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인터 밀란(이하 인테르)의 결승 진출 집념이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보다 더 강했습니다. 팀 승리보다 결승 진출을 목표로 했던 수비 위주의 전력이 빛났던 것이죠.
인테르는 29일 오전 3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캄프 누에서 열린 2009/10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바르사 원정에서 0-1로 패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1일 쥬세페 메이차에서 열렸던 1차전에서 3-1로 승리했기 때문에, 통합 스코어에서 3-2의 리드를 기록하여 결승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전반 28분 티아고 모따의 퇴장, 후반 37분 헤라르도 피케에게 골을 허용한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통합 스코어 리드를 지켜 원하는 목표를 달성 했습니다. 이로써, 인테르는 1963/64-1964/65시즌 유로피언컵 우승 이후 45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 도전에 나섰습니다.
인테르가 안티 풋볼? 수비가 강했을 뿐!
인테르와 바르사의 경기는 국내에서 '안티 풋볼vs뷰티풀 게임'의 대결로 주목을 받았던 경기였습니다. 인테르가 공격보다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는 팀이라면 바르사는 높은 볼 점유율과 공격적인 경기력을 자랑하는 팀입니다. 특히 4강 2차전에는 바르사가 90분 동안 쉴세없이 공격을 펼쳤다면 인테르는 공격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테르의 축구를 안티 풋볼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데, 축구가 결과로 말하는 종목이자 승리가 중요함을 상기하면 비판이 잘못되었습니다.
물론 인테르의 공격은 바르사보다 매력적이지 않은 것 처럼 보입니다. 바르사가 높은 볼 점유율을 앞세워 경기의 흐름을 장악하고 다득점을 연출하는 스타일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테르의 공격력은 지난 4강 1차전에서 바르사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바르사 선수들을 앞쪽으로 끌어당긴 뒤, 에토-판데프로 짜인 좌우 윙어들이 상대 좌우 풀백 뒷 공간을 파고들고, 원톱 밀리토가 박스 안에서 끊임없이 공간 창출하며 역습의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그 결과는 3-1 승리 였습니다. 점유율보다는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 더 중요함을 의미합니다.
안티 풋볼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단어는 요한 크루이프가 90년대 초반 바르사 감독을 맡던 시절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친 상대팀을 비판하기 위해 꺼낸 말입니다. 과르디올라 감독도 지난 시즌 4강 1차전에서 수비에 치중한 첼시를 안티 풋볼이라고 깎아 내렸죠. 하지만 안티 풋볼은 공격 지향적인 축구를 펼치는 지도자들의 독설에 불과했을 뿐,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한국의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 북한의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 과정도 비판 받아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인테르의 안티 풋볼 논란에 대한 반론입니다.
인테르의 결승 진출 원동력, 탄탄한 수비
인테르가 4강 2차전에서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쳤던 이유는 상대가 바르사이자 원정경기였기 때문입니다. 바르사와 함께 공격 위주의 경기를 펼쳤다면 슈투트가르트-아스날처럼 장렬하게 전사했을 것입니다. 공격보다는 수비에 강점을 나타내는 성향이기 때문에 그 특성을 주 전술로 삼았고 결국 결승에 진출하면서 무리뉴 감독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홈에서 열렸던 4강 1차전에서 3-1로 승리했기 때문에, 원정 2차전에서 무리하게 공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인테르는 수비가 강하기 때문에 그것을 기반으로 3-1의 리드를 지키는 것이 목표였을 뿐입니다. 승리 이전에 다음 토너먼트 진출이 중요했던 것이죠.
특히 인테르는 사네티-사무엘-루시우-마이콘으로 짜인 유럽 최강의 포백을 구축했습니다. 네 명은 끈끈한 호흡을 앞세운 커버 플레이와 탄탄한 대인마크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페드로-즐라탄-메시로 짜인 바르사의 3톱을 철저히 봉쇄했습니다. 인테르의 포백이 강했던 비결에는 미드필더들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이 있었습니다. 인테르의 미드필더들은 공수 밸런스 조절 및 집중력, 경기 흐름 판단이 좋기 때문에 상대의 강력한 공격을 저지할 수 있는 역량이 출중합니다. 그 역량은 바로 템포 였습니다. 상대를 악착같이 견제하면 파울을 범할 수 있는 만큼, 적절한 공간을 허용하여 상대 공격 템포를 늦추는 것이 인테르 미드필더들의 과제였죠.
