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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챔스 16강 탈락' 첼시의 한계가 드러났다

 

러시아의 석유재벌이자 '조만장자'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지난 2003년 첼시 구단을 인수하여 자신의 축구단을 유럽 최고의 팀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에 가득찼습니다. 그래서 뛰어난 축구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 영입에 엄청난 돈을 풀은것을 비롯 무리뉴-스콜라리-히딩크-안첼로티 감독 같은 세계적인 명장들을 영입해(그랜트 감독 제외) 유럽 제패를 향한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첼시는 유럽 제패 달성 과정에서 번번이 고비를 넘지 못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첼시는 17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2009/10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인터 밀란전에서 0-1로 패했습니다. 경기 내내 상대팀과 치열한 접전을 펼쳤지만 후반 33분 사뮈엘 에토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쥬세페 메아차에서 열렸던 지난 1차전에서 1-2로 패했던 첼시는 통합 스코어에서 1-3을 기록해 16강에서 탈락했습니다. 지난 세 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4강 무대를 밟았던 첼시의 위용은 인터 밀란의 아성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첼시가 인터 밀란에게 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첼시는 인터 밀란과의 1~2차전에서 무기력한 경기력을 거듭했습니다. 상대 수비진의 뒷 공간을 파고드는 패스와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고 공격 과정에서의 유기적인 패스 워크가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조 콜과 램퍼드 같은 공격 성향의 미드필더들이 경기를 조율하는 모습도 매끄럽지 못했고 아넬카가 측면으로 빠지면서 상대 수비를 흔드는 모습도 위력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드록바는 루시우와의 공중볼 및 몸싸움에서 이렇다할 우세를 점하지 못한 것을 비롯 두 경기 모두 침묵을 지켰습니다. 이것은 첼시의 평소 경기력과 전혀 대조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전 첼시 사령탑이었던 무리뉴 인터 밀란 감독이 첼시라는 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첼시를 프리미어리그 최강자로 키운것을 비롯 지금의 첼시 주축 선수들을 길러냈던 주인공이 바로 무리뉴 감독이었기 때문이죠. 2007년 9월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에 의해 경질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첼시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고, 어느 누구보다 첼시에 대한 약점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현 첼시 사령탑이 지난 시즌 밀라노 더비에서 자신의 지략에 무너졌던 안첼로티 감독(당시 AC밀란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으니, 3년 전 자신을 내쳤던 것을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첼시의 대표적인 문제는 스쿼드의 노령화 입니다. 인터 밀란과의 2차전에 출전했던 필드 플레이어 10명의 평균 나이가 29.3세이기 때문이죠. 23세의 미켈을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들이 20대 후반 무렵에 접어들었거나 30대 훌쩍 넘었습니다. 특히 스리톱을 형성했던 말루다(30)-드록바(32)-아넬카(31)는 모두 30대이며 최고령 선수는 올해 34세의 발라크 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주전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30.5세 입니다. 미켈에서 에시엔(28), 지르코프(27)에서 애슐리 콜(30), 알렉스(28)에서 카르발류(32)로 바꾸면 평균 나이가 더 많아집니다.

그런 첼시 선수들의 체력적인 한계는 다른 팀들보다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정규리그와 챔피언스리그, 각종 컵대회에 A매치 일정까지 치러야 하는 빠듯한 일정에 시달리다보니 선수들의 체력 관리 및 컨디션 유지가 어렵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선수들이 묵묵히 경기 출전을 강행했지만 중요한 고비처에서는 체력적인 한계를 이겨내기가 벅찹니다. 특히 시즌 막판에 접어드는 2월~3월 즈음에는 선수들의 체력 부담이 많아지는 시기이며 평소에 가벼웠던 몸이 무거웠습니다. 젊고 싱싱한 선수들이 주전 스쿼드에서 찾아보기 힘든 첼시의 스쿼드 노령화는 결국 체력 부담이라는 약점을 키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무리뉴 감독은 첼시의 체력적인 약점을 간파하여 상대 공격 길목을 봉쇄하는 수비 전략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포백을 골문 앞으로 내리고 미드필더들을 수비수와 간격을 좁히면서 첼시 선수들을 압박하는데 힘을 기울였던 것이죠. 이것은 첼시의 공격 템포를 늦추는 것을 비롯 패스의 정확도를 떨어뜨려 드록바-아넬카 투톱을 고립시키기 위함입니다. 노령화에 접어든 첼시 스쿼드를 상대로 타이트한 압박을 쉴세없이 구사하면 상대의 공격이 집중력을 잃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고, 결국 그것이 1~2차전에서 적중했습니다.

