하고 공격수들의 약점을 커버하여 한국을 공략하겠다는 것이 오카다 다케시 감독의 의중 이었습니다. 여기에 오른쪽 윙어 경쟁 구도를 그렸던 '일본 축구의 신구 에이스' 나카무라 슌스케와 혼다 케이스케를 모두 선발로 기용하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4-2-3-1 전환은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고 말았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은 혼다가 김정우에게 봉쇄 당하자 원톱 오카자키 신지와의 폭을 좁히지 못해 일본이 박스 안으로 접근하여 골 기회를 노리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오쿠보-나카무라는 이영표-차두리 같은 한국의 좌우 풀백들에게 발이 묶이면서 공격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고 오카자키에 이어 후반 중반에 투입된 모리모토 다카유키까지 최전방에서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엔도-하세베도 박지성과 김정우가 주축이 된 한국의 허리 싸움에서 밀렸으니, 일본이 자랑하는 미드필더들의 개인 역량이 한국 선수들에게 압도 당하면서 거듭된 졸전을 펼쳤습니다.

이번 한일전은 한국과 일본의 수준 차이가 극명하게 엇갈렸던 경기였습니다. 한국이 공수 양면에 걸쳐 일본보다 우세한 실력 및 조직력을 뽐냈습니다. 더욱이, 한국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을 목표로 하는 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월드컵 4강 진출을 꿈꾸는 일본의 목표가 비현실적임를 알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세르비아 2군과의 홈 경기에서는 7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했음에도 0-3 완패를 당했습니다. 한국도 8년 전 한일 월드컵 이전까지는 답답한 경기를 거듭했지만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는 전력 업그레이드를 거듭한 끝에 4강 달성의 발판을 다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 축구에서는 한국의 8년 전 냄새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선수들의 개인 능력이 이전 세대보다 뒤떨어집니다. 특히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의 퀄리티가 심각합니다. 오카자키-타마다-오쿠보-모리모토-야노는 이전 세대인 미우라-나카야마보다 골 결정력 불안 및 낮은 득점력의 단점을 안고 있으며 특히 오쿠보는 공격진에서 경쟁력을 잃어 윙어로 내려갔습니다. 혼다-나카무라는 나카타-오노 같은 일본 축구의 황금기(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끈 주역 만큼의 무게감을 실어주지 못했고 특히 나카무라는 기량 노쇠화로 인한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혼다-하세베-모리모토 같은 유럽파들의 능력이 대표팀에서 최대화되지 못하는 단점은 유럽파를 비롯한 해외파와 국내파의 공존이 유기적인 한국과 정반대 행보입니다.

문제는 일본이 자랑하는 점유율 축구 및 미드필더를 강점으로 삼는 세밀한 패스가 월드컵 본선에서 네덜란드-덴마크-카메룬을 공략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점은 아시아 축구에서는 톱 클래스였지만 월드컵 본선에서는 세계적인 강호들과 상대하기 때문에 다른 행보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강력한 압박에 밀려 공격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것은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네덜란드-덴마크-카메룬도 한국 처럼 강력한 압박을 주무기로 삼기 때문입니다. 일본 미드필더들은 적극성이 부족해, 상대 압박을 이겨낼 활동량과 체력이 좋지 않습니다.

특히 오쿠보는 일본 선수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근성이 있으며 몸싸움과 신경전을 마다않는 선수입니다.(물론 기타자와의 근성에 비해 부족합니다.) 하지만 한국전에서는 차두리의 강한 압박 및 몸싸움에 밀려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차두리에게 고전했다는 것은 네덜란드-덴마크-카메룬 같은 체격 조건과 탄력, 몸싸움, 압박이 뛰어난 옵션들에게 봉쇄당할 여지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축구는 체격 조건으로 말하는 스포츠가 아니지만, 키 작은 선수가 거구를 무너뜨리려면 빠른 타이밍에 의한 개인기 및 돌파력이 필요합니다. 오쿠보는 한국을 비롯한 강한 상대 앞에서 머뭇 거리는 경향이 두드러지며 특유의 저돌적인 움직임이 살아나지 않는 단점이 있습니다.

엔도-하세베로 짜인 더블 볼란치도 강하지 않습니다. 두 선수는 각각 앵커맨, 박스 투 박스여서 공격 성향이 강합니다. 그런데 월드컵 본선에서는 공격 전개 및 테크닉이 뛰어난 베슬레이 스네이데르(네덜란드) 마르틴 요르겐센(덴마크) 아실 에마나, 장 마쿤(카메룬)을 봉쇄해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한국전에서 박지성의 공격 전개를 막지 못했는데 월드컵 본선에서 이들을 철저히 묶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발군의 수비 감각과 왕성한 지구력을 지닌 홀딩맨이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일본 대표팀에는 그런 유형의 선수가 없습니다.

월드컵 본선을 앞둔 일본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나카자와의 노쇠화 입니다. 전성기 시절보다 발이 느려지면서 문전으로 빠르게 침투하는 상대팀 공격수들을 놓치는 장면이 지난해부터 늘어났습니다. 한국이 골키퍼 이운재의 노쇠화로 고민하고 있다면 일본은 나카자와를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문제는 나카자와가 월드컵 본선에서 로빈 판 페르시(네덜란드) 니클라스 벤트너(아스날) 사뮈엘 에토(카메룬) 같은 유럽 정상급 공격수들과 매치업을 해야 합니다. 아르연 로번, 디르크 카윗(이상 네덜란드) 데니스 롬메달(아약스) 아실 에마나(카메룬) 같은 빠른 발을 주무기로 삼는 2선 미드필더들의 문전 침투까지 봉쇄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문제점으로 오카다 감독의 지도력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수들의 부족한 개인 역량이 대표팀 행보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지만, 오카다 감독의 지도력 부재는 성적 부진의 기름을 붓는 격입니다. 특히 점유율 축구를 고집하면서 비효율적인 공격 전개가 이전 대표팀 시절보다 늘어났고, 점유율을 확보하려면 선수들이 폭을 좁혀 콤펙트한 경기 운영을 펼쳐야 하는데 경기 상황에 따른 적극성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오카다 감독은 최근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겠다고 공언했으나 한국전에서 또 다시 점유율을 고집한 끝에 완패했습니다.

따라서 일본은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은 커녕 3전 3패로 무너질 가능성이 큽니다. 선수들의 개인 능력 및 피지컬이 네덜란드-덴마크-카메룬보다 부족하며 오카다 감독의 전술 부재까지 겹쳤습니다. 여기에 남아공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한국전에서 패하면서 팀 사기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본선 첫 경기인 카메룬전에서 선전하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카메룬에게 패하면 네덜란드-덴마크에게 내리 무너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오카다 감독은 4강에 진출하겠다고, 혼다는 우승을 하겠다고 장담했지만 그것은 전설의 1군이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지금의 일본 대표팀은 훗날 아시아 축구를 망신시킨 1군으로 회자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공교롭게도 오카다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서 3전 3패 끝에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났던 지도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