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투톱은 황선홍-최용수로 회자 됩니다. 두 명의 공격수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이전까지 한국 대표팀의 공격을 주름잡던 선수들로써 다른 누구 이상의 무게감을 지녔습니다. 두 선수 모두 타겟 플레이가 가능했던 것을 비롯 박스 안에서 자유자재로 패스를 연결할 수 있고 특출난 골 감각을 앞세워 상대 수비수들을 뒤흔들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동시대에 이란 최고의 투톱으로 꼽혔던 다에이-아지지(바게리)보다 뛰어난 투톱이 황선홍-최용수라고 치켜세웁니다.
하지만 황선홍-최용수 투톱은 영광보다 아쉬움이 많았던 조합입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탈락이 아쉬웠습니다. 만약 황선홍이 프랑스 월드컵을 앞둔 중국전에 불의의 부상을 당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본선에 참가했다면 한국이 본선 16강에 올랐을거라 생각했던 팬들이 많습니다. 당시 대표팀은 황선홍-최용수 투톱을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하고 피니시를 해결하는 전술로 단련되었기 때문에, 황선홍의 부상 공백을 메우지 못한 끝에 멕시코와 네덜란드에게 참패를 당했습니다.
프랑스 월드컵 이후의 한국 대표팀은 투톱에서 스리톱 체제로 변신했습니다. 간간이 투톱 혹은 원톱 전술을 구사했으나 허정무-히딩크-쿠엘류-본프레레-아드보카트-베어벡 감독은 스리톱을 선호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설기현-황선홍-박지성) 2006년 독일 월드컵(박지성-조재진-이천수)에서도 스리톱을 구사했으며, 2008년 초에 다시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허정무 감독도 칠레와의 첫 경기에서 투톱을 썼으나 그 이후 스리톱을 활용했습니다. 한국은 2008년 가을부터 투톱 체제로 전환했지만, 아직까지는 황선홍-최용수 투톱을 뛰어넘을 콤비가 발굴되지 않았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을 앞둔 허정무호의 고민은 박주영의 공격 파트너를 찾는 것입니다. 불과 몇달 전까지 이근호가 유력했으나, A매치 12경기 연속 무득점 및 대표팀과 소속팀에 걸친 경기력 부진에 시달리며 최종 엔트리 23인 합류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염기훈-이승렬은 대표팀 부동의 주전 공격수로 뛰기에는 무게감이 약하고, 안정환은 허정무호의 슈퍼 조커이기 때문에 주전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가 풍족하지 않습니다.
박주영의 공격 파트너는 이동국이 정답입니다. 허정무 감독이 17일 예비 엔트리 26인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동국이 허벅지 부상으로 3주 진단을 받았음에도 "이동국은 팀에 꼭 필요한 선수다. 허벅지 뒷근육에 이상이 생겼지만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발언한 것은, 이동국을 박주영의 파트너로 놓겠다는 복안이 사전에 짜여졌던 것입니다. 즉, 이동국은 허정무 감독의 월드컵 본선 계획에 포함되었던 선수였습니다.
그런. 박주영과 이동국이 허정무호에서 발을 맞춘 시간은 45분(지난해 9월 5일 호주전 전반전)에 불과했지만 최상의 공격력을 뽐냈습니다. 이동국은 박스 안쪽에서 왼쪽 측면으로 빠지는 움직임을 통해 상대 수비수를 옆쪽으로 끌어내렸고, 포스트플레이를 통해 공중볼을 따내며 동료 선수들의 유기적인 공격 전개를 유도했습니다. 박주영은 오른쪽 공간에서 상대 수비수 사이를 파고드는 돌파를 비롯 공중볼을 따내는 모습을 보이며 무난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아쉬운 것은, 두 선수가 허정무호에서 함께 호흡을 맞출 기회가 적었습니다. 당시 허정무호가 박주영-이근호-이동국-염기훈-설기현을 투톱에 골고루 활용하는 로테이션 시스템을 쓴데다, 지난해 11월 부터 지금까지 박주영이 부상 여파로 A매치에 뛰지 못했습니다. 만약 허정무호가 지금까지 박주영-이동국 투톱 체제로 호흡을 가다듬었다면 두 선수가 콤비 플레이를 앞세운 결정적인 골 기회를 마련하는데 초점을 맞췄을지 모를 일입니다. 더 아쉬운 것은, 이동국이 허벅지 부상을 당하면서 3주 진단을 받게 됐습니다. 일본-벨라루스-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박주영과 발을 맞추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박주영과 이동국의 무게감을 놓고 보면 황선홍-최용수에 이은 역대 최고의 투톱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선수는 모두 박스 안에서 결정적인 골 기회를 창출하거나 상대 수비를 뒤흔들 수 있고, 탁월한 골 결정력에 타겟맨까지 소화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박주영은 AS 모나코에서 두 시즌 연속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한 역량이 있고, 이동국은 대표팀 공격 옵션 중에서 유일하게 꾸준한 골 맛을 보며 허정무호에서 가장 폼이 좋은 공격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선수의 조합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이유입니다.
박주영과 이동국은 공생공존 관계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박주영은 이동국에게 부족한 스피드, 움직임, 활동 폭, 2선으로 치고 들어가는 과감함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이동국은 박주영의 단점으로 꼽히는 기복이 심한 폼을 해소할 수 있는 공격 자원입니다. 박주영이 그동안 대표팀에서 좋은 경기력을 펼쳤으나 모나코에서 부진한 경기가 여럿있었고 잦은 부상으로 꾸준한 경기 출전을 하지 못한 폼으로 허정무호에 합류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허정무가 지금까지 박주영이 마무리 짓는 공격 패턴을 고수했다면 공격력 저하가 우려되었을 것입니다. 허정무호가 투톱이기 때문에 한 선수가 부진하면 다른 선수가 해결짓는 공격을 펼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비록 이동국의 허벅지 부상으로 일본-벨라루스-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박주영-이동국 투톱을 볼 기회는 적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평가전은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 될 옥석을 가리기 위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염기훈-이승렬에게 출전 기회가 제공 됐습니다. 그래서 최종 엔트리 23인 확정 이전의 마지막 경기인 벨라루스전에서는 옥석 가리기 작업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스페인전에서도 선수들의 폼을 골고루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것으로 보입니다. 박주영-이동국 투톱을 허정무호에서 보게 될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박주영이 가진 역량, 이동국의 폼을 놓고 보면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이 기대됩니다. 박주영은 최근에 폼이 떨어졌지만 프랑스리그 특유의 터프한 수비를 이겨내는 노하우를 익히면서 자신의 공격력을 맘껏 발휘하며 타겟맨으로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허벅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여 평소의 감각만 되찾으면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 골문을 공략할 수 있습니다. 허정무호가 월드컵 본선 16강에 진출하려면 박주영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동국은 자신의 약점이었던 움직임 및 활동 폭, 수비 가담이 늘어나면서 지난해보다 공격력이 부쩍 좋아졌습니다. 에콰도르전 이전까지의 올해 A매치 7경기에서 9번이나 상대 패스를 차단했을 만큼 경기력 변화가 두드러집니다. 무엇보다 허벅지 부상에서 완쾌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박주영과 이동국의 콤비 플레이가 벌써부터 설레이게 합니다. 과연 두 선수가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끌며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투톱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