첼시 선수들의 특징은 전진 패스를 구사하는 빈도가 많다는 점입니다. 수비수에서 미드필더, 미드필더에서 공격수로 넘어가는 패스가 막힘없이 흘러가는 형태이며 그 패턴을 통해 수많은 슈팅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인터 밀란 미드필더들은 첼시 미드필더들이 앞쪽으로 전진해서 패스를 하려는 그 타이밍을 노려 압박을 가했고, 특히 2차전에서는 모타가 램퍼드를 봉쇄하는데 성공하면서 첼시 허리의 공격 물 줄기가 제대로 터지지 않았습니다. 발라크의 기동력 저하와 미켈의 공격 전개 및 집중력 저하로 고민하는 첼시에게 있어 램퍼드 봉쇄는 안첼로티 감독의 지략 구사가 어려워지는 문제점으로 이어졌습니다.

인터 밀란의 압박은 드록바 봉쇄에서 우위를 점하는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인터 밀란의 미드필더들이 첼시 미드필더들을 압박으로 제압하면서 드록바가 후방 옵션들에게 많은 골 기회를 받지 못했고, 그 틈을 노려 인터 밀란의 센터백인 루시우-사무엘이 드록바를 철저히 견제했습니다. 특히 드록바는 1~2차전 내내 루시우와의 공중볼 및 몸싸움에서 열세를 나타냈고 '드록신' 답지 못한 무기력한 모습을 일관했습니다. 첼시가 드록바의 골 빈도가 많은 팀이라는 것을 웬만한 상대팀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루시우의 대인마크가 철저해야 인터 밀란에게 승산이 있었습니다.

첼시의 또 다른 문제점은 수비입니다. 좌우 풀백을 맡았던 애슐리 콜과 보싱와가 부상에서 이탈했고(보싱와는 몇달째 휴업) 에시엔이라는 세계 최고의 홀딩맨도 부상으로 빠졌으니 첼시의 수비 약화가 불가피 했습니다. 지르코프와 이바노비치가 좌우 풀백을 맡고 미켈이 에시엔의 공백을 대신했으나 주전 선수 못지 않는 클래스를 발휘하기에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이바노비치의 폼은 괜찮았지만, 지르코프는 지나친 공격 가담으로 마이콘의 오버래핑에 역으로 당한것을 비롯 수비 뒷 공간을 자주 허용했고 미켈은 에시엔과는 달리 중원 장악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인터 밀란은 압박 과정에서 커팅에 성공하면 슈나이데르가 직선과 곡선을 골고루 섞는 공격 전개를 통해 상대 미드필더 뒷 공간을 노리는 패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에시엔이 있었다면 슈나이데르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공을 따내는데 주력했지만 미켈에게는 이러한 경기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에서는 마이콘이 쉴세없이 오버래핑을 하며 지르코프를 뚫는데 성공했고 모타에게 막혔던 램퍼드의 수비 부담을 키우고 말았습니다. 결국 램퍼드는 공격과 수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더니 무기력함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또한 첼시 수비의 또 다른 약점은 테리 였습니다. 테리가 구설수 영향으로 폼이 떨어진 문제점이 있었는데 인터 밀란과의 1~2차전에서는 상대 공격수의 마크를 놓치는 허술함을 일관했습니다. 알렉스의 커버도 미흡했으니, 첼시는 수비 불안의 약점을 이기지 못했고 중원 장악도 확실하게 못하면서 공격까지 상대에게 막히고 말았습니다. 인터 밀란과의 두 차례 대결은 첼시의 한계가 제대로 나타난 것과 함께, 올 시즌 유럽 제패의 꿈이 산산조각 무너지고 말았습니다.