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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대표팀 골키퍼 문제, 이운재 각성이 답이다

 

한국 축구의 최근 화두는 허정무호 골키퍼입니다. 주전 골키퍼인 이운재(37, 수원)가 최근 K리그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아공 월드컵이 앞으로 두달 넘은 현 시점에서 이운재의 내림세는 월드컵 16강을 꿈꾸는 허정무호에 반갑지 않습니다.

우선,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는 골을 넣어 승리하는 전략 못지 않게 상대팀에 실점하지 않는 전략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탄탄한 수비력 못지않게 골키퍼의 빠른 판단 능력 및 안정된 자세에 의한 선방 능력이 빛을 발해야 합니다. 월드컵 우승후보로 꼽히는 브라질-스페인-이탈리아는 줄리우 세자르-이케르 카시야스-잔루이지 부폰 같은 세계적인 골키퍼들을 보유했습니다. 반면 잉글랜드는 우승후보 임에도 취약한 골키퍼 자원 때문에 우승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골키퍼의 중요성은 한국 축구가 1994년 미국 월드컵을 통해 뼈저리게 실감 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홍명보를 스위퍼로 두는 1-4-4-1 이라는 극단적인 수비 시스템을 쓰고도 최인영의 불안한 선방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최인영은 미국 월드컵 직전까지 한국 대표팀 수문장 역할을 든든히 맡았으나 실전에서 긴장한 몸놀림을 일관하며 움츠려들었고 특히 독일전에서는 실책성 실점을 포함해 전반전에만 3골을 내주고 경기 도중에 '젊은' 이운재와 교체 됐습니다. 최인영의 폼이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지금도 올드 축구팬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16년전의 뼈아팠던 과거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도돌이표 처럼 재현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운재의 최근 폼이 좋지 않기 때문이죠. 나이가 들면서 순발력과 민첩성이 떨어진 것은 웬만한 축구팬들이 인지하는 사실입니다.

최근에는 집중력 저하까지 겹쳐 잦은 실점을 허용했습니다.  지난 4일 서울전에서 8분만에 3골, 9일 성남전에서 전반 9분과 23분에 실점을 허용한 것은 집중력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특히 성남전에서는 두 골을 실점한 이후부터 날렵한 선방력과 안정적인 자세에 의한 위치선정을 앞세워 성남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두 골을 내줬을때와 상반되는 폼 이었습니다. 아울러 서울전에서 정조국에게 골을 허용한 장면도 동료 선수에게 공을 잘못내준 이운재의 실수, 즉 집중력 저하에서 빚어진 일입니다.

이운재는 나이가 많은 선수입니다. 전반적인 운동 능력이 젊은 선수들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회복이 더딜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올해 초 부터 시작된 대표팀의 해외 전지훈련(남아공-스페인) 및 일본에서 열렸던 동아시아축구 선수권대회, 그리고 수원의 K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 일정을 소화하며 체력 소모가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휴식기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빡빡한 스케줄에 시달리면서 집중력이 떨어졌고 그것이 거듭될 수록 K리그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운재의 잦은 실점은 수원의 불안한 수비조직력이 더 문제였습니다. 서울전에서는 왼쪽 풀백인 양상민이 상대팀의 오른쪽 옵션인 에스테베즈-최효진에게 흔들리면서 수원 수비가 서울의 강력한 임펙트 앞에 허물어지는 장면이 여러차레 노출했습니다. 이운재의 성남전 두 개의 실점은 강민수가 원인 제공 역할을 했습니다. 전반 9분 강민수가 라돈치치의 왼쪽 돌파를 놔둔것이 문제였고 전반 23분에는 강민수가 수원 문전으로 달려들던 조재철을 놓치면서 이운재가 어찌할바를 몰랐습니다. 아무리 좋은 골키퍼라도 팀의 수비가 불안하면 잦은 실점을 허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무수한 슈팅을 선방하고도 3경기에서 9골 내준 김병지가 그 예 입니다.
 
하지만 이운재의 순발력 저하는 심각한 부분입니다. 김현태 대표팀 골키퍼 코치가 우려하는 것 처럼, 이운재의 부진은 잦은 실점 이전에 순발력에서 문제점이 터진 것입니다. 특히 이운재가 서울전에서 허용했던 에스테베즈의 첫번째 골과 최효진의 세번째 골 장면은 두 선수의 슈팅이 강력하게 뻗었습니다. 더욱이 최효진의 슈팅은 문전으로 각을 좁히며 쇄도한 상태에서 이운재 옆쪽으로 날렸던 것이기 때문에 다른 골키퍼도 막아내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운재가 순발력이 조금만 더 빨랐고 그 과정에서 선방시의 활동 폭을 넓혔다면 두 개의 슈팅을 선방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 슈팅 각도를 미리 파악하여 빠른 타이밍에 의한 선방을 과시했던 이운재의 명성이라면 최효진의 슈팅을 막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최근 김병지가 대표팀 발탁 여부로 주목을 받는 이유는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꾸준히 유지하는데다 이운재의 강점인 경험까지 겸비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나이 40세이자 K리그 최고령 선수임에도 여전히 안정된 선방 능력을 과시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11일 경남-강원전을 관전했던 김현태 코치는 김병지의 대표팀 합류 가능성을 부정했지만 직접 두 눈으로 경기를 봤기 때문에 김병지의 폼을 파악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현재 정황상으로는, 김현태 코치가 이운재를 긴장시키기 위해 김병지의 경기를 봤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운재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선수가 김병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병지를 대표팀에 뽑으면 김영광-정성룡 중에 한 명을 포기해야 합니다. 두 선수는 지금까지 이운재에 가려 대표팀에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올 시즌에는 소속팀에서 최상의 폼을 뽐내며 울산-성남의 K리그 선두권 도약을 이끌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안정적인 선방 능력과 수비라인 조율 작업에 능숙하기 때문에 대표팀에 필요한 자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두 선수가 지금의 이운재보다 폼이 더 좋습니다. 아울러 허정무호의 골문을 책임졌던 이운재의 최종 엔트리 제외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현 시점에서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붙박이 주전을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서 제외하는 것 자체가 경험적인 측면에서 전력 손실이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은 이운재-김영광-정성룡과의 내부 경쟁을 통해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끌 수문장을 발굴해야 합니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은 지금까지 이운재를 많이 기용했습니다. 김영광-정성룡이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A매치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두 선수를 월드컵에서 믿고 가기에는 불안한 구석이 있습니다. 부진에 빠진 이운재가 다시 살아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행히 지난 성남전에서 서울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였지만 대표팀 골키퍼 No.1임을 입증하려면 꾸준히 좋은 폼을 유지해야 합니다. 대표팀 골키퍼 교체가 쉽지 않은 결정임을 상기하면 이운재 스스로가 위기를 극복하는 각성이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