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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청용의 리버풀 이적, 타이밍이 좋지 않다

 

유망한 재능을 가진 젊은 선수에게 빅 클럽이 영입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빅 클럽은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유망주를 발굴해야 하며 대형 선수 영입에 높은 이적료를 지출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 클럽들은 언론을 통해 유망주 영입설을 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빅 클럽 이적설과 얽혀있는 유망주라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블루 드래곤' 이청용(22, 볼턴)이 리버풀의 영입 관심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선, 이청용의 리버풀 이적설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이었습니다. 다음 시즌부터 4시즌 동안 리버풀의 메인 스폰서로 계약된 영국계 금융 그룹 스탠다드 차타드가 아시아 시장 개척 차원 및 마케팅 효과를 위해 이청용 영입을 검토중이라는 루머가 국내에서 흘러 나왔죠. 하지만 이청용의 에이전트측이 이를 부정하면서 리버풀 이적 루머는 당시까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지난 6일 잉글랜드 일간지 <데일리스타>에서는 "리버풀이 이청용 영입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베니테즈 감독이 한국의 국가대표를 안필드로 데려오기 위해 이적료 800만 파운드(약 137억원)를 책정했다"고 보도하면서 이청용의 리버풀 이적설이 잉글랜드까지 전파됐습니다. 그리고 베니테즈 감독이 지난 12일 풀럼전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이청용 영입에 대한 현지 기자의 질문에 "시즌 종료 후 천천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리버풀 이적설이 구체화 됐습니다. 이것은 베니테즈 감독이 이청용이 누구인지, 어떤 스타일의 경기를 펼치는지 알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이청용이 리버풀의 영입 관심을 받는다고 해서 리버풀 이적과 직결되지는 않습니다. 재능이 출중한 유망주들이 빅 클럽들의 영입 관심 세례를 받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이죠. 라싱 산탄데르(스페인)의 19세 미드필더 세르히오 카날레스는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세비야, 첼시, 맨유 같은 스페인과 잉글랜드 빅 클럽들의 영입 관심 대상 이었습니다.(올해 여름부터 레알 마드리드 선수) 박주영-기성용도 맨유의 영입 관심을 받았던 선수들이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이청용의 리버풀 이적설은 선수의 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이청용의 차기 행선지는 아스날이 될 것 같다는 여론의 기대 심리가 작용했습니다. 이청용이 올해 초 아스날과의 2경기에서 인상깊은 공격력을 과시하면서 아르센 벵거 감독의 찬사를 받은 것, 선수 본인이 아스날을 좋아했던 것, 날카로운 패싱력과 창의적인 공격력을 뽐내는 이청용의 스타일이 아스날의 코드와 일치하는 것, 아스날의 측면 옵션인 로시츠키-월컷이 잦은 부상으로 신음하는 것이 그 이유로 작용했습니다. 비록 아스날이 이청용에게 영입 관심을 밝힌적이 없었지만 '이청용이 빅 클럽에서 성공할까?'라는 여론의 기대가 있었던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반면 이청용의 리버풀 이적설은 아스날 이야기와 다릅니다. 리버풀이 이청용을 즉시 전력감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에라가 베니테즈 감독을 비난하면서 올 시즌 종료 후 리버풀을 떠날 것으로 보이며 베나윤은 올 시즌 잦은 부상으로 신음했습니다. 최근에는 바벌-막시가 좌우 윙어를 맡고 있으나 팀 전력에 꾸준히 공헌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 주전으로 나설지는 미지수입니다. 바벌은 그동안 팀의 철저한 벤치멤버였고 막시는 지난 1월 리버풀에 입성했으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내림세에 접어들던 선수였기 때문에 앞날의 오름세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리버풀 측면 옵션의 불안한 현실을 미루어 볼 때 이청용이 새로운 옵션으로 여겨지는 분위기 입니다.

