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고민은 No.1 골키퍼인 이운재(37, 수원)의 K리그 부진입니다. 이운재는 최근 K리그에서 노쇠화 기미가 뚜렷한 인상을 주면서 잦은 실점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킥력 저하, 다이빙 상황에서의 순발력 저하, 위기 상황에서 상대 슈팅을 빨리 예측하는 판단력이 느려지는 문제점은 나이가 많은 골키퍼들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그래서 김병지의 대표팀 발탁 가능성과 맞물려 이운재의 입지가 대표팀에서 좁아졌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표팀의 또 다른 고민은 이운재를 대신할 No.1 골키퍼가 마땅치 않습니다. 이운재는 오는 6월 남아공 월드컵 또는 내년 1~2월 카타르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후배 골키퍼가 이운재의 자리를 넘겨 받아야 하는데 No.1이라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해 불안한 선방에 시달리면 '이운재보다 못한다'는 여론의 비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이운재가 음주 논란으로 대표팀 자격 정지를 당했던 2년 전에 김용대를 비롯한 후배 골키퍼들이 허정무 감독의 신뢰를 얻지 못해, 다시 이운재가 태극 마크를 달았던 것이 이를 증명하죠.
하지만 이운재 후계자 문제는 대표팀에서 크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정성룡, 김영광, 김용대, 권순태, 염동균, 이범영, 신화용 등 K리그에서 두각을 떨치거나 젊은 기대주로 주목받는 골키퍼들이 여럿 있기 때문입니다. K리그는 외국인 골키퍼 영입이 금지된 만큼 국내 골키퍼들의 체계적인 육성이 가능합니다. 대표팀에서 이들을 로테이션 기용하여 적절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면 골키퍼들의 실력이 향상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운재 후계자 문제는 그의 소속팀인 수원이 직면한 과제입니다. 수원은 K리그에 첫 참가했던 1996년 부터 지금까지 이운재를 주전 골키퍼로 기용했습니다. 이운재가 상무에 입대했던 2000년~2001년, 박호진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던 2006년 하반기를 제외하면 수원의 No.1은 항상 이운재 였습니다. 최근 노쇠화 기미가 뚜렷해진 이운재의 은퇴 공백을 대비하기 위해 후계자를 키워야 하는 것이 수원의 과제인데, 그 적임자가 누구인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수원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최근 몇 시즌 동안 이운재의 백업 역할을 맡았던 골키퍼는 김대환과 박호진 입니다. 하지만 김대환과 박호진도 이운재와 더불어 은퇴의 기로에 있는 선수들입니다. 1976년생 동갑내기이며 이운재와 불과 3세 차이입니다. 두 선수가 이운재의 후계자 역할을 하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적습니다. 그래서 젊은 유망주 골키퍼에 눈을 돌려야 하는데 하강진과 박지영 같은 젊은 선수들은 이운재-김대환-박호진에 가려 1군에서의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원의 2006년은 지금과 상황이 달랐습니다. No.1으로 올라서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박호진의 노력이 있었기에 과제중 논란 및 순발력 저하로 부진하던 이운재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당시 박호진은 수원의 No.3 골키퍼였는데 김대환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No.2로 올라섰고, 이운재가 독일 월드컵 대표팀 차출로 빠졌던 하우젠컵에서 골키퍼로 활약하며 안정된 선방을 과시한 끝에 후기리그에서는 이운재와의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박호진의 등장은 성적 부진에 시달리던 수원이 수비 안정에 힘입어 후기리그 우승을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박호진은 수원의 정규리그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성남의 김용대를 제치고 K리그 BEST 골키퍼에 선정됐습니다. 이운재라는 거대한 벽을 실력으로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비록 박호진은 이듬해부터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벤치를 전전했지만, 5연패로 총체적 난국에 빠진 최근 수원의 행보에서는 2006년의 박호진 같은 주전 선수에게 신선한 자극제를 줄 수 있는 선수의 존재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수원은 이운재가 문제점을 계속 노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주전으로 기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감바 오사카 원정에서는 이운재에게 휴식을 부여하기 위해 김대환을 기용했지만, 수원의 주전 골키퍼가 이운재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없으며 No.2로서 이운재에게 도전할 선수의 존재감이 약합니다. 김대환은 고질적으로 공중볼에 취약하며 박호진은 잦은 부상으로 순발력이 저하되면서 2006년의 포스를 보여줄지 의문입니다.
예전의 수원이라면 기량이 출중한 다른 팀의 골키퍼를 영입했을지 모릅니다. 이운재가 상무에 입대했던 2000년에 부산의 붙박이 주전 골키퍼로서 두각을 떨치던 신범철을 영입해 그 공백을 메웠던 것이 그 예죠. 하지만 수원은 최근 법인화 및 모기업의 사정으로 과도한 지출에 부담을 느끼면서 대형 선수를 큰 돈 들여 영입할 수 없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이운재 후계자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부담이 가는 현실입니다. 만약 그 골키퍼가 수원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돈을 들인 투자가 헛수고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김대환-박호진이 이운재와 더불어 은퇴의 기로를 앞둔 현실이라면 다른 팀 골키퍼 영입도 필요합니다. 수원이 1996년 K리그 첫 참가 이후 지난해 FA컵 우승까지 무수한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팀의 창단 멤버였던 이운재의 존재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팀의 미래를 위해서는 돈을 지출하는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기존 스쿼드에서 이운재의 자리를 물려받을 마땅한 선수가 없다면 다른 팀 골키퍼 혹은 드래프트를 통해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수원의 장기적 관점에서 절실한 것은, 2006년의 박호진처럼 이운재를 실력으로 밀어냄과 동시에 미래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새로운 No.1 골키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