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갈 뻔했습니다. 모따가 전반 10분과 28분에 불필요한 파울로 경고를 받았고 그것이 누적되어 퇴장 당하면서 인테르가 10명으로 경기를 싸워야했기 때문입니다. 모따는 사비-케이타로 짜인 바르사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공격 물 줄기를 봉쇄하는 홀딩 역할을 맡았는데 이른 시간에 퇴장 조차를 받으면서 무리뉴 감독의 전술 운용이 어려워 졌습니다. 그래서 인테르는 원톱인 밀리토에게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주문하여 4-5-0 포메이션을 구사했습니다. 모따의 빈 자리를 스네이데르-밀리토가 함께 채우고 박스 부근에서 압박 작전을 펼치며 실질적으로 9백을 구사했습니다.
인테르는 전반전에 점유율 23-77(%) 패스 47-214(개) 슈팅 0-7(개)를 기록할 만큼 -후반전 포함하면 점유율 25-75(%), 패스 86-371(개), 슈팅 1-15(개)- 다분히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바르사가 즐라탄-발데스를 제외한 9명이 20개 이상의 패스를 기록한 반면, 인테르는 세자르-스네이데르-마이콘을 제외한 8명이 10개 미만의 패스를 날렸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2~3겹의 수비 벽을 구축하여 상대에게 뒷 공간을 내주지 않기 위해, 상대 공격 템포를 늦추기 위해 협력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친 것입니다. 골보다 실점하지 않는 전략이 더 중요했던 만큼, 공격 옵션을 수비로 내렸기에 모따 퇴장에 별 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인테르, 메시-사비 봉쇄에 성공한 이유
인테르의 결승 진출 원동력은 단순히 수비만 한 것이 아니라 상대 공격 스타일을 명확하게 읽었기 때문입니다. 바르사는 페드로-메시로 짜인 좌우 윙 포워드들이 측면에서 문전 방향으로 대각선 침투하면서 골을 노리는 스타일을 즐깁니다. 또한 사비라는 공격의 구심점을 통해 경기 흐름을 주도합니다. 최근에는 메시에 의존하는 공격 패턴이 두드러졌습니다. 바르사에게는 강점 요소가 될 수 있지만 바르사를 상대하는 팀의 입장에서는 '바르사 격파'의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격언이 있듯, 무리뉴 감독은 바르사의 특징을 명확하게 꿰뚫었던 전술가 였습니다.
그래서 인테르는 페드로-메시의 문전 침투를 봉쇄하기 위해 측면 압박을 강화했습니다. 좌우 윙어인 키부-에토의 활동 반경을 상대팀 측면이 아닌 인테르 진영 박스 옆쪽으로 맡긴 것입니다. 그래서 사네티-마이콘은 키부-에토와 함께 페드로-메시를 협력 견제하여 상대 움직임을 측면쪽으로 가두고 즐라탄의 고립을 유도했습니다. 중원에서는 캄비아소-스네이데르-밀리토가 사비-케이타를 봉쇄하는 전략을 펼쳤습니다. 두 선수의 패스 횟수 보다는 패스 템포를 떨어뜨려 바르사의 공격 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이 이들의 의도였죠.
결과는 인테르 작전의 성공 이었습니다. 전반 28분 모따 퇴장, 후반 37분 피케에게 골을 허용하는 위기 상황속에서도 철옹성 수비를 유지한 끝에 통합 스코어 3-2의 리드를 지키며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최근 바르사 공격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메시는 사네티-키부에게 막혀 고전을 면치 못했고 페드로-즐라탄도 상대의 협력 수비에 막혀 무기력한 공격을 일관했습니다. 여기에 가브리엘 밀리토(인테르 공격수 디에고 밀리토의 친동생)-알베스로 짜인 좌우 풀백의 오버래핑도 키부-에토의 수비력에 무용지물 이었습니다. 수비수인 키부를 왼쪽 윙어로 기용한 무리뉴 감독의 포지션 전환은 성공적 이었습니다.
바르사의 사비는 무려 112개의 패스를 날리며 104개를 정확하게 연결하는 92.9%의 순도 높은 패스 정확도를 기록하고도 바르사의 탈락 앞에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인테르가 의도했던 것은 사비의 패스 템포를 늦추는 전략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비는 문전 침투 및 골보다는 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치는 성향이기 때문에, 철저히 패스에 치중하도록 유도하며 바르사의 '사비 의존도'를 강화시키는 것이 무리뉴 감독의 의도였죠.
그래서 인테르 선수들은 사비가 패스하려는 공간을 미리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졌습니다. 결국 사비는 근처에 있는 동료 선수와 공을 돌리며 패스 횟수만 높였을 뿐, 그 과정에서 바르사 공격 템포가 느려지면서 인테르의 압박이 힘을 얻었습니다. 인테르의 10명이 바르사의 11명보다 강했던 이유, 그리고 결승 진출의 키워드는 '수비'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