하지만 이청용의 리버풀 이적은 좋은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이청용의 현재 재능과 풍부한 잠재력을 놓고 보면 빅 클럽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만 적어도 베니테즈 체제의 리버풀이라면 환영보다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베니테즈 감독이 리버풀에서 경질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리버풀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성적 부진으로 빅4 수성 실패가 유력하며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가 아닌 유로파리그를 치러야 합니다. 특히 제토라인(제라드-토레스)에 의존하는 팀 전술이 다른 팀들에게 읽힌것을 비롯 팀 전력에 여러가지 문제가 벌어지면서, 베니테즈 감독이 그 책임을 물어 경질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버풀에게 있어 베니테즈 감독 경질은 다소 섣부를 수 있습니다. 그를 내치면 대형 선수 한 명 영입에 맞먹는 1500만 파운드(약 172억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 하지만 리버풀이 성적 향상을 위해 대형 선수 영입보다 새로운 감독 영입을 통한 체질 개선에 돌입하면 베니테즈 감독은 경질 될 것입니다. 구단주의 재정난으로 대형 선수 영입에 어려움을 겪는데다 제토라인의 이탈이 우려되는 상황이어서 체질 개선쪽에 무게감이 실립니다.

그래서 이청용은 베니테즈 감독과 리버풀의 현재 행보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절친인 기성용이 최근 셀틱에서 토니 모브레이 감독 경질 이후 좀처럼 경기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고, 설기현과 송종국이 각각 풀럼과 페예노르트에서 감독의 신뢰를 얻지 못해 국내에 돌아왔던 사례처럼, 감독의 입맛에 맞지 않는 선수는 경기에 뛰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만약 이청용이 리버풀에 이적하고 베니테즈 감독이 경질되면, 이청용은 쟁쟁한 스쿼드 속에서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 놓입니다.

만약 베니테즈 감독이 경질되지 않더라도 이청용이 리버풀로 이적하면 그 시나리오 또한 마냥 좋은 것이 아닙니다. 비록 리버풀의 측면 옵션 중에 일부가 부침을 겪고 있으나 본래 리버풀의 스쿼드는 탄탄합니다. 베니테즈 감독은 맨유의 퍼거슨 감독처럼 로테이션 시스템을 즐기는 성향이며 제토라인이나 인수아-캐러거-레이나 같은 몇몇 붙박이 주전 멤버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포지션에 로테이션 멤버들을 골고루 기용합니다. 특히 측면에는 백업과 주전 사이에 있는 로테이션 멤버들(리에라-베나윤-바벌-막시, 카윗은 논외)이 있어 이청용도 이 시스템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청용은 올해 나이가 22세이며 유럽 리그를 한 시즌째 뛰었습니다. 아무리 볼턴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다고 해서 유럽 리그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유럽 리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기량 못지 않게 경험이 즐비해야하며 그것이 풍족할 수록 부상과 부진, 경쟁 같은 돌발 변수를 이겨낼 수 있는 내구성을 지닙니다. 그래서 레벨이 높은 클럽 이전에 충분한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클럽에서 기량과 경험을 쌓는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청용은 더 발전해야 할 선수이기 때문에 명성보다는 실리를 택해야 합니다. 그의 에이전트측이 리버풀 이적설 속에서도 언론을 통해 '볼턴 잔류'를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리버풀과 볼턴의 이해관계가 맞으면 이청용은 리버풀의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볼턴 입장에서는 두둑한 이적료를 챙길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영표가 토트넘 시절에 구단이 종용했던 AS로마 이적을 거부했던 사례가 있었던 것 처럼, 이청용이 리버풀 이적을 반대하는 주장을 내세울 권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볼턴이 최근 연패로 강등 위협을 받는것이 이청용에게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볼턴이 강등되면 이청용은 다른 프리미어리그 팀을 노크할 것이고 리버풀이 그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강등 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러나 볼턴 입장에서 이청용은 팀 전력의 중요한 선수라는 점에서 그의 이적을 허용할 가능성은 현 시점에서 크지 않습니다.

물론 이청용은 언젠가 볼턴을 떠날 것임에 분명합니다. 자신의 명성과 가치를 높이려면 그에 걸맞는 레벨의 팀에서 뛰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빅 클럽 이적 자체가 시기상조 입니다. 22세 유망주에게 있어 프리미어리그에서 롱런하려면 아직은 경기 출전 경험이 더 많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볼턴에서 다져진 경기 감각으로 나날이 업그레이드 될 이청용의 미래가 더 기대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