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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vs혼다,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일본이 예전보다 약해졌다" (박지성, 5월 23일 대표팀 공식 인터뷰에서)

"한국의 목표는 월드컵 16강이다. 현실적인 목표다. 일본이 어떤 목표를 설정했는지 관심 없다" (박지성, 5월 24일 산케이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어쩌면 일본 축구 입장에서는 '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의 냉소한 반응이 불쾌했을지 모릅니다. 일본 최고의 프로야구 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4년 전 "한국 야구는 30년 동안 일본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고 발언했던 독설과 비슷한 늬앙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 입장에서는 박지성의 발언이 이치로처럼 거만하게 들렸을지 모릅니다.

얼핏보면 박지성이 이치로처럼 상대팀을 얕보는 의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당연한 발언 입니다. 남아공 월드컵에 거만한 자세를 나타낸 일본 축구를 비판한 것입니다. 오카다 다케시 일본 대표팀 감독은 남아공 월드컵 목표를 4강 진출로 설정했고 대표팀의 에이스인 혼다 케이스케(24, CSKA 모스크바)는 우승을 하겠다며 의기양양한 자신감을 나타냈습니다. 일본이 경제 대국이라서 목표를 크게 가졌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일본 대표팀의 실력치고는 목표를 너무 높게 설정했습니다. 반에서 시험 성적 30등에 턱걸이로 드는 학생이 4등 안에 들겠다며 큰소리 치는 것과 똑같습니다.

특히 오카다 감독의 월드컵 4강 욕심은 한국을 의식한 것입니다. 오카다 감독은 2007년 11월 대표팀 사령탑 부임 이후 "한국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했는데 일본도 그에 맞는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 4강 진출을 목표로 하겠다"고 다짐했고 그 이후에도 4강에 대한 포부를 밝혔습니다. 일본 축구가 한국을 넘어 진정한 아시아의 최강으로 군림하려면 월드컵 4강 달성이라는 결과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축구에 대한 일본의 열등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오카다 감독의 월드컵 4강 발언은 혼다의 월드컵 우승 발언에 비하면 '애교 수준' 이었습니다. 혼다는 지난 16일 일본 입국 기자 회견에서 "남아공 월드컵 목표는 우승이다"며 스승의 4강 발언에 한 술 더뜨고 말았습니다. 또한 혼다의 화려한 입국 패션은 일본 열도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월드컵 우승을 하겠다는 당찬 포부에 이르기까지, 스타의식이 넘쳐나는 선수라는 것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혼다의 스타의식이 감독의 전술을 뿌리치는 거만함으로 표출 됐습니다. 오카다 감독은 지난 10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 기자회견에서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칠것이라고 말했는데, 혼다가 16일 입국 기자회견에서 "수비를 하고 싶지 않다"고 발언했습니다. 혼다의 관점에서는 감독의 전술은 그저 감독 생각일 뿐, 자신은 공격만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오카다 감독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발언을 수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일본 대표팀이 '오카다vs혼다'라는 사제지간의 대립 구도로 분위기가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결국, 오카다 감독은 혼다의 못말리는 스타의식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혼다의 스타의식은 그라운드에서의 실력과 비례하지 않았습니다. 올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강인한 인상을 심어줬고 모스크바의 주전 확보에 성공했지만 문제는 그에 걸맞는 클래스를 라이벌 한국전에서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전에서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아 팀 공격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김정우에게 철저히 봉쇄당하면서 빈 공간으로 침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한국 진영을 과감히 돌파하는 모습도 부족했습니다. 원톱 오카자키 신지와의 연계 플레이도 소극적이었고 불안한 볼 키핑력 때문에 공을 빼앗기는 장면이 여럿 속출했습니다.

한국전에서 유일하게 인상깊은 장면을 펼친것은 후반 16분 빠른 타이밍에 의한 터닝슛을 날린 것입니다. 경기 내내 김정우를 비롯한 한국 선수들에게 막혔지만 이 장면에서는 타이밍을 빠르게 엮으며 결정적 골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슈팅이 날카롭지 못해 공이 높게 뜨고 말았습니다. 강력한 슈팅을 주무기로 삼는 선수인지 의심 되었습니다. 결국, 혼다는 0-1로 뒤진 후반 26분에 부진에 따른 질책성 교체를 당했습니다. 교체 상황에서 한 가지 행동을 지적하자면, 그라운드에서 벤치로 이동하는 걸음이 느렸습니다. 팀을 생각했다면 단 1초라도 빨리 들어와 일본의 추격 시간을 벌어줘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에이스의 체면을 내세워서는 안됩니다.

반면 박지성은 일본전에서 자신이 왜 아시아 최고의 선수이고, 맨유에서 다섯 시즌 동안 활약했던 선수인지를 전반 5분 만에 단 한 번의 장면으로 충분히 입증했습니다. 6만 일본 관중들의 함성과 야유를 침묵에 빠드리는, 오카다 감독과 혼다의 거만함을 무너뜨리는 오른발 중거리슛 한 방으로 일본의 골망을 기습적으로 흔들었습니다. 또한 적극적인 수비 가담 및 태클을 마다 않으며 일본의 공세를 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활발한 움직임을 통해 빠른 템포에 의한 공격을 주도하며 경기 페이스를 한국쪽으로 유리하게 이끌었습니다.

특히 박지성이 선제 결승골을 넣은 뒤의 골 세리머니가 인상적 이었습니다. 골을 넣은 뒤 일본 서포터즈 울트라 닛폰쪽으로 다가가 슬쩍 쳐다보는 세리머니를 한 것이죠. 그것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세리미니를 한 것입니다. 경기 전 선수 소개 때 자신을 야유했던 울트라 닛폰에 무언가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축구 경기에서는 주로 약한 팀에게 그런 세리머니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 시즌 아스날-AC밀란-리버풀 같은 강팀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을 때 크게 펄쩍이며 환호했던 것과 정반대였죠. 일본전에서 골을 넣어도 감흥이 없는 표정을 지은 것은, 박지성이 일본 전력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우리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박지성의 골 세리머니는 "월드컵 4강에 오르고 싶다", "월드컵 목표는 우승이다"며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던 오카다 감독과 혼다의 거만함이 잘못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한국의 속담을 떠올리게 하듯, 축구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뛰고 실력으로 말하는 것임을 박지성이 그들에게 충분히 입증했습니다. 최근 박지성의 라이벌로 떠올랐던 혼다는 스타의식에 젖어있을 뿐, 진정한 스타는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결정적인 상황에서 에이스의 진가를 보여줬던 박지성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박지성과 혼다는 미드필더입니다. 미드필더는 공격과 수비 능력이 모두 뛰어나야 하며 아무리 공격력이 우수한 선수라도 적극적인 수비 가담과 철저한 압박이 현대 축구에서 기본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료 선수의 경기력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박지성은 특유의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맨유에서 다섯 시즌 동안 주축 선수로 뛰었지만, 혼다는 팀 보다 개인을 중요시 여기며 축구의 기본을 망각한데다 월드컵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자만했습니다. 어쩌면 두 선수의 대조적인 마인드가 한국과 일본의 경기 내용 및 결과를 결정지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