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다크호스 토트넘을 물리치고 프리미어리그 선두 탈환에 성공했습니다. 지금까지 경기력 부진으로 '우울한 4월'을 보냈으나 우승 길목에서 다시 강팀의 위용을 되찾았고 자신들의 목표를 저지하려던 토트넘에게 '수준의 차이'를 가르쳤습니다.
맨유는 24일 오후 8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6라운드 토트넘전에서 3-1로 승리했습니다. 후반 13분 라이언 긱스가 페널티킥 선제골을 넣은 뒤 25분 레들리 킹에게 동점골을 내줬으나 36분 루이스 나니의 결승골로 승리를 굳혔습니다. 41분에는 긱스가 또 다시 페널티킥 골을 넣으며 맨유 승리의 쐐기를 박았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승점 79(25승4무7패)를 기록해 오는 26일 오전 0시 스토크 시티전을 앞둔 첼시(승점 77)를 승점 2 차이로 제치고 리그 선두에 올라섰습니다.
맨유vs토트넘, 집중력과 절박함이 서로 대조적
맨유와 토트넘의 경기는 '1위 탈환vs4위 수성'의 대결 구도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맨유는 토트넘을 이기면 리그 1위 자리를 탈환할 수 있고, 토트넘이 맨유를 제압하면 리그 4위 자리를 지키며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경기는 목표에 대한 집중력과 절박함이 강한 팀이 유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개인 역량이 출중하더라도 심리적인 압박감을 다스리지 못하고 중요한 고비를 넘지 못하면 좋은 경기를 치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맨유와 토트넘의 경기력에서는 집중력과 절박함이 서로 대조적 이었습니다.
만약 맨유가 집중력이 약한 팀 이었다면 후반 막판에 2골을 몰아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후반 25분 킹에게 동점골을 헌납한 이후의 상황이 고비였기 때문이죠. 맨유는 실점 이후 긱스-스콜스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 힘입어 나니-베르바토프-마케다를 전방에 깊숙히 배치하여 공격적인 경기 흐름을 유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니를 통한 오른쪽 측면 돌파로 상대 수비의 뒷 공간을 공략하는 작업을 활발히 펼치면서 토트넘의 기세를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상대 수비수를 제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전방쪽으로 질주하려는 나니의 집중력은 경이적이었고 후반 36분 토트넘 골키퍼 고메즈와의 1대1 상황에서 절묘한 로빙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습니다.
맨유는 뚜렷히 부진한 선수가 없었을 만큼 선수들이 열의를 다해 뛰는 모습이 인상적 이었습니다.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평점 6점 미만의 점수를 받은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하죠. 그동안 경기력이 주춤했던 베르바토프-하파엘은 이날 경기에서 아쉬운 실수를 범했지만 부지런한 움직임을 앞세워 공간을 넓게 커버하고, 협력 플레이에 주력하는 모습에서는 부진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공을 따내기 위해 상대 선수보다 한 발 더 움직이면서 저돌적인 몸싸움을 펼치거나, 수시로 상대 수비 뒷 공간 침투에 주력했던 그들에게 '절박함'이 보였습니다.
에브라에게도 절박함이 느껴졌습니다. 후반 2분 갑자기 구토를 하면서 오셰이와 교체 될 수 있었던 만큼 토트넘전에서 힘든 고비를 넘겼어야 했습니다.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활발히 질주하면서 순간적인 활동량이 많아지다보니 속이 울렁거리면서 구토를 하고 말았죠. 감독 입장에서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교체할 수 있었지만 에브라는 끝까지 경기 출전을 강행하며 상대 박스 안쪽까지 활발히 움직였습니다. 그러더니 후반 14분 야수-에코토로 부터 페널티킥을 얻으며 긱스의 선제골을 역어냈습니다.
반면 토트넘은 몇몇 선수의 무기력한 경기력이 문제였습니다. 중요한 고비에서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죠. 디포-파블류첸코 투톱은 경기 내내 비디치-에반스로 짜인 맨유의 센터백에 막혀 고전을 면치 못했고, 오른쪽 윙어 자원인 벤틀리의 영향력은 미비했습니다. 팔라시오스는 평소와 달리 뒷 공간을 자주 허용하거나 모드리치와 동선이 겹치는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베일의 공격력은 맨유의 포백을 뚫기에는 힘이 부쳤고 야수-에코토는 에브라에게 불필요한 파울을 범해 팀의 패배를 자초했습니다.
특히 베르바토프와 디포-파블류첸코 투톱의 경기력을 비교하면 두 팀의 희비가 엇갈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맨유가 박스 안에서 골을 해결할 수 있는 루니의 존재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베르바토프가 후방에서 밀어준 패스를 받기 위해 공간 이곳 저곳을 움직이며 안간힘을 쏟은 모습에서는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하려는 노력이 보였습니다. 근래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데다 볼 트래핑이 수준급이었던 만큼 공격력이 개선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디포-파블류첸코는 최전방에서의 연계 플레이 및 적극성 부족으로 토트넘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 끝에 후반전 도중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두 팀 감독들의 작전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토트넘의 래드납 감독은 후반 20분 레넌을 투입하면서 베일-구드욘센-파블류첸코-레넌의 공격 라인을 맨유 박스 안쪽으로 접근시켰고, 팔라시오스를 풀백으로 놓는 모험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맨유에게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토트넘의 좌우 윙어와 풀백의 공간이 벌어지면서 긱스-나니의 위치를 토트넘의 박스 안쪽으로 끌어 올리고 베르바토프가 두 선수와 간격을 좁히면서 유기적인 콤비 플레이를 유도했습니다. 그래서 팔라시오스와 야수-에코토가 뒷 공간을 허용하는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토트넘의 수비 부담이 커졌고, 맨유는 상대 수비의 약점을 공략한 끝에 후반 36분과 41분에 골을 작렬했습니다.
그리고 맨유에는 긱스-스콜스 같은 노장들의 무게감이 승리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37세의 긱스는 후반 13분과 41분에 페널티킥으로 두 골을 넣으며 맨유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전반전에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종적인 움직임을 앞세운 돌파로 팔라시오스의 뒷 공간을 뚫으며 베르바토프와의 유기적인 공격을 유도했고, 후반전에는 페널티킥 상황에서 두 번의 예리한 슈팅을 날리며 '노장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36세의 스콜스는 54개의 패스 중에 48개를 성공할 만큼 대부분의 패스가 정확했고, 패스 위주의 경기 운영으로 팀 공격의 활력을 불어넣는 것과 동시에 세밀한 태클을 앞세워 상대 공격의 예봉을 끊었습니다.
두 노장은 그동안 체력적인 문제에 시달리며 후반전이 되면 집중력 저하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풀타임 출전한 것을 비롯 경기 내내 자신의 장점을 꾸준히 유지하며 상대 수비를 흔들었습니다. 토트넘전이 맨유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경기이자 후배 선수들을 독려해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정신적인 무장이 불가피했고 실전에서 팀 전력의 구심점 역할을 해냈습니다. 토트넘이 몇몇 선수들의 적극성 부족 및 불안한 수비에 시달리며 힘든 경기 운영을 펼쳤던 것과 비교하면 맨유의 경기력이 단연 우세였습니다. 아스날과 첼시를 꺾고 맨유 원정에 나선 토트넘의 저력은 대단했지만, 오히려 맨유는 토트넘에게 '수준의 차이'를 가르치며 강팀의 진정한 본색을 보여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