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이청용(22, 볼턴)이 시즌 막판 체력 저하로 힘이 부친 모습을 보였지만, 올 시즌 볼턴에서 성공한 선수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볼턴 공격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옵션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최근 일부 여론에서는 이청용을 흔드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청용이 지난 17일 스토크 시티전 부진으로 교체된 뒤, 그의 백업 멤버였던 블라디미르 바이스가 팀의 2-1 역전승을 이끄는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언 코일 감독은 바이스에 대한 신뢰감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인터뷰를 했었고, 24일 포츠머스전에서는 이청용이 선발에서 제외되고 바이스가 대신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볼턴에서의 입지가 좋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청용의 입지는 시즌 중반보다 약해졌을지 모릅니다. 스토크 시티전까지 3경기 연속 교체 아웃되었고 포츠머스전에서는 교체로 투입했기 때문에 붙박이 주전이라고 부르기에 어색한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잣대를 근거로 이청용의 입지를 판단하기에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는 격입니다. 이청용이 지난해 초반 대표팀 해외 전지훈련 이후 지금까지 이렇다할 휴식기 없이 경기 출전을 강행하며 체력이 떨어진 것은 축구팬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풀타임 출전을 원하는 일부 여론의 근시안적인 안목 때문에 이청용이 힘들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 안목 때문에 쓰러졌던 축구 인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동국-고종수-최성국-박주영-김진규는 10대 후반~20대 초반에 청소년-올림픽-국가대표 같은 각급 대표팀에 소속팀 경기 일정까지 소화하는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했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체력 소모와 여론 기대에 대한 중압감을 못 이겨 잦은 부상, 슬럼프 혹은 체력 저하로 고생했습니다. 박주영이 여전히 잦은 부상에 시달리는 이유는 혹사의 악령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뒤를 이어 이청용과 기성용이 혹사에 시달리게 됩니다.
기성용은 셀틱에 진출한 이후 벤치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혹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청용은 다릅니다. 올 시즌 볼턴의 빠듯한 일정에 시달리는 강행군에 시달린 끝에 체력은 물론 경기력까지 저하된 상황입니다. 팀의 승리를 이끌어야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실력보다는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선발로 투입시킬 수 밖에 없었고, 이청용이 포츠머스전 선발에서 제외된 것도 이 같은 배경입니다. 이미 체력이 방전된 상태이기 때문에 시즌 초반과 중반같은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기 힘듭니다.
그런 선수에게 경기력 향상에 대한 쓴소리를 하는 여론의 반응이 참으로 가혹하다는 느낌입니다. 지금 이청용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인데, '5골 8도움에 만족해선 안된다'-'확실한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고 압박하는 것은 건설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청용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코일 감독이고, 코일 감독은 이청용에게 휴식을 줬습니다. 만약 일부 여론이 이청용의 휴식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청용은 이동국-고종수-최성국-박주영-김진규에 뒤를 이어 혹사에 시달린 끝에 슬럼프 및 잦은 부상으로 고전했던 선수 리스트에 포함되는 안좋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청용이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체력적으로 고생하면 앞으로 힘들어질지 모릅니다.
저는 지난 19일 <'골 부족' 박주영-이청용의 동병상련>이라는 글을 통해 이청용이 앞으로 남은 경기에 모두 결장해도 팀 내 입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볼턴의 다음 시즌 프리미어리그 잔류가 사실상 확정적이기 때문에 이청용의 체력 안배가 필요하다는 뜻을 전했고, 공교롭게도 이청용은 포츠머스전에서 교체 출전해 휴식을 취했습니다. 일부 여론에서는 남은 경기가 다음 시즌을 대비하기 위한 시험대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시즌이 끝나고 나면 선수들이 바뀌는데 다음 시즌을 대비하기 쉽지 않습니다. 프리미어리그 팀들은 그 작업을 프리 시즌에 진행합니다.
이청용에게 휴식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남아공 월드컵입니다. 볼턴에서 끊임없는 체력 저하에 시달린 끝에 허정무호에 합류하는 것과, 적절한 휴식을 취하면서 컨디션을 끌어 올린 이후에 허정무호에 합류하는 것은 극과 극입니다. 단기전 승리를 위해 엄청난 체력을 쏟아내야 하는 월드컵에서는 이청용의 체력과 컨디션이 모두 좋아야 합니다. 대표팀의 공격이 박지성-이청용으로 짜인 좌우 날개에 치중을 두는 만큼, 볼턴에서 2경기를 앞둔 이청용에게 체력적인 희생을 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청용이 포츠머스전 선발에서 제외되었다며 팀 내 입지를 걱정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청용의 입지는 튼튼하며 코일 감독의 여전한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청용이 잉글랜드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볼턴은 지금쯤 강등이 확정되었을 것입니다. 이청용이 공격 포인트를 올린 경기 중에 대부분이 볼턴의 승리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총 13경기에서 공격 포인트(5골 8도움, 프리미어리그 4골 6도움)를 달성했는데 볼턴이 10승2무1패를 올렸고 프리미어리그에서는 7승2무1패를 기록했습니다. 볼턴의 9승 중에 7승이 이청용의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청용 입지에 대한 일부 여론의 그릇된 판단은, 흔히 말하는 '박지성 위기론'이 언젠가 '이청용 위기론'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지성 위기론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박지성은 최근 부상에 따른 컨디션 저하로 경기에 뛸 수 없는 상황인데, 최근 어느 언론이 박지성 입지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내면서 축구팬들의 거센 비판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2~3경기 이상 맹활약을 펼치면 박지성을 찬양하고, 2~3경기 결장하면 박지성 입지에 대한 안좋은 발언에 이청용과의 직접적인 비교까지 일삼았던 언론의 보도는 축구팬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박지성 위기론이 최근 이청용에 대한 여론의 반응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청용은 그저 1경기에 선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을 뿐인데 우려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이청용도 박지성처럼 위기 논란에 빠지며 힘든 나날을 보낼지 모릅니다. 이러한 반응은 타국에서 힘겨운 일상을 보내는 선수를 힘들게 할 뿐이고, 이청용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이청용 위기론을 조장하는 여론이 불편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